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5.7 |
'스승과 제자, 전승과 창조의 아름다움'
관리자(2005-07-06 13:56:32)
계속 이어지는, 이어져야 할 춤과 가락 사단법인 마당에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을 기획하여 공연한 지 벌써 열네 해째이다. 일 년에 한 번씩 했으니, 이제 열네 번째가 되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 년하고도 네 해가 더 지났으니,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이 이번 공연이다. 그러기에 이번 공연은 여느 해와는 다른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사단법인 마당에서 기획한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그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예술을 재평가하고, 숨어 있는 예인들을 발굴하여 전승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기왕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예인들이 새롭게 무대에 서서 평가를 받았고, 숨어 있던 예인들이 나와 깊이깊이 감춰둔 자신의 예술을 선보였다. 장녹운(춤), 장금도(춤), 황귀언·유만종·강대홍(고창농악), 장상철(영산작법), 김봉렬(상쇠춤), 홍유봉(채상소고), 유지화(쇠놀음), 박판렬(설장고), 박복남(판소리), 유명철(상쇠놀음) 등 많은 명인들이 이 공연을 통해서 소개되고, 재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일주(판소리), 최승희(판소리), 나금추(상쇠춤), 강정렬(가야금병창) 등이 초청되어 다채로운 우리 지방의 전통 예술을 선보였다. 그 외에도 전라남도의 박병천(진도 북춤), 박동매(남도 들노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인들도 초대되어 그야말로 전통 예술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작년에는 마침내 서울 나들이를 통해 우리 지역 전통 예술을 외부에 자랑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기획이 열네 해 동안이나 큰 호응 속에서 계속되어 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 지방의 예술의 전통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넓고 깊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준 높은 전통 예술에 대한 우리 지역 청중들의 애정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예술도 청중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전통 예술은 구비 전승되는 것이어서 청중으로부터 선택을 받아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발굴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은 ‘스승과 제자’라는 내용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니까 그 동안 발굴, 소개한 전통 예술이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스승과 제자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첫 번째 무대를 장식한 최승희와 모보경은 모녀지간이다. 최승희가 부르는 ‘춘향가’는 정정렬로부터 김여란을 거쳐 전승된 것이다. 정정렬은 우리 고장 익산 망성면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춘향가’로 유명한 명창이었다. ‘정정렬 나고 ‘춘향가’ 새로 났다’고 일컬을 만큼 ‘춘향가’를 일신시킴으로써 현대 ‘춘향가’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현대 ‘춘향가’는 정정렬 ‘춘향가’로부터 자양을 공급받고 자라났는데도, 정정렬 바디 ‘춘향가’를 오롯이 전승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승희는 정정렬 바디 ‘춘향가’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최승희는 오래 동안 별다른 제자를 두지 못해, 결국 정정렬 바디 ‘춘향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이번 공연은 그간의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모보경의 기량이 이제 안심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노명창의 얼굴에 가득히 번진 미소를 통해 청중 모두 그러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두 번째 무대를 장식한 강정렬은 이제 우리나라의 유일한 남자 병창 명인이다. 병창은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부르는 판소리이기 때문에 가야금과 판소리 실력 모두 훌륭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강정렬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몇 안 되는 명인이다. 강정렬은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첫회에 소개되었다. 얼마 후 그는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었다. 강정렬은 다른 명인들에 비하면 젊다. 이제 그의 나이 쉰여섯이기 때문이다. 처음 소개될 때는 사십대의 단단하고 짱짱한 소리가 일품이었는데, 오늘의 그의 소리에는 그 동안 쌓인 세월만큼의 깊이가 더해져 있었다. 그러나 스승이 기량이 출중할수록 제자 두기는 더 어려운가보다. 아무래도 강정렬은 좀 더 외로워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무대의 주인공 나금추는 우도 농악 상쇠춤의 일인자답게 완벽한 춤사위와 쇠가락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육십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전혀 실감나지 않는 나금추의 몸놀림은 역시 무대에 서면 힘이 절로 나는 예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제자 조상훈은 타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젊은 연주자로서 타악 그룹 <동남풍>을 이끌고 있다. 조상훈은 많은 해외 공연을 통해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스승보다 오히려 활동 영역이 넓다. 그러기에 젊지만 역시 믿음직하였다. 스승의 상쇠춤이 부드럽고 화려하다면 제자의 것은 보다 빠르고 힘차다. 아마 남녀의 차이, 연륜의 차이, 감성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훈이 미래의 우도 농악 상쇠춤을 이끌어갈 확실한 재목이라는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수는 없을 듯하다. 여는 무대와 닫는 무대는 월드뮤직그룹 <오감도>가 장식했다. 오감도는 요사이 국악의 현대화, 세계화를 위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퓨전’ 그룹이다. 국악기와 양악기를 사용해 새로운 감성으로 한국적인 음악을 펼쳐 보였다. 이번 <오감도>의 연주곡은 선율로 연주하는 사물놀이라고 할 만하였는데, 즉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들의 능력은 참으로 놀랄만하였다. 그러나 <오감도>의 공연에 대해서는 공연 전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전통 음악 공연에, 더구나 ‘스승과 제자’를 주제로 한 공연에 왜 오감도가 앞뒤를 장식하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그런 논란은 막상 공연이 시작되고 청중들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자 언제 그랬냐 싶게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기량은 우리 전통 음악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었고, 그들이 들려주는 선율은 청중들의 감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 음악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의 하나는 ‘세계화’의 문제이다. 세계로 뻗어가기 위해서는 전통도 중요하지만,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양식의 창조가 필수적인데, <오감도>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전라도는 전통의 마지막 보루라고 한다. 이 지역에는 아직도 우리 전통 예술의 감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는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전통은 새로운 창조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을 때 더욱 가치를 갖는다. 우리 지역에서는 그 동안 전통적인 것을 지키는 일은 잘했으나,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했다. 이제 <오감도>가 그 일을 해내고 있다. 이번 공연의 시작과 끝을 <오감도>의 무대로 잡은 이유도 아마 <오감도>의 활동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감도>의 연주에 대한 청중들의 뜨거운 반응 또한 이들에 대한 일반의 기대를 짐작케 하였다. 공연은 공연 기획자와 출연자, 청중이 만족할 수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공연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노명인들의 깊이와 젊은이들의 패기, 청중들의 높은 감식력과 애정이 어우러져 감동적인 시간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 동안 소개된 명인들 중에는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많다. 더러는 믿음직한 후계자를 두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사단법인 마당의 노력이 계속되어, 공연이 이어져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공연으로 실현되어 청중과 호흡할 수 없는 예술은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 예술은 청중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므로. 최동현 |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군산대 국문과 교수로 일하면서, 판소리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저서로 『판소리 연구』, 『판소리는 무엇인가』, 『판소리 이야기』, 『흥보가』, 『판소리 단가』 등이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