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 |
<공원>세상 밖으로 안내하는 체련공원
관리자(2005-06-13 15:55:00)
세상 밖으로 안내하는 체련공원
| 김경희 수필가
운명의 짐을 부려놓고 세상 밖으로 떠나고 싶을 때, 나는 가끔 동물원을 끼고 있는 건지산 체련공원길을 걷는다. 조용한 곳이 그리운 생명의 계절을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육체적 에너지보다 신경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환경 탓인지 두 발로 걸으면서 자연환경 속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 울타리가 있는 자두밭에서부터는 고무신을 벗어 손에 들고 맨발로 걷는다.
향에도 점도(粘度)가 있다는 말 있듯 건지산은 육덕이 좋아 흙이 부드럽고 차지다. 그러므로 맨발에 와 닿는 산 흙의 감촉은 간지럽다 못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한여름 대청마루에 누워 등으로 느껴 보던 그 순간의 냉쾌함 같은 것이 머릿속 끝까지 뻗는다.
잠재된 눅눅한 생각이나 자아 침식의 사연들이 사라진 뒤 행복한 겸손에 젖어 얼마쯤 걷다 보면 공원은 숲 속이다. 적당한 곳에서 의자에 앉는다. 맨발에 맨 정신에 평의자에 앉아 맥없는 눈길을 주고 앉아 있는다. 목적 없이 쉬고 정한 시간 없이 시간을 놓아버린다.
그리하면, 그동안 제 정신으로 살았는가, 물질 때문에 정직을 잃지는 않았는가, 명성 때문에 줏대있는 길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저울질 하며 친구나 이웃을 미워하고 가족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가, 하는 침묵의 언어가 영혼에서 가슴으로 내려앉는다.
과학의 제 소리가 사라지고 문명의 빛이 가라앉는 곳에서야 침묵의 언어는 살아나고 신의 음성도 만날 수 있다. 영감과 신비감, 텔레파시와 초능력을 관장하는 뇌, 측두엽의 기능도 이렇듯 고요한 시간 속에서만이 문이 열린다.
옆 의자에는 노부부가 앉아 있다.
육신의 기능 절반을 차압당한 남편을 겨우겨우 부축해 함께 걸어온 부부의 걸음에서 나는 예식장에서 주례가 말하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의 한 몸’을 실천하는 분들이구나 싶은 마음으로 그윽한 눈길을 준다. 그리고 지금은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젊은 연인들의 포옹장면이나 키스 씬보다 더 밝아보인다는 정감에 젖게 된다.
내 영혼껏 사랑했던 아가씨를 처음 만난 곳은 충혼탑이 있는 읍내 산자락 공원이었다. 그 때 나는 일심 정성으로 그녀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사랑 고백을 하면서 키스라도 한번 하고 싶었다. 그랬던 그녀는 지금 저승에 가 있고, 나는 이 곳 건지산 숲 공원에서 ‘까짓 것 키스해 봤자 입내만 나겠지 뭐!’ 하는 속인이 되어 있다.
나는 무심히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 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과거’라는 시나리오로 생각하고 감독의 입장에서 잠시 더터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문득 서쪽 하늘을 보니 일출을 품고 지는 노을이 너무도 곱기만 했다. 평범한 삶의 즐거움이 이런 것이려니 하고서 의자에서 일어나 집으로의 맨발을 옮겨 딛는다.
김경희 |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1985년 <월간문학>에 신인상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둥지안의 까치 마음』·『징의 침묵』·『정상에 서면 산이 강물처럼 흐르고』·『하늘 가는 작은 배』·『아름다운 성지 순례』·『도공과 작가』가 있고, 시집으로 『햇살을 등에 지고』· 『태양의 이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