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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 |
<공원>독립만세 운동 기리는 임실 3·1동산
관리자(2005-06-13 15:58:49)
독립만세 운동 기리는 임실 3·1동산 | 이태현 수필가 열매와 충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임실에 가면 어머니의 가슴 같은 봉황산과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3·1동산이 만인을 반기듯 미소와 함께 두 손을 흔들고 있다. 3·1동산에는 1919년 거국적인 독립만세 그날을 기리기 위해 1977년 3월 1일 동아일보가 주최가 되고 이미 고인이 되신 문병열 의학박사가 주선하여 기념비가 세워졌다. 추진위원장 이였던 문박사는 1964년4월부터 1974년 12월 13일까지 5대에서 9대까지 5대에 걸쳐서 임실군재향군인회장으로 봉사하셨으니 필자와는 각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3대 향군회장으로 이어 받아 봉사하고 있으면서 3·1공원에 대해 글을 쓰게 됐으니 어쩌면 이렇게도 많은 것이 연관됐을까? 특히 건립사실을 전북일보 새내기 기자로 재직 때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한바 있고 매년 엄숙하게 치러진 기념식도 홍보해 왔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는 캄보디아 앙코르 왓 사원을 방문키 위해 전북도내 향군회장단 및 임직원 일행과 인천공항을 향해 가는 도중에 원고 청탁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렇게도 여행과 맞아 떨어진 것일까? 임실의 3·1동산을 소개하려다가 보니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지 국가에서 해방돼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유주의국가로 급변한 과정 등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취재차 떠난 것 같았다. 3·1동산은 2천여 평의 부지에 9천7백만 원을 들여 그런대로 보기 흉하지 않게 만들어 졌는데 동아일보사가 사업비 전액을 부담했다. 광장이 약간은 좁지만 공원형태가 갖춰짐으로써 임실주민들의 휴식처는 물론 4계절 아침운동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기념비는 임실읍 뿐만 아니라 운암면과 오수면에도 각각 건립돼 있고 오수에서는 학생들이 매년 독립만세 기념행사를 실시함으로써 그 당시의 애국심과 역사적 사실이 살아 숨쉬는 움직이는 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임실읍과 오수의 기념탑은 건립연도가 다르지만 임실군민들의 충효정신을 본받는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된 것은 물론 학생들의 산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승용차나 유모차로도 갈 수가 있는 비탈길 말고도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126 계단이 있는 동산에 가면 영모정과 3·1문, 선언서가 새겨진 비등 일체는 2002년 11월1일자로 현충시설로 지정돼 보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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