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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유량가족
관리자(2005-05-13 10:35:11)
가난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유량가족>-공선옥지음,실천문학 펴냄 -유강희 시인 작가 공선옥의 네 번째 소설집인 『유랑가족』은 모두 다섯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겨울의 정취」 「가리봉 연가」 「그들의 웃음 소리」 「남쪽 바다, 푸른 나라」 「먼 바다」등이 바로 『유랑가족』을 이루는 성원이다. 그런데 이미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공선옥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집요하리만큼 가난한 사람들의 밑바닥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을 가난벌레(?)라고 할 만큼 가난 혐오증이 일반화된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공선옥만큼 고집스럽게 가난의 문제를 중요한 소설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가도 없다. 바로 그 남다른 가난에 대한 천착이 그의 독자적 작품 세계를 가능하게 한 주된 요인일 것이다. 공선옥은 이번 『유랑가족』에서 우리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외면하고 있던 가난을 자신의 맨발바닥에 끌로 아로새기듯 촘촘히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유랑가족』을 읽는다는 건 바로 그 아픈 족선(足線)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섯 편의 연작 소설에 가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 그리고 그 가난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 건실한 농어민 후계자가, 그 가정이 이리 될 줄은 정말 김달곤 자신도,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 (25쪽) “하, 한국 사람이라고 외, 외롭지 않은지 아요?” “한국 사람은 왜 외롭답니까?” “그, 그야 뭐, 도, 돈 없고 짜, 짝 없으니 외롭지요, 뭐.” 기석도 용철이 말투를 닮아간다. “한국 사람은 왜 돈 없습니까?” “배, 배운 거 없으니 그렇지요 뭐.” “맞아요. 지식 없으면 어디서나 돈 벌기 힘들어요. 나는 열네 살에 아버지 죽고~지금은 엄청 후회한다 아닙니까. 이게 다 내가 한때 옳지 못한 마음을 먹어 그리 된 것이긴 한데…….” (96~97쪽) 위에 인용한 글은 각각 「겨울의 정취」와 「가리봉 연가」에서 따온 것이다. 김달곤의 아내 서용자가 연변에서 온 조선족 명화의 유혹에 이끌려 서울로 도망친 뒤 집안은 한순간에 풍비박산되고 만다. 김달곤은 아내를 찾아 서울로 가고 막노동판을 전전한다. 시골 마을 신리엔 할머니와 자식 미정과 영기만 남는다. 초등학생 영기는 어머니의 가출 후 목에 가래가 끼어 말도 잘 못하게 된다. 바로 그 김달곤의 가족이 순식간에 해체되는 과정을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러한 파탄의 원인이 힘없고 가난한 그들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지를 간단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외로움과 가난의 이유로 「가리봉 연가」의 기석과 용철은 정직하게 ‘돈 없음과 지식 없음’을 들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솔직한 대화 속에 가난의 앙상한 뼈대는 어쩔 수 없이 돋을새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 자신들이 얼마나 기막힌 운명에 처해 있는지 그 둘은 서로 모르고 있다. 흑룡강 해림에서 온 용철의 전 아내가 바로 명화이고 지금의 명화 남편이 기석이라는 사실을. 『유랑가족』의 다섯 편 연작은 바로 이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과 ‘돈 없음과 지식 없음’의 두 개의 큰 축이 서로 교직하며 폭폭한 인생들의 참을 수 없는 삶의 풍경을 여실히 그리고 있다. 간암에 걸린 오빠를 치료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조선족 명화(「가리봉 연가」), 쓰레기 소각장 건설 보상금에 기대를 거는 샘밭골 주민들(「그들의 웃음 소리」), 수몰 보상금을 노리고 갈산리 마을 홀애비 박종만에게 시집간 다방 아가씨 영녀(「먼 바다」) 등 오직 돈을 벌기 위한 크고 작은 처절한 몸부림들이 『유랑가족』의 전편에 고통과 절망의 혈흔을 남긴다. 조선족 여자 명화는 결국 연변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가리봉동 으슥한 골목에서 돈을 노린 불량배의 칼에 죽고, 노덕필에게 겁탈당한 영녀는 그 자의 보상금에 눈멀어 함께 밤도망을 친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종만은 보에 빠져 자살하고, 기름 살 돈이 없어 추위에 떠는 필리핀인 아내 반지를 위해 장애인인 남편 칠환은 한밤중 주인 잃은 염소를 찾아 염소처럼 어둠 속을 뛰어다닌다. 바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 그들을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가난 속에 우리에게 익숙한 풍자와 해학을 함께 버무려 넣음으로써 소설 속의 가난이 단순한 비속함에 머물지 않게 하고 있다. 「먼 바다」에서 한밤중 짐승을 잡으러 나온 칠환과 수몰지구 빈집을 돌아다니며 고물을 수집하는 고물장수 양대석·만수와의 능청스런 대화를 보라. 웃음 속에 질퍽한 눈물이 눈물 속에 어느새 해맑은 웃음이 그리고 그 밑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세상에 대한 야유가 얼마나 건강하게 그려지고 있는가. 또 「남쪽 바다, 푸른 나라」에서 보여 주는 사진작가 한과 영주의 희망 찾기는 어떤가. 춘양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영주. 그 영주가 의탁할 곳을 찾아 헤매는 두 사람. 결국 거금도에 있는 몸이 불편한 고모 귀옥이 영주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몇 년 뒤 한이 그 섬을 찾았을 땐 맘씨 좋던 고모부는 태풍에 의한 사고로 죽고 고모네와 영주의 소식은 묘연해진다. 작가는 오갈 데 없는 천애의 고아가 된 영주를 가난하지만 착한 고모네가 거두게 함으로써 오늘날 가난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되묻고 있다. 돈의 경박함에 휘둘리고 지적 오만에 덜미 잡힌 인간들을 조용히 질타하고 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가난 문제를 다루면서도 작가는 그러나 함부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더욱 ‘가난의 얼굴’은 음울한 그림자를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상황의 그림자의 내용이 다름아닌 돈 없음과 지식 없음이란 걸 인정하게 될 때 이 소설집의 발문에서 문학평론가 방민호가 말한 ‘한국판 가난의 현재적 형상’으로서 그 귀중한 문학적 울림을 가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소설집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바로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소설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 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방민호는 이를 두고 ‘모자이크적 구성 원리’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좀 더 소설 내적 상황으로 눈을 돌려보면 바로 우리 사회의 파편화된 가난의 소외 현상을 모자이크라는 점조직의 형식을 통해 하나의 방법적 구성 원리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를 넘어 가난의 대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키려는 작가의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 알레고리는 아닐까. 그리고 유랑의 서사에 직핍해 들어가는 군살 없는 가난한 문체도 여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또한 그 모자이크적 구성을 우리의 전통 생활문화의 하나인 헝겊 보자기에 비유한다면 그 바늘과 실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사진작가 한이고 그는 방민호가 말한 접착제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그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을 굳이 한이라고 호칭한 데는 다른 무슨 속뜻은 있는 건 아닌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번 연작 소설 『유랑가족』역시 공선옥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냉대 속에 온몸으로 아득바득 살아가는 못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70년대 이래 급격한 산업화를 거쳐 무소불위의 거대 자본의 구조 속에 가난은 이제 그 최소한의 긍정적 의미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더욱 그 소외의 양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적 맥락에서 가난의 현재적 의미에 천착, 바느질하듯 한땀 한땀 되짚어 보는 작가의 눈물겨운 노력은 이 소설집을 나와 이웃을 돌아보는 자성적 소설로도 읽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공선옥의 연작 소설 『유랑가족』은 어떤 의미에선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바로 유랑하는 가족의 일원임을, 현재 진행형의 유랑가족임을 아프게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책의 맨 끝에 실린 작가의 말은 그래서 작가의 말로 들리지 않고 『유랑가족』모두의 조용한 절규로 들려온다. 이 봄밤 가슴을 친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죄인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의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인격도 인권도 보장되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가난한 작가일 뿐./ 가난하여 ‘이 땅 어디에도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처럼/ 나 또한 가난한 ‘유랑작가’일 뿐.” (「작가의 말」전문) 유강희 |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불태운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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