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7 |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기
관리자(2005-07-06 14:11:25)
아이들과 눈높이 맞추기
“딩동댕~”
드디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내게 한 아이가 다가왔다.
“왜 그러니?”
나의 질문에 그 아이가 내뱉은 말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만큼 내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올해로 교직생활 삼년 차.
결코 길지 않은 교직생활을 하면서 난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학교를 옮기기 전에 근무했던 곳은 26학급 규모로 교직원간의 단란한 분위기가 정말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난 그 학교에 신규로 발령받은 아주 어린 막내로 (내 바로 위의 연배와 5년 차이였다) 다른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었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많은 정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교직생활 첫해에는 5학년, 그 이듬해에는 6학년 담임을 맡음으로써 2년 연속 가르친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아이들은 나를 아주 잘 따라주었고, 고학년 아이들이라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나의 기분도 적당히 잘 맞춰주었다. 이렇게 나는 다른 교직원들과의 관계에서나 우리 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나 어려움을 한 번도 겪지 않고 너무도 원만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학교생활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아주 거만하고 위험천만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로 올해, 그러한 나의 생각을 아주 철저히 부서뜨린 사건들과 맞부딪히게 되었다.
올해 맡게 된 2학년 아이들은 학급당 학생수가 지난해 보다 10명이나 많았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분위기를 파악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세심히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5년 3월 2일. 드디어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 작은 체구에 올망졸망한 눈빛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고, 나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순간 ‘핏’하고 웃음이 나왔다. 칠판에 나의 이름 석자를 가지런히 새기고 내 소개를 최대한 정중하게 했다. 아이들과 나와의 만남은 그렇게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 했다. 내 소개가 끝난 뒤,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씩을 나눠주며 “자~ 선생님 소개는 여기까지예요. 이제는 여러분이 선생님께 여러분 자신을 소개해 줄 차례예요. 선생님이 나눠주는 종이에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하겠어요.” 아이들에게 종이를 나눠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 근데 취미가 뭐예요?” “선생님, 특기가 뭐예요?” “선생님, 과목이 뭐예요?” “선생님, 장래희망이 뭐예요?”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평소에 당연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일 따위에는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설명도 잘 못하기 때문이었다. 취미면 취미고, 특기면 특기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아듣게 설명을 한단 말인가? 버벅대면서 한참을 설명하다보니 어느새 4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에게 자기소개서에 나와 있는 단어의 말뜻을 설명하는데 1교시를 다 허비해버린 것이다. 다리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더 이상의 질문이 나오지 않은 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똘망똘망한 눈을 굴리며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냐는 질문을 하니 어찌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그날 나는 개학식을 기념하는 학교방송 20~30분을 제외한 네 시간 중 나머지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매우 당황스러웠고 힘들었다는 느낌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어느 날은 수업 시간에 딴짓하다가 걸린 아이에게 옳은 소리 몇 마디 했더니 얼굴이 발개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까지 더듬으며 핑계도 제대로 못 댔다.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러니까… 저기…" 우물쭈물하는 그 아이에게 한마디 던졌다. "왜, 혈압오르냐?" 고학년의 경우에는 나의 한마디에 다른 녀석들이 웃어주면서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다음부터 조심해. 앉아." 한 마디 덧붙인 다음 수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반 녀석들은 혈압오른다는 내 말의 의미를 몰라 모두들 나만 뻥하고 쳐다보며 다들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 어색하고 썰렁하고 수습 안 되는 분위기를 어떻게 수습하고 수업으로 돌아간담?’ 그날 나는 많은 것을 또 느꼈다. 난 아직도 좀 더 유치해져야하고, 아이들이 즐겨보는 스폰지밥 만화를 봐야하겠고, '구체적으로'라는 말보다는 '자세하게'라는 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던 어느 날, 꼬치꼬치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가끔은 누가 복도에서 뛰었다는 둥, 화장실에서 장난을 쳤다는 둥의 귀여운(?) 고자질도 한다.) 나에게 오더니 "선생님, 아무개가 머리를 책상에 찧었어요."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평소 별일도 아닌 일에 큰일이나 일어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이였기에 별일 아니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혹시 다쳤나 싶은 걱정에 아무개를 슬쩍 쳐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무개는 멀쩡히 앉아있었다. 바쁜 일을 처리하고 있었던 나는 순간 버럭 화를 냈다. “그래서, 선생님 보고 어쩌라고?” 그런데 그 아이 말이 “그러니까 위로해 주시라고요.” 순간 나는 멍해졌다. ‘그래. 아이들이 바라는 것은 별게 아니다. 절대 별게 아니다.’ 나는 한 달 동안 내 자신이 아이들의 눈높이와 맞추기 위해 나를 많이 낮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을 내 눈높이에 맞추려고 아이들을 열심히 끌어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내놓아 두루미를 골탕 먹인 여우와 긴 호리병에 음식을 내놓고 여우를 골탕 먹인 두루미 이야기를 읽고서는 “선생님! 긴 호리병을 들고 먹으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텐데요?” 하지만, 이제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구나. 우리 그럼 여우가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함께 생각해볼까?”하며 여유롭게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들이고 함께 생각해본다. 요즘 나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가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박수진 | 1980년 전북장수에서 태어나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진북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신동초등학교에서 건실한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