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 [문화시평]
민화의 정다움까지도 흡수한 갈필의 진수
송만규 개인전
진창윤 화가(2003-04-07 15:03:45)
본능적 향락을 갈구하는 감각문화와 하루도 쉬지 않고 언론을 오르내리는 총체적 부패구조의 난맥상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직장인, 투기가 되어버린 농삿일,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상실했고 나와 이웃을 잃었다. 이 지점에서 과연 미술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난 시기의 미술이 내용을 위한 형식적 접근이었다면 요즘의 추세는 소통을 기반한 형식의 채움이랄 것이다. 미술은 일상적인 것, 보편적인 것에서 대중을 꿈꾸게 하는 것이며 희망의 미래를 보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일회적 감상품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 것이다. 이것이 민중미술의 존재 가치이며 미학의 끝자락, 오직 작가의 의도와 미술장치에 의해 미술적 구도에 편입하기만 하면 미술로 인정되는 세상에서 의미를 잃지 않음일 것이다.
오늘날 일반의 정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부담없는 장식품으로써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이를 부정하며 출발한다는 것은 고난의 시작이다. 이러한 형편을 잘 알면서도 송만규 님은 기교 이전에 흙 냄새 배어나는 진정성에 입각한 이웃의 삶을 형상해 왔다.
그의 작업을 보면 80년대에는 전통미술의 특징을 계승하여 비례의 무시, 서사적 구조, 역원근법, 화려한 색채, 간단명료한 선, 주재의 복합 구성 등의 작품을 보이다가('그날이 오면' 등) 93년 첫 개딘전 '우리 숨결 가까이에' 전에서는 '완산동 당숙모', '중인리', '대장간' 등 우리 이웃을 사실적 묘사로 그렸고, 95년에는 중첩되며 입체적이고 수묵적인 기법의 '강변 이야기'와 평면적이며 화려한 색채, 서사적 주체를 복합구성한 '천호성지' 등 두 부류의 양상이 보인다. 언제나 그의 그림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들풀처럼 끈질긴 생명력,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2001년 세 번째 개인전 '섬진강 언 강 끝에서 꽃을 줍다'.
누군가의 "평범한 우리네의 산천을 전통적 기법의 진수인 갈필을 적절히 구사한 (요즘 수채화를 그리듯 서구의 원근법에 입각한 밑칠에 적당한 선묘와 채색을 곁들여 전통적 동양화의 어술픈 흉내내기) 유행에 따르지 않으며, 민화의 정다움까지도 흡수한 보기드문 작업이다."라는 평을 들으며 한편으로 수긍을 한다.
중년의 나이에 매번 변화를 모색하는 작가적 기질이며, 건강이 좋지 못한 가운데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전시를 준비한 그의 노력을 안다. 또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번민과 고뇌 속에 마음 졸였을 그의 모습을 생각하며 어린 후배의 당돌함이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섬진강 언 강 끝에서 꽃을 줍다'. 제목에서 주는 인상 만큼 작품을 기대하는 첫 느낌이 가슴을 시원하게 울리지 않는다. 40여 점의 작품중 석 점('재첩 잡는 여인' '자작나무와 아이들' '세월')에서 간혹 보이는 인물들은 그 크기나 묘사 정도로 볼 때 주제라기보다는 풍경속에 묻힌다. 섬진강이 어떤 강인가. 이름 없이 살다간 민초들이 목숨을 이어온 어머니의 품속 같은 강이다. 섬진강 물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아 생명을 이어온, 한 톨의 밥을 구하기 위해 짐승처럼 살다간 수 없는 민초들의 한이 돌짝밭 고랑, 오솔길 굽이 어디하나 담기지 않은곳 없으리라. 그러나 고요할 뿐, 그 모든 역사를 잊은 채 숨죽여 고요히 흐르는 물, 산에서는 치열함, 흙냄새가 나질 않는다. 제목과 작가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연례적인 진경산수화와 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구도, 내용이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감동이다. 감동은 진리로부터 온다. 고로 미술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살아있는 이야기와 예술로 승화됐을 때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물론 산수화풍으로 역사를 그려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면 더 급한, 더 마른, 더욱 생경하고 독특한 붓놀림으로 섬진강의 숨소리를, 바람소리를 들리게 하여야 할 것이다. 작가의 설명을 듣지 않고, 도록의 평론 글을 읽지 않고도 섬진강 가의 이야기를 짐작케 해야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전시장을 네 번쯤 들렀을 것이다. 처음엔 '눈 내린 구담'이 눈에 들어 온다. 아마도 서구적 꽉 찬 구도에 익숙한 탓이리라. 그 후 얼마 있다가는 '섬진강의 아침'이 눈에 든다. 깔끔하고 시원스레 펼쳐진 원경의 하늘과 산을 적절한 발묵으로 처리했다. 그러다 마지막날쯤 갔을 때 눈에 띄며 시선을 끄는 '피아골'이 있었다. 몰골법에 가까운 바위와 계단식 밭, 소나무, 산조차도 짙은 먹으로 일필에 농담을 표현한 듯하다. '매천야록'에서 보는 강한 느낌을 유도하기 위한 빈틈없는 채움이 아닌 전통산수의 필묵과 여백의 넉넉함이 암시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전통의 기법을 고집하는 것이 향토적 서정주의로 인식되기 쉽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은둔자처럼 보일지도 모를 현실 속에서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며, 암울한 시절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오늘까지도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이제 저 언 강 끝에서 꽃을 피우고 언 민족의 가슴에서도 꽃을 피우게 될 날이 멀지 않음을 본다.
진창윤/1964년 전북 군산 출생. 서양화가로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한 메시지 진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민미협 회원으로 활동하며 '군산항에서 바라본 우리의 역사전', '조국의 산하전'을 비롯해 광주 통일 미술제 참가, 전동성당 외벽에서 '해방 50주년 거리전'을 진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