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 |
제 37회 전라북도 미술대전
관리자(2005-06-13 16:21:55)
‘권위’를 벗고 ‘젊음’을 입자
| 김미선 전북대 강사
올해로 37회를 맞이하는 전라북도미술대전(이하 ‘미술대전’)이 미술 전시의 가뭄에 목말라있던 도내 미술애호가들의 관심 속에 1·2·3부로 나뉘어져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개최되었다. 1부는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양화, 조소, 공예, 디자인, 건축 부분, 2부는 5월 29일부터 6월 2일까지 한국화, 판화, 서예, 문인화 부분으로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시실에서 전시되고, 3부는 5월 27일부터 6월 1일까지 전라북도예술회관에서 운영위원, 심사위원, 초대작가, 추천작가의 전시로 각각 전시된다.
이번 공모에서는 총 874점이 출품된 가운데, 종합대상 1명, 대상 4명, 그리고 우수상과 특별상에 각 9명이 선정되었고, 마지막으로 특선 및 입선 529명이 당선되었다. 수상자로서는 종합대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에 박원기 씨의 서양화 <기억-흐름>이었고, 대상은 각각 도지사상 홍경춘(한국화), 도의회의장상 이환춘(문인화), 예총회장상 송수영(서예), 대회장상 김완순(공예)이 영예를 안았다. 이번 미술대전에서는 수상작의 수준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입선작을 출품작의 65% 이내로 조정하였고, 그 중 20% 이내로 특선작을 선출하여 예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예년에는 입선이 70~75%, 특선이 30~35%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선작들은 주로 회화나 조각, 판화 등 전통장르의 재해석에 안주하여 실험적인 시도를 한 작품들 보다는 그동안 통용되어 온 공모전 양식의 작업들, 그리고 기존 작가들과 유사한 작품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디자인과 건축부분은 대부분 습작 수준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전라북도미술대전은 1941년부터 시작된 ‘국전’의 후신인 ‘대한민국미술대전’과 같은 한 형태로서, 신진 예술인 발굴 및 미술창작의 활성화라는 목표 아래 개최되는 지역 미술계 최고의 전문적인 권위와 전통의 공모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신인발굴을 표명하는 크고 작은 공모전이 전국에 600개가 넘는다. 이러한 공모전의 한 형태로서 미술대전은 전북 미술계의 현황과 미래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전시이고, 개인의 힘으로 발표의 기회를 갖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경제적, 사회적으로 궁핍한 지역의 청년작가들에게 있어서 명실상부한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 왔었다. 그러나 대부분 졸속한 형식과 임의적인 운영으로 재능 있는 신진을 발굴하는 대신 온갖 부조리의 온상이 된 것 또한 공모전의 현실이다.
미술대전은 처음 개최되던 해부터 다른 다양한 공모전과 뚜렷한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지역 이기주의에 의한 나눠 먹기식 심사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그동안 신예작가들의 불만이 체증된 상태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 불황으로 인한 미술계의 전반적인 몰락과 함께 지역미술계는 미술인재들의 심각한 질적·양적 쇠퇴를 겪게 된다. 또한 국제화 및 다양한 시각예술영역의 확산 (미디어 아트, 애니메이션, 사진미술) 등 국내외 미술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지역 미술대전은 역할과 기능면에서 경쟁력을 잃는지 오래고, 매년 수천만 원의 예산을 탕진하면서도 제대로 된 신인하나 발굴하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해나가면서 그 위상과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주최 측이 안일하고 타성화된 공모전 방식을 답습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기본이 갖추어진 지역이론가의 절대적 부재도 한 몫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공모전에서 만들어진 미술은 경직되고 구태의연하고 대외적으로 전혀 소통되지 않는 미술이 되어 버렸고 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미술대전에 대한 문제점을 둘러싸고 전근대적 형태의 공모전제도 대신에 경쟁력을 가진 전시형태로의 전환, 커미셔너제의 심사 및 초대전 형태로의 전환, 설치미술이나 비디오아트 등 새로운 매체의 적극 수용을 통해 변화된 시대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전시회로 거듭날 것 등 개선 논의가 오래전부터 제기가 되고 있었지만, 지역 이해와 인프라의 부족으로 개선의 여지는 항상 미지수이다.
마지막으로 미술대전은 단지 최소한의 기간 동안이라도 단발적 축제형태를 추구해야 한다. 미술적 토대가 취약했던 미국이 잭슨 폴록(Pollock, Paul Jackson, 1912~1956)을 위시로 추상 표현주의(Abstract-Expression)와 색면주의(Color-Field-Abstract) 등 전후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미술문화에 대한 기획, 보존, 지원프로그램의 선진화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에 주최 측은 미술대전이라는 축제가 단순히 창작과 소비(전시, 매입 소장)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창작의 단계에서부터 동시대의 역사, 문화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소비 과정 역시 공간기획이나 지원제도, 큐레이팅, 수집, 보존, 정리 등의 활동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 미술협회는 깊이 반성하고 시대 변화를 읽어내는 동시에 젊고 창의력과 역량을 갖춘 미술인들의 제전으로 기능하고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등 빠른 시일 내에 재조정되어야 한다.
문화의 세기를 맞이하여 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당국의 제도적 지원과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는 있지만, 사실 오늘날 미술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황폐하고 열악한 생활적 작업환경에 처해 있다.
지금 전북미술의 현실은 어떠한가. 미래가 촉망받는 유능하고 젊은 작가들이 지역 연고를 떠나 작품 활동의 이해가 높고 환경이 좋은 대도시에 전시장을 잡거나 심지어는 지역을 떠나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젊은 작가층이 없다는 것은 결국 앞으로 우리 지역 문화 인식의 취약성, 문화적 열등의식, 그리고 황폐화까지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재 전북미술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질서를 찾아 진취적으로 나아가려는 생각보다는 기존의 권익을 수호하고 유지하기 급급한 전근대적 방식의 공모전이 횡행하고, 그룹전, 동문전, 기획전 등이 비슷비슷한 작가들이 헤쳐모이는 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거주하는 작가층이 얇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치더라도 타지역 작가들에게 배타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전시회의 질적 수준이 제고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논지의 방향이 잠시 어긋난 점이 있지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거듭 강조하면, 지금은 미술계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미술대전이라도 젊은 작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창작의욕을 북돋아주는 제도로 개선되어야 한다. 작품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또 작품에 쏟은 노력과 열정에 걸 맞는 최소한의 명예도 부여되는 능동적인 제도로서 발전하길 바란다.
김미선 | 전북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1회 인턴과 갤러리창(서울 인사동), 갤러리 서화(서울 첨담동) 큐레이터로 일했다. 현재는 전북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