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 |
<공원>시계가 멈추는 곳
관리자(2005-06-13 15:54:06)
시계가 멈추는 곳
나는 최상의 자연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전주천과 덕진공원이 보이는 아파트에서는 쾌청한 날이면 모악산과 남고산성도 훤히 보인다. 아침이면 건지산에서 잠자고 시냇물에 세수하러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가 햇살에 파도치는 것 같다. 덕진연못에서 보트를 타고 노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수채화를 보듯 아름답다. 우리의 사랑도 덕진연못에서 무르익어 갔으며, 자녀들도 덕진공원에서 주말을 즐기곤 했었다. 노 젓는 그이의 굵은 팔뚝에서 믿음직스러운 남성의 매력을 처음 느껴 본 곳이기도 하다.
요즈음에도 덕진공원은 나의 행복을 저장하는 공간이다. 새벽에 운동하기 위해서 가기도 하지만, 낮에는 찌든 생각들을 맑은 공기와 바람 그리고 햇살에 씻어 버리려고 찾는다. 연꽃잎이 바람에 살랑거릴 때에는 잣 냄새 풍기는 어머니 모시적삼 앞섶을 보는 것 같다. 어쩌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어머니의 속살이 구름보다 하얗게 보였었다. 정신적 허허함을 가누지 못할 때에는 의사 처방을 받은 것처럼 공원을 찾는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언제나 나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는 빈 의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내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푸른 나무 친구들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이웃 마을을 찾아가듯 아무 때나 들린다.
연초록 빛 오월의 신록은 맺혔던 응어리를 녹여 내기에 충분하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몸을 감추면 어느 누군가가 술래가 되어 나를 찾아 낼 것 같은 어린 시절 내가 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공원이란 말을 들어 본적이 없다. 집이 답답하면 훌쩍 뒷동산에 올라가 할미꽃, 진달래, 찔레꽃을 보며 놀았다. 코스모스와 들국화가 얼굴을 내밀면 가을이라 불렀고, 나목의 잔가지에 설화가 피면 겨울이라 했다.
여름밤에는 마당에 나가 평상에 누워서 북두칠성과 별똥별을 보면서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콘크리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즈음에는 꼬박 집에 갇혀 있기란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마치 생각들이 시멘트와 모래에 혼합되어 굳어져 가는 것 같아 두려움이 치밀기도 한다. 이럴 때면 정신적인 쉼터인 가까운 덕진공원을 찾게 된다.
공원은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공간이다. 하늘의 구름 한 점 불러서 뾰족한 솔잎에 얹혀 보기도 하고 넓다란 연잎에 뒹굴려 솜사탕을 만들어 달콤한 맛에 취하면서 걸어 보는 공간이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계는 멈춘다. 다만 어둠이 발걸음을 덮칠 때까지 창공의 새처럼 자유스러움을 찾는다. 누구에겐가 쫓기는 것 같고 삶의 경쟁에 뒤쳐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쉬어야겠다는 나의 각오에 장애가 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친구를 사귀기보다 나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게 좋을 상 싶어 수피와 잎사귀 모양 꽃 색깔에 관심을 갖는다. 나무는 오랜만에 찾아가도 나를 피하지 않는다. 나무는 오히려 내가 길을 잃을까봐 그 자리에 그대로 꼿꼿하게 서 있어 준다. 그게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모두 내 곁에서 떠나가는 데, 그래서 내가 먼저 소멸하는 행복감을 얻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정자 옆에 소나무가 그렇다. 허리가 굽어보이는 것이 수 십 년을 살았나 보다. 문득 김기택 시인의 시가 소나무와 겹쳐 아른거린다.
솔 잎도 처음에는 널따란 잎이었을터
뾰쪽해지고 단단해져버린 지금의 모양은
잎을 여러 갈래로 가늘게 찢은 추위가 지나갔던
파충류의 냉혈이 흘러갔던 핏줄 자국
「소나무」부분
맺혔던 생각들이 바로 눈앞의 연잎에 물방울처럼 빙그르 돌다가 흔적도 없이 수면 위로 떨어진다. 얽히고 얽힌 생활 속의 어려움들이 공기와 바람에 분해되어 작아져 간다. 목을 조이는 힘든 고통을 나 혼자서 풀어야 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일도 공원에서는 쉽게 결말이 난다. 공원은 대가가 없이 무한정 나에게 너그러움을 베풀어준다. 새롭고 싱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맑은 공기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호흡도 필요하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들을 분별 할 줄 아는 능력도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소멸의 미학으로 삶을 변화 시켜야 한다.
해가 연초록 잎사귀 틈새로 숨어버리려는 듯 어둠과 씨름을 하나보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고 싶은 충동에서인지 허영자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휘발유 같은
여자이고 싶다
무게를 느끼지 않게
가벼운 영혼
뜨겁고도 위험한
가연성의 가슴
한 올 찌꺼기 남지 않는
순연한 휘발
정녕 그런
액체 같은
연인이고 싶다.
「휘발유」 전문
영혼은 가볍고 가슴은 뜨거운 여자.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휘발유처럼 온전히 자기 자신을 다 바치길 바라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은 여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불사르고 싶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다는 것일 게다. 나는 지금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된 뜨거운 사랑을 매일매일 쏟아 붓고 있다. 아니, 그렇게 온전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리라고 공원을 거닐며 다짐하고 있다. 수 십 년 함께 살아온 한 사람에게 사랑을 태우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사랑을 재충전해야 한다. 계속 사랑하는 일은 참 힘들기도 하지만 힘든 만큼 기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