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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세계의 역사교과서
관리자(2005-05-13 10:37:08)
역사에 대한 인식은 왜 다른가 <세계의 역사교과서>이시타와 노부오.고시다 가카시 지음,양억관 옮김,작가정신 펴냄 -박준행 한일고 교사 다시금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문제 되고 있는 시점에 읽어볼 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도서출판 작가정신에서 나온 『세계의 역사교과서』는 (가해자로서 또 피해자로서, 혹은 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2차세계대전의 경험을 공유한 나라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을 엮은 사람들은 이사와타 노부오와 고시다 다카시라는 일본인들이다.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다루기 위해 각국 역사교과서를 연구해 온 일본 내 전문가들이 초빙되었다. 자국의 역사나 주변국가들의 역사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접근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어떤 나라의 역사교과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과거의 사건은 후대에 사진처럼 재생될 수 없고, 일부분은 가능할지라도 역사 자체가 그렇게 전달된다는 것도 불가능하며, 누군가의 관점에서 사건들을 취사하여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평가의 결과물 중에서도 ‘공인된’ 것, 그 사회의 기성세대를 교육시켰고 미래세대의 역사의식을 형성시킬 중요한 전달매체가 역사교과서인 것이다. 편저자의 동기는 ‘왜 이렇게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다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일본은 분명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나라이고 특히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을 전쟁에 강제 동원하고 수탈해 온 ‘가해자’이다. 이런 나라에서 왜 충분한 ‘반성’이 뒤따르지 못하고 우경화된 움직임들이 번번이 나타나는가. 그들은 일본사회가 ‘비판’이라는 민주주의적 사고과정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문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여기선 강자의 권위에 순응하는 것이 현명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으로서의 ‘비판’이 부정시된다. 강자에게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문화의 특성이 주변 나라들에 대한 침탈도 가능하게 했고, 전후 ‘가해자’로서 치러야 할 ‘반성’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사와타 노부오는 ‘일본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일본의 태도는 또 다른 ‘가해자’였던 독일의 태도와 비교되어 더 두드러지는데, 독일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도 전후 얼마 동안은 패전국으로서 입은 피해와 고통을 더 부각시키고, 국민들 또한 잘못된 나찌 집단에게만 혹은 사악한 지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의 더 큰 주류는 나찌를 탄생시키고 지지해온 ‘독일국민’ 자체의 책임을 부각시키며, 독일국민들이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해 오지 못해서 그런 파괴적 정권에 동조했다고 진단하는 쪽이었다. 이제 그들의 역사교과서는 누구 한 사람이 아닌 독일국민 자체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비판적 사고능력 함양을 중시하는 교육목표를 강조한다. 한편, 피해자의 경우도, ‘합리적 비판’의 문화가 미흡할 경우, 강한 민족주의적 관점의 역사 인식을 보인다고 진단된다. 일례로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민족적 자부심을 강하게 심어주는 게 주요 목적이라고 보인다. 중국과의 속국관계를 의도적으로 얼버무린다든지, 일본인을 ‘왜구’나 ‘왜적’이라는 감정적 용어로서 지칭한다든지, 독립운동은 강하게 부각시키며 일본에 협조했던 한국인들의 행태는 기술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리는 것들이 그 예이다. 일본의 행위는 ‘침탈’이 되고, 안중근의 테러행위는 이상시된다. 안중근이 천황을 싫어하지 않은 점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감성에 치우친 지나친 민족주의적 편향하에 역사를 기술한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그 이념이 적용되는 사회의 상황과 성격에 따라 실제 의미가 달라지는 반죽상태의 흙덩어리와도 같다. 한국의 경우와 일본의 우경화된 민족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로서 요청된 민족주의이고, 일본은 침략을 정당화하는 민족주의이다. 피해를 입고 피 흘리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상처를 보이면서 외쳐야 한다. 이런 적극적 행동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외침의 방식 중 주요한 수단이 식민지 국가의 민족주의이다. 식민지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를 통합할 강력한 이념이 필요했다. 이러한 구분 없이 단지 민족주의 자체를 부정시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차이가 덮어지는 쪽이 될 수 있다.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되었다고 평가받아지는 다른 나라들  ― 이 책에서는 미국이나, 영국, 네덜란드 등을 들었는데, 이 나라들이 일단 일본과 근현대사 부분에서 특별히 감정적으로 얽힐 만한 사건들이 없었던 경우이므로 이러한 서술방식은 장점이라기보다 당연하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인디언 학살에 대해선 객관적으로 접근하며, 영국과 프랑스간의 백년전쟁에 대해서도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의 관점을 특별히 견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이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은 자신들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특별히 ‘반성’하는 모습이 약한 쪽이다. 제국주의 시대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대부분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도 그 일환으로 식민지 경영을 한 것으로 여기는 역사인식이 보인다. 가해자가 과거를 서술할 때 조심스럽고 감정을 섞지 않는 쪽의 전략을 쓸 경우, 자신들의 가혹성까지 덮어지는 장점을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얻을 수 있다. 한국사람이 읽기에는 이 책이 각국이 경험한 역사적 과정을 도외시한 ‘객관성’ 내지는 탈민족주의에의 주문, 인권이나 민주주의같은 보편적 가치를 너무 편하게 강조한다고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강조하는 역사에 대한 합리적 인식의 중요성 자체까지 부정되지는 않는다. 역사에 대한 ‘감성적 접근’은 가해자의 경우이건 피해자의 경우이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피해사실에 감정적으로 매몰될 경우, 상황이 반전되었을 때, 새로운 가해자로서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했던 ‘강화도조약’은 자신들이 서구열강에게 당했던 ‘불평등조약’의 경험을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한, 잘못된 학습결과였다. 우리는 가까운 과거인 베트남 전쟁시 우리나라의 침략 행위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인색한 평가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에서 새로운 가해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가해자에게 필요한 것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듯,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도 미래의 가해자로 거듭나지 않기 위한 합리적 인식이다. 반성이 잘 안 되는 나라 일본, 그들의 역사인식, 그들이 본 다른 나라 사람들의 역사인식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한번쯤 돌이켜볼 수 있다면, 이 책의 소임으로 충분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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