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6 |
<공원>영원히 기억될 한 순간을 담는 곳
관리자(2005-06-13 15:49:06)
영원히 기억될 한 순간을 담는 곳
| 한선희 필름 2.0 기자
영화를 사랑하는전주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 하나. 지난 달 말 전라북도 측에서 사단법인 <뉴시네마네트워크(이하 NCN)>에 2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NCN은 지난 2003년 《301 302》《학생부군신위》의 박철수 감독 을 비롯해 박종원, 곽경택, 김유진 등 30여 명의 감독이 결성한 단체다. 대안적인 제작 및 배급 시스템을 모색해온 이들은 총 80억 원을 마련해 1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이들은 전북 지역의 풍광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무엇보다 전주 덕진공원 일대의 풍경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하다. 전주의 대표적인 공원인 덕진공원 일대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주홍글씨》 등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바 있지만, 공원 전체를 인상적으로 그린 영화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전주시는 2006년까지 소리문화의 전당 뒷편에 영화 촬영 세트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렇게 되면 촬영 세트장 일대도 일종의 공원으로 기능이 확대돼 시민들을 유혹할지 모른다.
우리영화의 아름다운 공원
우리 영화에 나왔던 공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친구》의 촬영지로 유명한 부산 용두산 공원을 꼽는다. 어른이 된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공원 꼭대기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뒤로는 부산 타워가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부산 시가지의 반짝이는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장면은 용두산 공원이 도심 속 '공원'으로서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항구 도시 부산의 핵심을 이처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바다 냄새와 회색 콘크리트가 뒤덮고 있는 부산 시내에서 푸른 나무와 꽃의 싱그러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용두산 공원은 광복동과 남포동 등 부산 시내 중심가와 아주 가깝다. 영화 《친구》 촬영지 여행 코스에서 꼭 빠지지 않으며, 굳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부산 시내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서울이 배경인 영화에도 도심 속 근린공원이 종종 등장한다. 먼저 《오! 브라더스》의 용산공원을 꼽을 수 있다. 조로증에 걸려 겉늙은 열두 살 소년 봉구(이범수)가 형 상우(이정재)의 연인인 호스티스 은하(김준희)에게 유혹을 당하는 장소다. 여름 밤 한적한 공원의 분위기는 로맨틱하지만, 오히려 우물쭈물하는 봉구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용산공원은 이제 개장한 지 10년 남짓한 곳이다. 원래 미 8군 골프장으로 사용되던 곳을 서울시가 인수해 잔디밭과 연못, 자연 학습장 등이 있는 공원으로 가꿨다. 오는 10월이면 용산공원 옆에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장할 예정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춘 로맨스 영화 《…ing》에서도 공원은 주인공들의 특별한 감정을 키우는 인큐베이터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여고생 민아(임수정)와 아랫집 대학생 영재(김래원)가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고 비밀을 나누며 영원히 남을 한 순간을 사진 속에 기록하는 곳. 바로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달맞이공원이다.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이 공원은 집 가까이에 있는 편안한 휴식처로서 공원의 바람직한 기능을 잘 보여준다. 서울 시내에 있는 공원 가운데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호젓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매우 잘 어울린다. 특히 공원의 한쪽이 한강에 위치한 바위산이기 때문에 한강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에서도 민아와 영재가 캔맥주를 마시며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 공원의 개성이 잘 살아난다.
최근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등포구 양화동 선유도 공원은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에 나왔다. 지난 2002년 개장한 선유도 공원은 원래 정수장이 있던 곳으로, 기존의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 주변에 녹지대를 가꾼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이다. 콘크리트와 담쟁이 넝쿨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조경 디자인으로 한국 건축가협회 상을 받기도 했다. 한강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한강역사관이나 유려한 조명 덕분에 밤이 되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보행자 전용 다리 선유교 등도 명물이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사마리아》에는 선유도 공원의 구석구석이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돼 있다. 원조교제를 하는 주인공 소녀 여진(곽지민)과 재영(서민정)이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곳은 ‘녹색 기둥의 정원’, 이들이 성매매 남자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곳은 ‘시간의 정원’이라 불린다. 김기덕 감독은 선유도 공원뿐 아니라 국립공원도 영화에 담은 바 있다. 최근 미국에 개봉해 호평 받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그 작품이다. 수도승의 생활을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승려들의 거처인 사찰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경북 청송에 위치한 주왕산 국립공원에 있는 연못 주산지에 배를 띄우고 전통예술장인을 동원해 그 위에 목조건물을 지었다. 물 위를 부유하는 이 암자는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에 지어진 영화 촬영 세트이자, 전세계 영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이다. 김기덕 감독이 해외에서 더욱 인기를 모으는 까닭은 아마 한국의 수려한 경관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주왕산 국립공원에는 이 영화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외국영화의 거대한 공원
외국영화에도 국립공원이 근사한 촬영지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 유명한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 촬영됐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울창한 삼림이 영화 전체를 압도하면서 판타지에 더없이 어울리는 풍광을 자아낸다. 장이모우 감독의 《연인》은 우크라이나 코시브 국립공원의 아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류더화와 진청우가 울창한 삼림에서 추격전을 벌이고, 진청우와 장쯔이가 끝없는 꽃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바로 그곳이다. 제작진이 수개월 간 답사 끝에 찾아낸 이 국립공원은 사랑의 낭만성과 무협 액션의 비극성을 결합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전세계 영화 팬들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공원은 아마 뉴욕의 센트럴 파크일 것이다. ‘뉴욕의 허파’라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도시 계획의 결과물로 여겨지는 센트럴 파크는 수많은 미국 영화에서 낭만과 사색, 사랑과 우정의 공간으로 묘사돼 왔다. 위노나 라이더와 리처드 기어가 나이차를 뛰어넘은 사랑을 나누던 《뉴욕의 가을》에서 센트럴 파크의 가을은 운치 만점의 공원이다. 젊은 홀아비가 영리한 딸을 기르는 이야기인 《저지 걸》에서도 센트럴 파크의 늦가을을 배경으로 부녀가 잊지 못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가장 뉴욕적인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도 센트럴 파크가 자주 등장한다. 최근 개봉했던 《애니씽 엘스》는 그중 백미다.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 극작가 제리(제이슨 빅스)와 조언자 도벨(우디 앨런)은 언제나 센트럴 파크에서 만나 한가로이 산책한다. 《애니씽 엘스》는 센트럴 파크 구석구석을 탐사하는 훌륭한 안내자 같은 영화다. 공원은 일상에 지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공원을 담은 영화는 그 윤택한 삶의 터전인 도시와 국가를 더욱 빛낸다. 우리에게도 센트럴 파크 같은 공원, 그리고 그 공원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영화가 더욱 늘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