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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숲으로 난 길을 걷다-조미경 1회 개인전
관리자(2005-06-13 16:27:19)
작가의 숲으로 들어가 ‘나’를 발견하다 | 이일순 화가 비가 개이고 바람이 적당히 불어오는 화요일. 이런 날엔 어딘가 아무 이유 없이 걷는다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 같다. 오전 10시 30분 쯤, 이쯤이면 전시장에 들어서기에 그리 부담스러운 시간은 아니겠지. 앗! 그런데 전시장 안이 컴컴했다. 어, 이거 오늘까지 전시라고 했는데, 내가 잘 못 알고 온 걸까? 설마하며 전시장 문을 밀었는데 다행히 문이 열린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작가와 한 관람자가 다가왔다. 작가 조미경씨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막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잠깐 관람하고 있으라며 전시장 조명을 켜줬다. 가만히 작품들에 시선을 옮기며 ‘여기엔 무엇이 숨어 있느냐, 무엇을 보이려느냐’ 눈과 마음이 분주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작품을 대하고 있다는 것에 흠칫 놀랐다. 난 작가도 모르고 이 작품들도 처음 마주했다. 사람도 처음엔 낯설고 어색한데 작품, 너희들도 마찬가지겠지. 좀 적응이 될 때까지 욕심내지 말자. 어디에 시선을 둘 지 어수선하게 왔다 갔다 하던 차에 예닐곱의 ‘민들레 홀씨들’이 내가 다가설 때 마다 고개를 흔들어 무어라 자신을 알리는 것 같았다. 한참 그 ‘민들레’ 작품에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는데 어디선가 빛이 새들어온다. 벽에 걸린 작품이 꼭 그렇게 느껴졌는데, 동으로 그려낸 회화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헐겁게 뜨개질 한 스웨터의 한 자락이 사뿐 날아와 벽에 걸린 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표현은 털실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리. 짧은 동선들이 용접봉 불꽃아래 녹고 굳기를 반복하며 이어져 그렇게 부드럽지만 견고하게 걸려있는 것이리라. 그러한 그물과 같은 형상들은 하나의 면이 되고 그 면들은 굽어지고 줄어들고 뻗으며 돌을 감싸기도 하고 또 다른 형태의 것들을 감싸거나 덮는다. 그 그물로 싸여 있는 것들의 물성은 자연 그대로이기도, 또는 감싸고 있는 자신의 분신처럼 닮아있기도 했다. 혹, 이 작가의 심성이나 현재가 이러할까? 작업을 작가 삶의 반영이라 여기는 나로서는 그 작품이 지닌 조형성 못지않게 표현 속에 숨겨진 작가의 현재를 짐작해보게 되는데, 이 작품들은 작가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듯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을 아예 감싸고 서 있는 작품 ‘잠재된 의식-숲Ⅰ’에서는 현실을 감싸 안고 묵묵히 서 있는 작가 자신이 그대로 느껴진다. 단순한 반복-짧은 동선의 무수한 연결 (잠재된 의식- 숲Ⅳ), 또는 길게 꼬아 올려 빚어낸 식물의 형상들로써 (치열한 생존-풀) 리듬감을 찾고 그 리듬감은 한데 어우러져 전시장, 자신들의 자리에 형상을 띠고 알맞게 서 있는 것이다. 외형의 단아함 속에선 회화적 감수성과 더불어 치열하고 열정적인, 그래서 감내해야 했던 많은 수행의 시간들이 느껴졌다. 전시장 입구에 붙어 있는 ‘숲으로 난 길을 걷다’라는 제목을 한참 뒤에 발견한 나는 ‘그래, 이것은 작가의 숲이로구나. 이 작가가 가꾸어 놓은 참 편안하고 정다운 숲이구나’라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숲엔 나무나 풀포기, 바람, 돌, 구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있고 특히 작가 자신이 있고, 그리고 소망이 있으리라.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작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마주하고 보니 한참은 선배다. ‘아니, 아까 보았을 때는 나와 별 차이 없는 아낙으로 여겼건만 마주하니 아니네.’ 또박또박 밝고 경쾌한 어조의 그 분은 학교 선생님이면서 또 누군가의 엄마인 나로 봐선 인생 선배였다. 여러 정황을 보아 작가의 작업생활이 나의 좀 더 앞선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되어 늘 나의 숙제이면서 고민거리인 작업에 대한 몇 가지를 두서없이 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학교가 끝나고, 작업실에서, 즐겁게…” “즐겁게?” 간혹 사람들은 그림을 그린다 하면 엄지손가락에 파렛트를 끼고 붓끝으로 멋진 폼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그래서 멋지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리라고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곤 한다. 그래서 나도 그때마다 생각해본다. 작업 하는 것이 즐거운가?! 결국 그들의 기대에 준하고 싶어서인지, 더 말하기가 귀찮아서인지, 아님 구차해서인지, “즐겁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여러 가지 여건과 맞물려 차라리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은데도 말이다. 하지만 작가 조미경 씨의 대답엔 진정 삶을 한 줄 한 줄 짜내려가는 듯 겸손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자식을 키우며 또 나름의 역할을 해 가며 삶에서 얻은 에너지와 일상사가 숨 쉬 듯 작업으로 들어와 동화되니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여유롭게 말했지만 순간순간을 꼼꼼히 느끼며 살아가는 작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좀 전 머릿속을 스친 나의 넋두리를 부끄럽게 했다. 작품에 대해 궁금했던 몇 가지를 설명을 듣고 나니 작품들은 작가 스스로를 달리 표현한 여러 모습으로 느껴졌다. 작품 중 재미있으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했던 ‘잠재된 의식-숲Ⅱ’에서는 작은 조약돌 20여개를 쌈처럼 만들어 나무와 같은 기둥 형상에 매달았는데 그 속에는 부모로서 느끼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해 굳이 이해해야하는 것은 아니나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혼자서 상상하며 바라보던 작품들이 더 생생하게 마음속에 들어온다.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그녀와 1시간의 만남이 짧아 아쉬웠지만 작품과 작가에게서 전해지는 진중한 에너지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참 작가가 이야기 하나가 내내 머릿속에 맴돈다. “비치는 듯 비치지 않는 그런 느낌을 좋아해요!”   이일순 | 1972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태어났고, 1990년도에 전북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림(회화)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 일을 업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그림 전시회도 가끔 열고 틈틈이 그룹전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은 전주시 송천동에서 팔복동 굴뚝과 천변을 벗 삼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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