2005.7 |
[백제기행100회를 축하하며]가난한 젊음이 아름다웠던 그때
관리자(2005-07-06 14:17:09)
가난한 젊음이 아름다웠던 그때
언제였던가?
선배님들께는 외람되지만 나이 오십이 넘어서면서 자꾸 기억력이 감퇴되고 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1988년 5월에 첫 번째 백제기행을 시작한 것으로 나와 있더이다. 아마도 그해 2월 상당히 쌀쌀했던 어느 날 저녁이었던 듯싶습니다. 전부터 익산 삼기의 지게목발놀이 공연을 구경가자고 하여 당시 우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현 필애드 대표) 안홍엽 선생님과, 전북일보 김은정 기자, 소설가 이병천, 그리고 필자 4명이 승용차 한 대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날 밤 구성진 가락에 막걸리 몇 사발로 흥건하게 취하고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세상일이 그렇게 시작되는 것처럼 우리는 『문화저널』에서 이런 살아있는 유산을 찾아 그 가치를 재조명해보자는 기행을 구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백제기행>이 잉태되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았던가?
한참 민주화 열기가 몰아닥치던 1987년,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방송사 생활이 차츰 시들해 지던 시절, 우리들 몇몇은 전북지역의 건강한 문화를 지켜보자고 하여 ‘문화예술정보지’를 발간하자는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난하지만 끝까지 그 뜻이 변치 않을 순수민간 문화단체로 위상을 세우자는데도 의기투합 했습니다. 말하자면 ‘관변’에 머물던 기존 문화지와는 차별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인 초기멤버들, 유휴열, 박병도, 심인택, 백의선, 최세종, 김은정, 백학기, 최태엽, 또 누가 있었던가? 사진작가 최용부. 이렇게 모여 『문화저널』창간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또 나중에 합류한 이종민, 이흥재, 최만호, 전북의대 김대곤 교수, 박남준, 조명원, 이병천 등 모두들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일이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가 우리가 하는 일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인쇄비 등) 손을 내밀던 일, 지금은 많이 성장했지만 당시 출판 및 인쇄를 맡았던 신아출판사의 조그만 편집실 조개탄 난로가에 둘러앉아 손을 부비며 교정을 보던 일. 그렇게 전전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부대행사를 시도했고 <백제기행>도 그 사업 중 하나였던 것이죠.
백제기행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가?
“백제기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큰 희망으로 여긴다. 끝없이 펼쳐진 논과들, 산과 바다에 우리가 꿈꾸어 온 역사와 노래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이 땅을 함께 딛고 서 있는 뿌듯함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문화저널이 실시하는 백제기행은 지나간 시대의 유적지를 찾아 헤매는 한가한 여행이 아니고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땅, 한반도를 절실하게 둘러보아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우리시대와 우리 삶에 환원시키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다.” 조금은 거창한 출발선언 이었습니다. 젊음이 그래서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예산은 늘 부족했고, 하여 낡고 털털거리는 전세버스였으나, 당시 백제기행은 항상 싱그럽고 가슴 설레는 나날이었습니다. ‘출발시간엄수’ 라는 협조요청에 언제나 1~2명은 협조하지 않았으며, 목적지를 향한 차안에서의 자기소개와 점고(點考)로 인해 교육현장의 역사나 국어 선생님들, 시인, 수필가, 화가, 방송인, 기자, 대학교수, 그리고 일반 가정주부와 어린꼬마들까지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교우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던 것이죠. <백제기행>만은 절대로 차안에서 노래를 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은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절대로 지켜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동행했던 강사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가 끝나면 위트와 유머가 흐르는 2부 사회는 언제나 이종민 교수의 몫이었고, 얼큰하게 술에 젖어있던 필자의 3부 사회는 욕설반, 농담반으로 강제성을 띠기 일쑤였습니다. 첫 번째 기행, ‘우리는 녹두새를 보았다(동학기행)’로 시작한 <백제기행>이 최근에 일본, 중국, 유럽 등으로 까지 폭을 넓히고 드디어 100회를 기념하게 되었다니 놀라운 발전입니다.
그립다. 그리운 칠갑산!
약 5년 동안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참으로 즐겁게 『문화저널』일에 빠져 지냈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 후배의 멘트처럼 “일만 벌려놓고 뒤치닥 거리는 나몰라라 슬쩍 넘긴다”는 필자의 못된 품성으로 (사실은 생활에 쫓기고 내심 많이 지쳐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백제기행>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무관심의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동안 어려운 발행인 역할을 기꺼이 맡아주신 천이두 선생님, 윤덕향 교수님, 이동엽 선배, 유휴열 선배, 그리고 현재 사단법인 ‘마당’을 이끌고 계시는 정웅기 이사장님께도 감사드리며 아직까지도 어려운 여건에서 사명감으로 지켜오고 있는 많은 동료,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립습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칠갑산 기행 때였을 것입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여관방에 둘러앉아 노래를 불러가며 얘기꽃을 피우다 막걸리로 반쯤 맛이 간 필자가 벽을 붙잡고 질러대던 ‘칠갑산’. 그에 뒤질세라 내 팔을 붙들고 같이 불러대던 윤덕향 교수의 그 ‘칠갑산’ “콩밭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젓는다. 무슨 사연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느냐…”
진호 | 문화저널 초대 발행인을 지냈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주MBC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