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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7 |
그대여돌아오라
관리자(2005-07-06 13:58:16)
역사적 소재의 세련된 현대판 해석 몇 년 전부터 국내 무용계에는 세 가지 정도의 새로운 변화가 보이고 있다. 무용예술이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조짐과 각 지역 무용계의 발전 속도가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 그리고 대학 무용과의 미달 사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무용예술의 경쟁력 강화란 측면에서 보면 대체로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의 세계 무용계는 무용예술이 중심이 되는 크로스오버 작업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특성을 가진 무용예술은 다른 장르로부터 가장 많은 러브 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무용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지나친 크로스오버 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서기도 한다. ‘Back to the Body’ 무용예술 본래의 모습인 몸이 중심이 되는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자의 생각에 ‘다시 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무용예술에서 ‘몸’이 갖는 비중은 그 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현대무용단 사포의 <그대여 돌아오라>(6월 1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공연은 바로 최근의 이 같은 국내외 무용계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대무용단 사포의 창단 20주년을 기념해 올려진 이번 작품은 이 무용단이 간직하고 있는 정체성과 창작 작업에서 축적한 힘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작품의 질적인 수준면에서 지역 무용계의 눈부신 성장을 확인시켜주었고, 무용수들의 몸이 보여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그대여 돌아오라>는 그 만큼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작품의 중심에서 힘을 발휘했다. 대본, 안무 포함 무대예술 요소들의 성공적 융합 <그대여 돌아오라>에는 <춤으로 보는 역사 II-다시 보는 동학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50분이 넘게 풀어내는, 짧지 않은 길이였던 만큼 작품의 전체적인 틀은 동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서술적 구조로 풀어가는 구조가 되리라고 예상했으나, 작가(한혜리)와 안무가(김화숙)는 이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 모두 7개의 다른 장면을 통해 상징적인 이미지로 구성했다. 이 같은 시도는 스토리텔링에 의한 구조가 주는 식상함에서 탈피하는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인 사건을 무대화한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칠 위험성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안무가는 특히 소품과 의상을 통한 시각적 효과와 다채로운 음악을 통한 움직임의 변용, 그리고 이를 매개로 드라마성을 살려내는 시도를 통해 이 같은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그대여 돌라오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시각적 환타지이다. 디자인에서부터 색상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채색한 의상(엄규선), 한 송이 한 송이씩 모여 무대 전체를 뒤덮는 국화 꽃, 적절한 시점에 적당한 범위로 가세한 영상(이완섭), 개개 장면마다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조명(공준택), 그리고 무엇보다 솔로와 4인무, 6인무, 더 많은 숫자의 군무를 대비시키며 각기 다른 속도와 움직임으로 변주해 나가는 안무 등 무대 위에서 직접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부문들에서 고루 뛰어남을 보였다. 시각적 환타지는 또한 음악과  이들 여러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묻어나도록 한 안무가의 연출적인 감각에 의해서도 살아났다. 한두 개씩이 모여 다채로운 조합으로 무대를 변형시키는 베개 등 소품의 활용을 통해 움직임을 다양화시키고, 이를 통해 조형적인 미를 형성하고, 마지막에 드라마적인 효과로 끌어내는 안무가의 감각은 탁월했다. 하체를 풍성하게 처리한 롱 드레스에서부터 오렌지 빛 색상에 이르기까지 디자인과 색채감의 선택에서 보이는 특별한 감각의 의상도 작품에 환타지를 불어넣었으며, 동요에서부터 클래식 기타, 보컬이 가미된 현악기, 그리고 북소리가 주조를 이룬 음악 선곡과 편집 역시 각 장면의 이미지와 전체적인 드라마성을 살려내는데 만만치 않게 기여했다. 프롤로그에서 코러스를 배경 음악으로 한 국화 꽃 등장 장면에서부터 빠른 빠르기의 북소리에 실린 남성 4인무의 완급이 조율된 움직임, 현악기의 빠른 템포에 실린 상체의 움직임에 포커스를 둔 여성 7인무 등 초반부부터 음악과 춤의 교합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감성을 드라마 속에 끌어안았다. 작품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베개를 활용한 장면은 소품을 활용한 움직임 확대와 시각적 변용의 성공이란 측면에서 근래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 중에서 기억될 만한 명장면이었다. 베개를 던지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안거나 베고 눕거나 다시 사선으로 하나 둘씩 놓았을 때  만들어진 간극, 그 앞으로 무리지어 지나오는 행위에서 관객의 상상력은 마치 무한대로 팽창되는 듯 했다. 그 만큼 이 장면은 강렬했다. 손인영의 안무 작품 <페미타지>에서 베게를 활용한 움직임의 변용이 주는 감흥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 장면에서 드라마적인 구조 속에서의 행위 뒤에 숨은, 행간을 읽는 묘미는 색달랐다.   도입부와 종반부에 보이는 아들과 어머니의 조우 장면에서 흑백 톤의 영상과 상하 공간을 분할한 무대미술,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온화하지만 차가운 톤의 빛이 만들어낸 이미지도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은 전 장면에서, 신용숙이 긴 드레스를 입고 홀로 돗자리 위에서 추는 춤과 연계되면서, 동학혁명이 갖는 역사성을 아들과 어머니의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삶과 순수의 세계로까지 승화시킨 압권이었다. 이 작품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무대예술에서 중요한 요소인 조명, 의상, 음악, 소품의 성공적인 융합, 그리고 그 중심에서 무용수들의 춤이 이루어낸 전체적인 앙상블 힘 때문이다. <그대여 돌아오라>의 제작진들이 벌인 동학혁명의 현대판 굿은 이렇듯 요란스럽지 않은, 차분한 한 판이었지만 그곳에 담은 정신은 관객과 따뜻하게 소통한, 인간적인 휴머니티가 물씬 배어나는 지극정성의 한판 굿이었다. 현대무용단 사포의 창작 작업은 지난 20년 동안 사회성 강한 소재의 무대화와 야외공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특이한 구조를 활용, 위에서 내려다보도록 제작된 공연 컨셉 등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지역 춤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전북 지역에서 현대무용단 사포의 정체성은 지역 무용계의 차원을 넘어 한국 무용사회 전체에 새로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향후 꾸준한 제작 지원을 통한 레퍼토리화 작업, 단원들의 앙상블을 더욱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훈련 프로그램 가동, 그리고 객원 안무가 초청 등을 통한 다채로운 색깔 입히기 등의 시행이 뒤따른다면 한국의 무용사회 전체 속에서 현대무용단 사포는 그 예술적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장광열 |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정책을 전공하고, 월간 ‘객석’ 편집부장을 지녔다. 현재는 무용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한국 춤 정책 연구소 소장, 국제 공연 예술 프로젝트 대표, 외교통상부 공연예술 자문위원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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