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시다바리'가 지나온 全州이야기
신귀백(2003-04-07 15:09:17)
『친구』를 보고서 내내 속이 불편했다. 왜? 유오성 말대로 "쪽팔리는" 것들이 많아서. 영화 자체 이야기는 너무 떴으니 생략하고 나는 변명하고자 한다. 교련복 세대들이 다들 제 자리에서 일·가족·경제·취미·사랑·술·여가 등 여러 개의 윈도우를 걸쳐놓고 살아간다. 윈도우가 많으니 당연히 속도는 느려진다. 하드용량은 적고 일은 많으니…
결혼식 봉투로 일요일 때우고, 초상집 다니며 30대가 휙 갔다. 고백하자면 새끼들 무슨발표회 '쇼'가서 사진 찍어주려고 친구모임을 빠지기도 했다. 섬진강 곁 매화마을은 형제들하고 갔으니 격포의 쭈꾸미 파티를 처가식구들과 함께하는 것은, 이 '시다바리'만의 이야기인가? 친구에서 가족으로 '커뮤니티'의 중심축이 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친구"란다.
추억은 기억의 노를 저어 그 섬을 찾아가고자 한다고? 1976년 부산에서 "깡패"영화 『친구』는 시작된다. 그 때 전주. 튀김골목. 그 튀김집에는 쿨하게도 디제이도 있었다(아! 가고 싶어라). 튀김골목의 전주극장, 미원탑 옆 아카데미 극장 지금은 없다.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어느 것 하나도 빼먹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면 여학생들은「베테랑」에서 칼국수를 먹었고, 교련복 바지에 건빵을 달면 멋이 넘쳐나던 우리는 포장마차로 갔다. 간이 작아서「뚝너머」는 못가고 "때포차"를 타고 그 짧은 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즐기려 기차난간에 매달려 동산·삼례·대장촌 거쳐 이리로 돌아왔었다.
대가리에 피가 말라도 '시다바리'였던 나는, 의리 챙기는「월드컵」쪽 보다는「강경식당」이나「송천식당」에 출석을 했고 가끔씩은 여성동무들과 겨울에는「설빈」을, 여름에는 「서울소바」도 들렀다. 그렇다고 술만 먹었으랴. 윤상원의 들불야학은 못돼도, 새마을 야학에서 <천국의 아이들>과 3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여학생은 이일여중 다니는 여동생이 종례를 늦게 받고 오면 학교에 지각을 했었다. 왜? 가방 하나로 둘이 학교를 다녔으니까. 영화에서처럼 마라톤 대회도 없어서 그 여학생은 2학년이 되자 끝내 학교를 그만 두었다.
「평화동 99번지」와 부산 주례구치소를 줄기차게 면회를 다닌 나는 교도소의 면회에서 웃고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슬픔의 그림자라는 것도 안다. 하여, 면회 마치고 돌아서는 유오성의 뒷모습 연기가 내게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사이 직장을 잡고「지나다 들렀습니다」를 지나고 나니, 천원만 하시던 '휴전선'의 시인은 이제 도서관에 안 계신다. 그리고 이제「새벽강」까지 흘러왔다.
시덥잖은 잡사를 늘어놓는 것은 용머리 고개의 풍경, 혹은 남부시장「현대옥」같은 맛을 담은 전주영화는 없나?하는 생각에서이다. 사투리가 지역감정으로 들리지 않는 부산영화를 보며 경기전 은행잎을 담은 영화에도 부산은 뱃고동을 울려주리라 믿는다. 올봄 성심여고의 세라복이 유독 반가운 것은 주름치마와 하얀 스타킹이 유행이어서일까. 옛친구여! 연락하라.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