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 |
<공원>푸른 바람과 푸른 하늘과 푸른 물결이 사는 서동공원
관리자(2005-06-13 15:56:21)
푸른 바람과 푸른 하늘과 푸른 물결이 사는 서동공원
| 박성우 시인
쓸쓸한 척 외로운 척 폼 잡고 빈둥거리고 싶다면 금마 서동공원으로 갈 일이다.
서동과 선화공주가 마을 앞길까지 나와 반겨주는 서동공원에 가면 찰방찰방 엎질러지는 푸른 바람 몇 바가지와 쩡쩡 갈라질 것 같은 푸른 하늘을 젖은 치맛자락으로 받아 내려 다소곳이 품고 있는 푸른 저수지를 만날 수 있다.
느린 걸음을 따라 빈둥빈둥 서있는 조각들에게 말을 걸어도 좋을 것이고 그 조각들에게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다가 매끈한 조각을 만나면 은근슬쩍 옆구리를 파고들어도 좋을 것이고 딴전 피우 듯 무릎위에 앉아 등을 기대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더듬지는 마!
초록 그늘에 누워 뒹굴뒹굴 시집을 읽어도 좋을 것이고 그 시집을 베고 누워 풋잠에 들어도 좋을 것이다.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다보면 굴풋한 허기가 찾아 올 것이다. 그때 쯤 손수건에 싸온 사과 한 알을 아삭, 베어 물어도 그만일 것이다. 입안 가득 상큼함이 고여 오면 입을 뾰족이 내밀고는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은여우 같은, 애인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고 그 깜찍하고 앙증맞은 은여우 같은, 그리운 애인에게 하늘 한 귀퉁이를 찢어 편지를 써도 좋을 것이다.
아늑한 품으로 나를 안아주곤 했던 서동공원을 알게 된 것은 딱히 불려지는 이름도 없이 그저 ‘금마조각공원’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명명하던 시절이었다.
그 즈음의 나는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해서, 혼자 밥을 먹을 땐 모래 같은 밥알에 물을 말아 대충 우겨 넣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우겨 넣다 보면 울컥울컥 밥알이 넘어올 때가 있다.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려 올라오기 때문이리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몹시 아팠었는데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쌀을 안치고 미역국도 끓였다. 곰팡이가 핀 그릇들을 씻고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는 내내 밥냄새를 맡으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겨우 몇 숟가락 떠 넣기도 전에 밥알을 뿜어내고 말았다. 순식간에 방바닥으로 밥알들이 제 각기 흩어졌다. 멍하니 앉아 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흩어진 알갱이들 중에 내가 가장 큰 알갱이가 아닌가. 걸레로 닦아 낼 수도 없는 말라깽이.
며칠 지나, 나는 도시락을 싸서 지금의 서동공원으로 나왔다. 도시락 반찬이라고 해봐야 플라스틱 통에 된장과 풋고추 몇 개 그리고 장조림 몇 조각을 넣어 온 게 전부였다. 꽃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풀고는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저수지가 있는 풍경을 발끝으로 첨벙거리며 도시락을 까먹었다. 지가 매우면 얼마나 맵겠어. 땀좀 흘리면 되는 거지,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무더위도 아삭아삭 깨물어 먹었다. 그 뒤로 내가 쓸쓸해하거나 외로워하면 서동공원은 종종 나를 불러내어 등을 토닥여주곤 하였다. 푸른 바람과 푸른 하늘과 푸른 물결로 나를 달래어 돌려보내던 서동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