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7 |
‘오래된 나’의 수박색, 어머니!
관리자(2005-07-06 14:04:22)
‘오래된 나’의 수박색, 어머니!
|글 이동희 시인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는 그렇게 초여름의 빗속으로 걸어왔다. 상실이 패배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아픔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를 바랄 때마다 겨울 나그네는 언제나 그를 찾아온다. 음악은 감성의 언어다. 그래서 그가 독일어로 노크해도 그의 방문은 언제나 위로가 된다. 회색빛 방문을 수박색으로 칠하는 위로가 된다.
다섯 살이 닫기에는 너무도 힘겨웠을 전쟁의 무거운 문으로 나가신 그의 아버지이자 그녀의 지아비 지촌(芝村)선생은 한강을 넘어오지 못했다. 이 가정에 ‘미완의 거인-동경의 전설’이 되신 그분을 기다리는 그의 내자이자 나의 어머니 금종(金鐘)의 삶은 이미 목숨이 아니었다. 층층의 존속, 반 다스쯤의 비속, 손에 선 생존으로 몸은 나날이 가벼워졌고, 여기에 불치의 병 고독은 마음마저 헐거워지게 하였다. 그것은 마땅히 병마와 친교하는 과정이었다.
가벼워지다 더 이상 쏟아낼 눈물이 없을 때, 헐거워지다 더 이상 어깨 들먹일 꿈이 없을 때, 슬픔은 새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불혹의 초입에서 모든 것 손놓으실 때, 그는 이제 열 두 살이었다. 그녀가 살았던 세월만큼 지난 뒤에 그녀를 묻은 땅을 팠다. 남은 것은 구멍 숭숭 뚫려 피리가락 같은 서늘한 한숨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소금끼 무거웠을 눈물자국 남아 있지 않았다.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다니! 그녀는 당신의 가슴을 쪼아 피울음을 우는 새가 되었으리. 이 산(아들) 저 시내(딸)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새가 되었으리.
‘예술은 결코 즐거움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슬픔과 고통이 낳은 산물’이라고 어느 예술가가 말할 때, 겨울 나그네를 해독하는 실력으로 그는 ‘인생은 결코 즐거움이 아니라, 극도의 슬픔과 고통이 낳은 산물’이라고 새겨듣는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피울음 울었을 어미새는 수박색으로 그를 찾아오시곤 했다. 찾아와서는 한 묶음의 시를 주시거나, 한 다발의 노래를 풀어놓고 가셨다. 그 시와 노래 위로 꽃이 자라고 나비도 날았다.
당신께서는/ 스스로 단 먹이가 되실 때/ 자식들은 허기진 짐승이었습니다.// 당신께서는/ 기다림의 노래요 금종일 때/ 시대는 사나운 포성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지는 저녁놀/ 대나무 숲 머리칼 쥐어뜯으며/ 문풍지 길게 우는 겨울 밤마다/ 얼어 터져 갈라지던 가슴여울 소리/ 어머니/ 아버지// 앞머리를 긁어도 빨리 오시지 않고/ 뒷머리를 긁어도 늦게 오시지 않던/ 은하를 가는 좋은 소리로만 살아계시는/ 금종이십니다/ 은종이십니다/ 당신께서는.// <졸시,「사랑으로 달게 먹이시고」-지촌아버지 금종어머니를 기림>
그가 그녀로부터 받은 한 묶음의 사랑이거나, 한 다발의 그리움을 엮은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당신 때문에 인생을 무겁게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을 불혹의 절명!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더 이상 짐이 되기 싫다는 듯이 망각의 땅에다 묻었다. 차가운 별리의 자락에 묻고는 돌아서 버렸다. 무심한 세월만이 아무것 가진 것 없이 떠난 그녀를 비워내고 있었다. 비우면 비울수록 되살아나는 수박색 기억! 이를 어쩌지 못하는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나그네가 된다.
새가 되었거나 나비가 되었을 그녀를 기리는 돌비석 위로 초여름 수박색이 찾아온다. 때를 맞추어 나그네 그 주위를 맴돌다. 불의 강을 건너오지 못함으로써 영혼의 역마가 되신 지촌 아버지. 이 산 저 시내 눈물샘 물길을 내시는 금종 어머니. 마침내 가야할 저 마지막 나그네길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나의 노래가 되는 것은, 모두가 ‘오래된 나’였던 이분들의 수박색 지킴 때문이리라.
이동희 |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대 겸임교수로 일하면서 전북시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빛더듬이』, 『사랑도 지나치면 죄가 되는가』, 『은행나무 등불』이 있고, 저서로는 『숨쉬는 문화 숨죽인 문화』, 『문학의 즐거움 삶의 슬기로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