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문화저널]
[문윤걸의 음악이야기]
'담다디
의 처자, 관조를 노래하네
이상은의 '끝없는 시'
문윤걸(2003-04-07 15:10:19)
키는 멀대처럼 훌쩍 크고, 꾸부정한 어깨와 후들거리던 긴다리, 그리고 보아주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무대에서 망나니처럼 펄쩍펄쩍 뛰며 <담다디>라는 노래를 해대던 '이상은'이라는 가수를 여러분은 기억하시는지. 아마도 이름이야 가물가물하다 하셔도 <담다디>를 부르던 그 강렬한 인상을 잊지는 않으셨을 걸.. 그런데 그 말같은 처자 이상은이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
소리소문도 없이 벌써 10번째 앨범을 내놓고, 또 그렇게 훌쩍 어디론가로 떠나버렸는데 그녀가 남겨놓은 이 10집 앨범이 범상치 않다. 이 앨범의 타이틀은 '끝없는 시(詩)'(Endless Lay). 이 노래에 대한 느낌.. 뭐라고 해야 할까. 우선 요즘 그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는 담백하고 차분함. 그리고 깊고 푸름. 또 인도나 네팔의 성자와 깊은 산중 어느 고찰의 머리 파르라니 깍아 처연한 젊은 스님.
이 앨범에서 깨달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노래들 안에서 편안해지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음악도 음악이려니와 가사말 하나하나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소중했구나."(<언젠가는> 중에서) "잊어 버리는 데 몇 년이 걸리고, 아무는 데 몇 달이 걸리고. 사람은 참 연약하구나. 기억이 가물거리네"(<오늘 하루>중에서).
이제 30대 초반을 갓 넘어섰을 그녀가 이처럼 관조적인 세계관을 자신있게 드러낼 수 있는 배경을 뭘까? 이미 그녀는 그만한 내공을 쌓았다는 것인가? <담다디>의 이미지를 벗고 싶어 떠났다던 여행이 어언 10년. 보헤미안이 되어 세상을 떠돌던 이 10년 동안 그녀는 일본에서, 그리고 지금은 영국에서 그녀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6집 <공무도하가>를 시작으로 성큼성큼 내비치는 그녀의 세계는 이제 '이상은 스타일'이라고 불러주어도 될만큼 서구적 세련성으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요즘의 음악과 달리 찬찬히 사람들을 둘러 보는 여유와 외로움과 고독함을 근거없는 환희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 깊은 슬픔의 근원과 마주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공력 또한 느껴진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는 음악이 자신에게 종교였지만 이제는 음악이 자신과 음악을 들어주는 자와 교류하는 창구라고. 그래서 그녀의 음악은 일회용 반창고가 아니고 늘 곁에 두고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친구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아티스트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가슴 설레며 작품을 기다릴 대상이 하나 생겨났다는 기쁨도 추가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