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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부안>산·들·바다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관광의 보고
관리자(2005-06-13 16:20:21)
산·들·바다가  혼연일체를 이루는 관광의 보고 | 백종길 부안군청 관광기획 담당 영상·해양·문화·관광의 휴양도시 부안, 바람의 도시 부안! 최근 부안은 <불멸의 이순신>과 더불어 그 빛을 더하고 있다.   노령의 중앙 쯤 되는 모악 부근으로부터 서해 쪽에 위치하고 있는 부안은 오랜 침식 작용으로 잘 깎이고 닳아서 낮고 평탄하여 어디까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 육지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한계가 애매하다. 이렇게 침강하여 이루어진 호남평야를 뒤로하고 굳게 버티고 있는 산괴가 절묘한 산악반도를 형성하니 이것이 부안이다. 노령정맥에서 외따로이 서해로 돌출하여 산이 바다에서 솟은 듯하고 흰 모래와 푸른 소나무가 조화되어 찾는 이가 많은 명승지다. 산과 바다 계곡과 들녘이 함께 어우러진 곳으로 부안군 전체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같다. 그 절경은 변산(邊山)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가경이다. 또한 변산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으니 변산(卞山), 현계산(賢戒山), 선계산(仙溪山), 능가산(楞伽山), 영주산(瀛洲山), 봉래산(蓬萊山)이란 애칭으로 불러왔으며 우리나라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일찍부터 그 이름이 유명하였다. 고려조에는 변산의 재목을 개성까지 뗏목으로 운반하여 궁목으로 이용했던 임산지로서도 유서 깊은 곳이고, 또 우리나라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힌 곳이다. 뿐만 아니라 변산의 아름드리 벚나무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였다. 특히 격포마을 적벽강 중앙에 위치한 ‘수성당’제사 유적이 선사시대부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고장이요, 대륙 문화의 상륙지점이며, 불교문화와 도자기문화가 성행한 곳이다. 산과 골짜기가 빼어나고 땅이 기름지고 인심이 너그럽고 생활 또한 윤택하니 속전하기를 조선조 때 전라도 땅에서 두 곳이 현감을 하기 위해 서로 다투고 조정에 청탁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 첫 번째 자리는 부안 현감이요, 두 번째 자리는 전남 광양 현감 자리였다고 한다. 부안군이 그만큼 살기가 좋았고 물산이 풍부하였다는 증거이니 예부터 전해오는 생거부안(生居扶安)이란 말은 부안을 일컫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부안군은 전라북도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면이 서해와 접하고 있는 반도로써 남쪽으로 줄포면 우포리, 북쪽으로 계화면 계화리, 동쪽으로 백산면 대수리, 서쪽으로 위도면 상왕등도까지 뻗어 있다. 변산반도의 동서 극단거리는 25.5㎞, 남북은 18㎞정도이며, 북쪽은 김제시와 고군산군도, 동남은 정읍시와 접하고 있다. 부안군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이었으며, 조선시대에 부령현과 보안현을 합하여 부령(扶寧)의 ‘부’자와 보안(保安)의 ‘안’자를 따서 부안군이 되었다. 또한 1963년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전남 영광군의 위도면이 부안군으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은 1읍 12면 98리 501마을, 인구는 68,250명, 면적은 493㎢다. 부안군하면 변산반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지리학상으로 변산 같은 산지를 잔구산지(殘丘山地), 지루산지(地壘山地), 지괴산지(地槐山地)라고 한다. 변산은 크게 둘로 나누어서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내변산으로 산의 변산이며 또 하나는 외변산으로 바다의 변산을 말한다. 산의 변산은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옹기종기 2백여 개의 산봉우리가 모여 있는 산 덩어리 변산이다. 이중 가장 높은 산이 300~500m정도의 낮은 산세로 형성되어 있다. 산맥은 제각기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 뒤틀리고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산이 그러하니 계곡 또한 질서가 없어 물줄기가 동서남북에서 발원하여 제 멋대로 흐르다가 백천이라는 곳에서 합류하여 수태극(水太極) 산태극(山太極)을 이루며 중계 석문을 거쳐 부안호에서 머물다가 부안댐을 이루고 해창을 지나 서해에 이른다. 내변산은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비롯하여 쌍선봉, 옥녀봉, 천왕봉 등 그만 그만한 봉우리가 200여개이며 산이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두루 구비하고 있다. 대(臺)로는 의상봉, 마천대, 낙조대, 신선대, 망포대, 분초대, 용각대, 어수대 등이 손꼽을 만하며 폭포로는 직소폭포, 선계폭포, 가마소폭포, 와룡소폭포, 벼락폭포, 사성폭포, 수락폭포 등이 으뜸이다. 계곡 또한 많아 30여개의 큰 골짜기를 형성하여 산협을 감고 도는 무질서한 파격미(破格美)는 변산 특유의 멋이며 천년세월을 훌쩍 넘은 불교문화를 간직한 내소사, 개암사, 월명암 등이 자리하고 있다. 바다의 변산을 보면 99㎞에 연이은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은 2항 23포가 있어 그 경관이 빼어나며 특히 채석강, 적벽강의 기묘한 단애와 와층은 절묘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격포마을 죽막동 제사유적은 3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1000여 개체분 이상이 출토되어 부안 죽막동 해안이 대중국, 대왜 교류 시에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지점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웅진시대(熊津時代, AD475~538)와 사비시대(泗   時代, AD538~660)에는 백제의 국도로 들어가는 입구인 금강하구와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백제뿐만 아니라 백제와 교류를 원하는 남북조(南北朝), 가야(伽倻), 왜(倭)등의 주변 국가들은 반드시 이 일대 앞바다를 통과해야만 했다. 해상왕 장보고도 중국과 무역을 할 때 이곳을 이용했다. 부안군에서 서남방으로 51㎞지점에 위치한 유인도 위도와 격포 석불산에는 요즘 절찬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 중이다. 임진왜란 당시 위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작전을 구상하기도 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부안군에 남아있는 국가지정문화재를 보면 보물 8점, 사적 4점, 명승 1점, 천연기념물 4점, 중요민속자료 3점, 중요무형문화재 1점, 도유형문화재 10점, 도무형문화재 4점, 도민속자료  6점 도기념물 12점, 문화재자료 2점이 있다 ‘인걸(人傑)은 지영(地靈)’이란 말 그대로 변산은 산천이 수려한 만큼 인물 또한 많이 배출하였으니 진표율사와 부설거사 같은 고승 및 재가승과 원각경을 도통하고 국난을 극복한 대 정략가 김구(金坵), 『동국통감』을 편찬한 손비장(孫比長), 고려때 대문장가와 정치가로 이름을 얻은 이규보, 무오사화(戊午史禍)때 죽음을 당한 성중업(成重   ), 기묘명현(己卯名賢) 김석홍(金錫弘), 중국어에 능했던 문신(文臣) 김계(金啓), 함열 현감에서 파직당한 허균이 모두 변산과 인연이 깊다. 박지원은 부안에서 『허생전』을 집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이 고장 출신 고희 장군이 선조를 의주까지 무사히 호종했으며, 성리학의 대가 최명룡(崔命龍),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여류문학의 큰 별 시인 이매창, 실학 선구자 반계 유형원(柳馨遠), 가사문학의 대가 김익(金瀷), 한말의 거유(巨儒) 전우(田愚),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등 수많은 인물들이 이 고장을 빛냈다. 역사 현장의 발자취로 백제 최후 항쟁지인 주류산성과 호벌치에는 정유재란 때 장렬하게 숨진 조상들의 거룩한 충혼이 길이 빛나고 있으며 1894년 갑오농민 혁명시 동학군의 기포지(起泡地) 백산성지도 부안에 있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부안군을 찾았고 수십 편의 시부를 남겼으니 이 모두 부안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부안군은 어떤 곳을 탐방해도 바다는 바다대로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모두 놓치기 안타깝다. 결론적으로 변산의 묘미는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우열을 가릴 수 없으며 산과 바다 계곡과 폭포, 들녘이 혼연일체(渾然一體)를 이루고 있는 관광의 보고이다. 대강 훑어보는 것 보다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차근차근 접근해 간다면 그 진가를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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