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문화시평]
각각의 모티브, 조화가 부족했다.
전주시립극단 <춤추는 모자>
류경호
창작극회 대표(2003-04-07 15:05:40)
전주시립극단이 창단되어 시민들의 연극적 정서함양과 문화예술에 기여하고 이 지역 공연문화를 한 차원 이끌어 올리는 역할을 수행해온지 10여년이 되었다. 여러 면에서 이 지역 민간극단이 추진하지 못하는 대형 기획공연이나 흥행과는 관계가 없이 시민들과 어울려 한판 놀이로 마무리되었던 공연도 올려져 민간극단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전주시민들도 시립극단의 공연이라면 어느 정도 믿음과 재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서며, 무료공연이 갖는 한바탕 소일에 대하여도 바쁜 일정 속에 연극이라는 한웅큼 멋진 시간을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시립극단의 <춤추는 모자>는 이 지역극단의 하나로서 시민들의 정서에 부합할 수 있는 공연으로서 그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공연의 하나였다. 원작(작가: 파울 마르 Paul Maar, 제목: 모자 바꾸기)은 참고본으로 하고 전체 구성과 대사는 시립극단의 단원들이 우리 실정에 맞게 전체를 뒤집어 다시 탄생한 공연이다. 일련의 이러한 작업은 시립극단이 작년부터 새 상임체제가 되면서 고금석 연출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특장의 하나라고 본다. 연기자들이 직접 상황을 만들고 여기에 부합하는 대사와 움직임 그리고 주변 세트나 소품의 활용까지 모두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이 설정하고 짜나가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좋은 성과를 올린 공연이 <광대들의 학교>이다. 이번에 만든 <춤추는 모자>는 그 두 번째 공연이 된다.
<춤추는 모자>는 가족뮤지컬로 가족이 함께 즐겨 볼 수 있는 공연내용과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마임을 적절히 배치하여 관심을 끌기에 족하다.
모자 때문에 어처구니없게도 하늘이네는 이사가기로 하여 짐 꾸러미가 마치 폐품 집합소를 연상케 하며 공연은 시작된다. 왁자지껄 시장판 같은 모습을 연출하며 화합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집안 식구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세상에 저런 아수라장이 있을까' 하는 심경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의도된 연출방식의 하나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객석에서 보기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대는 돌아가다가 어느 순간 자리를 잡아가지만 어린 학생의 숙제 밀린 심정으로 공연을 보는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보여지는 단원들의 땀과 노력은 곳곳에 배어나며 고뇌의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루어낸 긴 팔의 마임은 관객들이 호응하고 도둑의 마임연기 또한 워크샵의 한 결실로 다가온다. 특히 마임을 동원한 자석연기와 스포츠카를 타고 가며 기분을 만끽하는 모습은 연극적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서두와 중반 그리고 종반부에 첨가된 노래와 춤은 뮤지컬이라고 일컫기에 무리라는 생각이다. 전주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홍보'하는 노래가 극중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며 현실에서도 그러한가. 물론 관립단체의 성격상 시정과 무관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일리가 있다. 그리고 가끔 춤과 노래가 있으면 뮤지컬이 되는가. 노래는 녹음한 것을 배우들이 립싱크로 처리해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극적 상황과 밀접하지 않아서 장면 전환용으로 처리한 감이 짙다. 들을거리로서 들을거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묘한 극적 앙상블을 이루었을 때 공연에 참여한 모두와 입추의 여지가 없었던 어린이와 객석 통로에 신문지 깔고 쪼그리고 앉아 공연에 관심을 기울인 시민들의 감성은 충분히 동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한편으로 무대장치를 다시 생각케 한다. 기발한 아이템을 개발하여 장치비의 절감과 다양한 연극적 활용을 기대했던 탓에 석연찮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좀더 과장하고 좀더 해학적으로 포장해서 기막힌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으면 하는 안타까움이다. 물론 순회공연용으로 제작해야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멀리 가지 않는다면 미학적인 면을 고려하여 어설픈 것도 무대 위에 꽉 차있으면 색다른 감흥을 주고 또 다른 질감으로 다가오는 세트를 준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무대 위에 올려 놓을 소품이나 장치가 시장에서 흔히 보이는 상표로 여과 없이 그렇게 방치되었을 때 관객의 상상력은 제한적이지 않을 수 없다.
가족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극적 난이도와 관객 공감대 형성에서 해독의 어려움은 난수표를 풀 듯 해야만 했다. 어린이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일상을 설명 없이 전달하고, 어린이가 보기에 관심을 보일 만한 것이면 집중력이 떨어져 이내 어린 관객의 집중력을 흩어놓는 산만함이 그것이다. 한 예로 마임연기나 의상이 도둑으로서 재미있는 상황으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도 어린이들은 일순간에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잡담을 하기에 이른 것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고려한 적절한 방법의 장치가 미약하다는 뜻이다. 그럴진대 여러 상황이 겹쳐 나오는 가족들의 일상의 모습은 주파수가 다른 AM라디오를 여러 대 틀어놓은 것 같았다. 참으로 한 방송을 듣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극적 아이디어가 출현하는 것은 이 작품을 끝까지 지탱해준 삶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모자를 쓰고 의미 없이 던진 말에 배우는 꼼짝을 못하고 자석이 되어 둘둘 끌려가는 가족들의 모습과 대사 하나 없이 자신의 의미화에 적합성을 더해준 도둑의 신체언어는 개발 가능성을 인증 받았다고 본다.
다만 극적 효과의 다양한 접목을 시도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지 않았나 하는 조바심이 앞선다. 놀이로서의 극이 관객들의 추임새를 적절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구조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와 역할에서 일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각기 다른 모티브로 접근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보이지 못해 급조했다는 느낌이다. 희곡은 희곡으로서 존재하며 연극적 상상력을 위한 텍스트의 하나일 뿐이다. 공동으로 구성한 희곡은 그렇듯 어딘가 허술하고 공허하게 빈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무대화되어 관객과 하나된 몸짓으로 육화되어갈 때 비로소 공연적 가치가 성립되는 것이리라. 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창조적으로 재현된 인간의 행동과 배우들이 구축해낸 총체적 의미의 언어가 바로 무대에서 발현될 때 더 나은 공연이 되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연극은 양식보다 인간 본연적 삶에 더 가까운 것이기에...
omogari@hanmail.net
류경호/ 1962년 전북 완주 소양 출생.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극단 황토를 거쳐 현재 창작극회 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연출작품으로 <엘렉트라> <산돼지> <진흙> <꽃신> <홍도야 울지마라> <그 여자의 소설> <택시드리벌> <영월행 일기> <오월의 신부> 등이 있으며, 제13회 전국연극제 연출상과 전북예총회장상, 계원연극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