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7 |
반가운 춤, 익숙한 가락
관리자(2005-07-06 13:35:55)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공연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리허설이 끝나고 출연진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저는 빈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대의 반투명막 뒤에서 조명 담당자들이 마지막 미세 조정에 정성을 기울이는데, 베이스 기타 연주자 혼자 오락가락 종잡을 수 없는 불빛 속에서 연습을 합니다. 그러다가 뒷문이 닫히는 소리가 가만히 들리더니, 조용해졌습니다. 무대가 텅 비었습니다. 일월오악도를 닮은 이상조 화백의 열 폭 병풍 앞에 대나무 돗자리가 두어 평 깔리고, 가장자리를 따라 놓인 방석 두 개에는 북과 북채가 놓였습니다. 숨을 고르며 저는 천천히 병풍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해와 달이 창을 열어 산의 뼈대를 비추고, 하늘 밖으로 천천히 별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갑니다. 나무들이 높은 곳에서 새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병풍이 그동안 들었던 수많은 노래들이, 북이 반주했던 여러 명창들의 쉰 목청이 들릴 듯 말 듯 아련하였습니다.
상상은 현실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떠난 상상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구하는 마음은 이것을 바꾸려고 애쓰거나, 이것 대신 저것을 들여놓으려고 궁리할 것입니다. 전자가 상상이라면, 후자는 탐욕에 가깝습니다. 저것이 이것이 되는 순간, 탐욕은 다시 이것 밖의 저것을 그리워합니다.
명창, 명인들의 소리와 솜씨를 보고 들으며, 또 그 제자들의 욱실득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습니다. 이런 풍경이 자리를 잡는데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린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가꾸어 온, 아니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소리들이 지금 우리의 소리로 남았습니다.
그날 무대 위에 병풍과 북이 아니라 사육제의 가면과 보면대가 놓여 있었다면 저의 상상은 다른 길로 걸어 나갔을 테지요. 그렇지만 『풍속의 역사』를 한 번 읽어 본다고, 유럽인도 잘 모르는 유럽인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본다고, 제 마음이 구라파 식으로 바뀔까요? 현생 인류가 하나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자궁에서 나왔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세계 각처에 흩어져 각자의 문화를 이루고 살기까지 20만년이 흘렀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시간은 혼돈을 잡아먹고 질서를 낳는다고 합니다. 이것들이 다시 섞여서 푹 삭으려면 적어도 역사시대가 흘러온 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승에서의 제 목숨은 그처럼 오래 기다리지 않겠답니다.
삶이 다하기까지 저는 제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들을 즐길 것입니다. 오방색이 어울린 단청, 판소리 한 대목, 논을 건너오는 바람 냄새, 맑은 차 한 잔, 주름이 거친 아내의 손, 이런 것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물으셔도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기다리며 부지런히 백제기행 다니다 보면, 없던 내공도 더러 쌓이는 법이라고 말입니다. 모처럼 낯 뜨거운 자랑 한 마디 올립니다.
| 정철성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