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7 |
‘고까짓 것 엎어지면 코 달 년의 디’
관리자(2005-07-06 14:09:47)
‘고까짓 것 엎어지면 코 달 년의 디’
(채만식의 태평천하 중에서)
이십팔 관 하고도 육백 냥(약 107Kg)짜리 윤 직원 영감을 태운 인력거꾼은 평탄한 길로 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지만 골목으로 들어서서 경사진 길을 20여 가호나 지나도록 끌어올리느라 혀가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해서 가쁜 숨을 돌리면서 막 땀을 훔치고 있는 찰나였습니다.
“야, 이 사람아! 좀 부축을 하여 줄 일이지, 그냥 그러구 뻐언허니 섰어야 옳단 말인가?”
“......”
“인력거 쌕이 몇 푼이당가?”
“그저 처분해줍시오.”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악질 지주 윤용규의 아들 윤 두꺼비가 인력거 삯을 떼먹으려는 장면입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을 일이지, 젖 먹던 힘까지 써서 겨우겨우 끌어올린 대가를 웃돈으로 얹어 받을 요량으로 던진 그 한 마디 ‘처분대로’ 때문에 어젯밤 꿈자리를 탓해야 할 인력거꾼의 처지가 가엾습니다.
“아아니 여보소, 이 사람,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잔힛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가?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구 허길래 아 인력거싻 안 주어두 갱기찮헌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였지! 거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두 다아 있다구, 퍽 얌전하게 부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게 쟁히 기특허다구... 이 사람아, 사내 대장부가 그렇기 그짓말을 식은 죽 먹듯 헌단 말잉가?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네. 암만 히여두 자네 어매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이젠 제값은 고사하고 맥없는 어머니마저 욕을 먹을 지경입니다.
“나 참, 세상으 났다가 벨일 다 보겄네! 아아니 글씨, 안 받어두 졸 뜨으기 처분대루 허라던 사람이, 인제넌 마구 그냥 일원을 달래여? 참 기가 맥히서 죽겄네, 그만두소. 용천배기 콧구녕으서 마널씨를 뽑아 먹구 말지, 내가 칙살스럽게 인력거 공짜루 타겄당가! 을매 받을랑가? 바른대루 말허소!”
“그럼 오십 전만 주십시오”
“아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 허구 실갱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시리 자꾸 쓸데읍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오십 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고까짓 것 엎어지면 코 달 년의 디를 태다주구서 오십 전 씩이나 달라구 허닝게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습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리 값이나 나우 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옛네, 꼭 십오 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게 이십 전을 주넝 것이니, 오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아 먹든지 탁배기를 사 먹든지 맘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이젠 적반하장 격으로 누가 기가 막힐 일인지 종잡기 힘이 듭니다. 말로 따진다면야 수전노 윤두섭의 주장이 일리가 있지요. 인력거꾼이 공연한 말을 해 가지고 윤 두껍이가 안 내도 될 돈을 내야 할 판이니 그로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이십 전이 즉단 말인가? 이 사람아 촌에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십 전 한 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섰으니깐 헤”“아아니, 이 사람이 인제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럴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니 기차니, 몸 무겁다고 돈 더 받넌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티어? 이것 받어갈랑가? 안 받어갈랑가? 안 받아간가면 나 이놈으로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어 먹을라네.”
윤두섭의 말하기가 부럽습니다. 말이란 게 그런 거지요. 이치를 따져가면서 자신에게 이로운 말을 잘 찾아가며 써야 합니다. 물론 대화 상대자 사이의 힘의 우열 관계가 말하기의 흐름을 변화시키지만 결국은 어떤 말을 선택하여 말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계속 변동되기 마련입니다.
이 말하기에서는 누가 뭐래도 윤두섭이 이겼습니다. 인력거꾼이 제값을 받아내려면 악다구니를 쓰거나 제 값을 받아야 할 당위성을 설파했어야 옳습니다. 답답한 일이지만 인지상정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에서는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합니다.
방언의 미학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지만 방언 즉 현장의 언어 속에 들어있는 이 엄연한 사회적 역학 관계야말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이익이라면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 극단적 이기주의자 윤두섭은 이 시대에 꼭 맞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욕으로는 ‘잡아 뽑을 놈, 짝 찢을 년’이 대표적입니다. 그런 그가 참새가 ‘찍 한다’고 해도 죽고, ‘짹 합니다’ 해도 죽고 필경 ‘짹짹 한다’고 해도 죽을 판국에서 화적패를 향해 악다구니를 씁니다. “착착 깎어 죽일 놈!”
| 언어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