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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차는 나의 생명수
관리자(2005-06-13 16:28:59)
차는 나의 생명수 | 김선경 문화저널 편집위원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대학 초년시절이었으니, 팔십년대 중후반 쯤 되었으리라. 우연히 차마당이라는 찻집을 발견한 나는 가끔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차를 몰랐을 때라 찻집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무례를 범했다. 참 무식한 짓이었는데도 찻집 주인은 달 같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차도 참 좋아요, 다음에 오실 땐 녹차도 마셔보세요, 했다. 가늘고 사근거리는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살아가면서 이 분을 얼마나 만나랴 싶어서, 나는 그 후에도 몇 번 들러서 커피만 마셨다. 그런 찻집이 참 귀하던 때였다. 나무로 된 문을 열면 은은한 향이 먼저 반겼고, 손바닥만한 쪽창에는 종이가리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몇 년 후, 그곳에 들어보니 달 같은 주인은 안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분과의 인연이 다했나 싶었는데, 그 후로도 계속 자꾸 그 분과 만날 일이 생겼다. 방송일로 만나기도 했고, 내가 차에 관심을 가지면서 차를 구입하려고 보니 그 분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저 ‘차마당 주인’이었던 그 분은 언제부턴가 ‘이림 선생님’으로 통했고, 전북에 차문화를 뿌리내린 사람으로 이야기되곤 했다. 차인 이림. 그 이의 이름이다. 요사이에는 차인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차를 마시거나 즐기거나 기르는 이들을 모두 차인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함부로 부여되는 호칭이 아니었다. 우선은 문,무를 겸비한 선비여야 했고 시, 서, 음악 등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예인의 기질이 있어야 했다. 그랬을 때 차인이라는 호칭이 부여됐다. “젊었을 때 차에 관심이 생겨서 배우려고 하니까 마땅히 배울 만한 데가 없는 거예요. 그때가 81년 쯤이었는데, 여기저기 찾아보니까 ‘전주다도회’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찾아가 봤는데 돌아가신 작촌 조병희 선생님, 유기수 선생님 등이 회원으로 계셨어요. 제가 생각하는 차모임이라기보다는 그냥 지역 유명 예술인들의 모임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이림 원장의 ‘차 따라잡기’가 시작됐다. 전주에 제대로 된 다도회가 없다는 걸 알고 다른 지역으로 관심을 가지다 보니 부산까지 가게 되었다. 부산의 찻집 주인이 ‘전북에는 다도회가 없는데 왜 이런 차도구를 사냐?’고 하면서, 차문화가 낙후된 지역에 젊은 사람이 사는 걸 안타까워하더란다. 묘한 기분으로 돌아온 이림 원장은 ‘예향 전북에 전통 차문화를 한번 보급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차를 배워야 했다. 월간 「다담」이라는 잡지에 차인을 양성하는 4년제 교육원이 설립된다는 광고를 보고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차 공부를 했다. 교육을 마치고 전북 불교대학과 우석대 등에서 차 특강을 했는데, 후학들을 가르치려다 보니 교육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문을 연 것이 호반촌에 세워진 다례학당 ‘설예원’이다. 그때가 1989년, 차마당을 함께 운영하면서, 그렇게 조용히 전주의 차문화가 시작됐다. ‘설예원’이라는 이름은 이림 원장의 은사님이 하사한 이름. 전통적으로 차를 일컫는 이름은 <차, 명, 설, 가, 천> 등 다섯 가지인데, 그 중에서 ‘설(?)’은 ‘향기로운 풀이름 설’자로 요즘 옥편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 옛날 한자라고 한다.   찻집 운영보다 다도교육에 더 중점을 둔 이림 원장은 97년부터 취미과정 1년, 사범과정 3년으로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교육생들을 배출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출된 사범이 80명, 준사범은 40명이 넘는다. 이제 어디에 가도 전북의 차문화가 빠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젊은 시절에는 욕심을 채우지 못해 한가지 일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차를 만나고 나서는 ‘이것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라는 삿된 생각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이림 원장. 그에게 차는 무엇일까? “차는 기본적으로 갈증을 달래주는 음료이지만 마음이 황폐한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는 생명수입니다. 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겁니다. 차를 내면 주인이 되고, 차를 받으면 손님이 되고... 하루에도 수없이 역할바꾸기 놀이를 하면서 마음을 비웁니다.” 찻잔을 한잔 헹궈낼 때마다 마음의 무게를 재어보고 그걸 비워낸다는 이림 원장. 날마다 차를 마시면 마음이 무거워질 수가 없다고 한다. 다구를 헹궈내는 행위, 찻잔에 담긴 물을 버리는 행위 하나 하나에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심의 마음자리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림 원장은 관수세심-물을 보며 마음을 씻어내는 행위가 바로 차생활이라고 강조다. “다도는 차에 대한 딱딱한 교육이 아니라 차를 통해서 노는 놀이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처럼 오감을 다 열어놓고 살아보자는 것이죠. 우리가 바쁘다는 핑계로 잃어버린 것, 소홀히 여기는 것들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설예원 차교육은 차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일삼성을 하다 보니 이림 원장은 어느덧 도인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전통생활문화교육관>을 짓느라 빚은 늘었지만 마음은 훨씬 더 느긋해졌다. “서류상의 집주인은 다른 사람일지라도 지금 이곳에서 현장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러니까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다. 아직까지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자동차도 없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이림 원장의 설명. 또 하나의 버릇이 있다면 어느 집에서 살든 차나무를 심는다는 것이다. 차는 몇 년 지나야 따먹을 수 있지만, 내가 죽어도 누군가는 따먹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집 내 땅이 아니더라도 차나무를 심는 것이다. “차를 잘 우리고 따르는 법은 앉은자리에서 두 시간이면 배웁니다. 혹시 잘못 우러났을지라도 떫으면 떫은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마시면 됩니다. 굳이 설예원에서 차 우리는 법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래요. 삶을 평화롭게 살고 싶은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은 저에게 오라고 말해요. 사람에게는 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살 수는 없어요. 차 한 잔 앞에 두고 자신을 씻어낸다면 언제나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습니다.” 이림 원장은 차를 단지 몸에 이로운 음료가 아니라 마음에 도움이 되는 마음을 다스리는 치료제로 바라본다. 차를 마시는 것은 생명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혼자 살면서도 가훈을 ‘물처럼’이라고 정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처럼 가는 것이 법(法)이라며, 법과 도의 차이점은, 법이 맺혀놓는 것이라면 도는 스스로 정도껏 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재판관들이 형량을 선고하기 전에 ‘차때’를 가졌다고 한다. 정신을 맑게 하는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그런 차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제대로 된 ‘차문화 자료관’을 하나 세우고 싶은 것이 이림 원장의 욕심이다.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이제 이림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지니까 어깨가 무거워지고 전북의 차문화를 어느 정도의 위치까지는 올려놓아야겠다는 의무감도 생깁니다. 차나무 씨앗이 발아해서 다시 열매를 맺듯이, 거름주고 가꾸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저 또한 차생활을 통해 음식을 바로 먹는 것을 알게 됐고, 한 템포 느리게 사는 삶도 살게 됐고, 내 것이 아닌 것은 욕심내지 않는 분별심도 얻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저만 좋아서 했기 때문에 이런 인터뷰 같은 것도 사양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차가 좋다는 것이 증명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요.” 욕심과 성냄은 버렸으나 아직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했다며 『소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이림 원장. 그 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 길을 잘 닦아온 수도자를 대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운암에 있는 ‘운설다원’(차밭)을 가꾸느라 얼굴이 많이 그을렸다는데도, 여전히 그 이의 얼굴은 달처럼 환히 빛난다. 차가 가져다 준 빛, 그 빛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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