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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보조개 선생과 함께 하는 선화 모험기
관리자(2005-06-13 16:35:29)
보조개 선생과 함께 하는 선화 모험기 | 이민혜 전주 선화학교 교사 내 안의 편견 긁어내기 세상을 향해 온갖 호기심으로 가득 차 특수교육을 시작한 나는 새로운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기대와 사명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천사와 같은 눈망울을 가진 친구들 앞에서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기억은 어릴 적 읽은 위인전 헬렌 켈러와 날 항상 언니라 부르던 동네 언니가 전부다. 그 때의 난 조금의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람은 사람이라 생각했지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조차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다른 생각 없이 장애인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고, 기억 속에서 그 사람이 지워지기 까지 장애인이란 세 글자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나를 휘감고 있는 다수자로서의 교만함과 앎의 병이 장애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체를 극악한 괴물로 만들어 버렸고,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속 되었다. 내 안의 이 흉물스런 마음이 사라진 건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답은 간단했다. 그들과 가까이 하는 것이었다. 특수학급에서 근무하던 나는 수백 명 속의 소수였던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며 세상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과 정으로 따뜻하게 대하고, 어떤 이는 우리 아이가 옆에 오는 것조차 허락지 않는다. 그 학생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왜 싫은지를 묻는다.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교정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기다리다 기회가 온다면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의사나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면 ‘OO장애’ 따위는 잊어버린다. 단지 천하보다 귀한 나의 학생이라 여기며 함께 한다. 작년 청각장애학교로 옮겨 오게 되었을 때 내 안에는 ‘이제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맘과는 다르게 오늘도 여전히 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을 수십 번 외쳐대고 있다.      손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아이들 퇴근 후 이른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켠다. 현란한 춤사위를 뽐내며 가수가 열창을 하고 있다. 빠른 비트의 음악이 나의 마음까지 울렁이게 한다. 리모콘을 들어 음량의 막대를 하나 둘 줄여나간다. 소리도 줄어든다. 화면엔 더 이상 줄일 음량의 막대가 남아있지 않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남은 나는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그래도 가수는 춤을 춘다. 나는 가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입 모양을 읽기도 전에 다음 가사로 돌진해버리는 가수. 슬슬 재미없어지고 답답하다. 다시 리모콘을 들어 음량의 막대를 하나 둘 늘리기 시작한다. 반가운 멜로디가 내 귀를 자극한다. 소리의 예술인 음악, 그 속에 서서히 빠져드는 나를 본다. 소리 없는 상상을 하다 많이 하는 일이다. “가수 비가 너무 좋아요!” 중학생인 우리 반 여학생들의 한결같은 취향이다. “왜 좋은데?” 놀랍게도 보통 아이들처럼 노래를 잘 한다고 대답한다. 물론 직접 노래 소리를 듣지 못하니, 누군가가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한 것을 듣고 그러는 것일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다. 특히 좋은 음악, 부모님의 격려의 말, 선생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음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앞으로도 소리의 발견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그렇지만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된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수화라는 귀중한 언어가 있기에 우리 아이들은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다. 하루 계획도 수화로 세우고, 수업도 수화로 진행하며,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갈 때도 수화로 인사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화라는 시각 언어를 사용하기에 친구들과 선생님의 신체적인 특징을 잘 찾아낸다. 이는 곧 얼굴이름(수화이름)이 되는데 ‘홍길동’이란 사람의 경우 ‘ㅎ,ㅗ,ㅇ,ㄱ,ㅣ,ㄹ,ㄷ,ㅗ,ㅇ’이라는 지화를 쓰지 않고도 얼굴이나 신체의 특징을 찾아 여자는 새끼손가락을 남자는 엄지손가락을 함께 사용하면 ‘홍길동’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학생이나 선생님은 모두 얼굴이름을 가지고 있고, 나 역시 보조개가 들어가기에 보조개+여자이면 내 이름을 말하는 줄  알 것이다. 구화 중심이던 아이들이 중등과정으로 올라오면서 수화 중심의 교육을 받게 된다. 수화를 사용하면 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단어가 생략되고,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발생한다. 나는  수화와 함께 구화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수업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상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목소리를 내게 하는데 특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의 경우 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더욱 질문을 많이 던지고 답을 받아낸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은 언어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언어 표현에 많은 어려움을 보인다. 그래서 바른 표현을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삶고 있는데 컴퓨터를 이용해 매일 메일을 쓰고 휴대폰으로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도록 지도한다. 청각장애인이 적절히 조사를 사용하고, 접속사를 이용하고, 느낌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생각해 보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도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학교 안에서는 전혀 장애를 의식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나 사회 속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많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좌절의 경험이 누적되면 만성적인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이것은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귀결된다. 난 우리 아이들이 의욕을 잃고 시무룩한 얼굴로 앉아 있을 때 화가 난다. 생활태도가 좋지 않다고 나무라기 전에 아이들의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청량제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읽은 소설, 역사적으로 흥미 있었던 사건,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또, 또, 또’를 외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하며 인간은 강인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한다. 목적이 있는 생명은 상치 못한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의 인생의 목표는 가끔 엉뚱하고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난 웃으며 노력해보자고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음에 나는 겸손함을 배운다. 더디게 변하고 성장해서 가끔은 답답하고 회의가 밀려오지만 순간순간 성장하고 있음을 내보이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기쁨과 함께 멈출 수 없음을 느끼고 감사한다.   옆의 수화는 ‘할 수 있다’를 나타낸다. 보통 문법식 수화에서는 ‘하다+~수+있다’라고 해야겠지만 간단히 손바닥을 얼굴에 댔다 떼면서 ‘파’라고 말을 하는데 선화학교에 온 첫 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외쳤는데 앞으로도 나와 우리 아이들의 앞 날 엔 ‘파! 파! 파!’다. 이민혜 | 1978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우석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주 선화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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