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 |
전주문화원의 역할과 방향
관리자(2005-05-13 10:33:29)
<전주문화원의 역할과 방향>
지역문화의'선구자'가 되라
지역에 다양한 문화단체들과 문화시설들이 속속 생겨나고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높은 지금, 전주문화원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 전주문화원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전주문화원이 지역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서는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여야 하며, 어떻게 변신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지역의 의견을 모아보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일일 것이다.
지난 4월 20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 열린 제28회 마당수요포럼에서는 지난해 12월 서승 원장의 취임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는 ‘전주문화원의 역할과 방향’을 얘기했다. 참가자들은 다변화된 지역의 문화구도 속에서 아직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전주문화원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 개편을 통한 운영의 투명성과 활동의 공공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며, 전주문화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주시의 문화적 지형을 잘 파악하여 전주문화원만이 할 수 있는 특화된 역할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날 포럼의 발제는 이종진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이 맡았고, 사회는 문윤걸 문화저널 편집위원이 맡아 진행했다.
지역문화의 ‘선구자’가 되라
이날 포럼에서 사회를 맡은 문윤걸 문화저널 편집위원은 “전주문화원은 최근 10여년간 활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른 단체들의 역량이 커진 것도 그 원인이겠지만, 전주문화원이 역할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며, “전주문화원이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먼저 전주문화원이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 자기 역할을 분명히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맞는 사업들을 해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의 조직개편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며 포문을 열었다.
이에 대해 이종민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단장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으로의 변화가 더 시급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현재 전주문화원은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다. 이사회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이사회비도 내지 않는 이사회라면 얼마든지 사무국장과 원장의 뜻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고 비판한 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 조직을 새로 만들어, 투명하고 열린 조직구조를 통해 각 분야의 전문적인 의견들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종진 사무국장은 “조직이라면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사무국장 또한 이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야 하지만, 그동안 전주문화원은 이것이 잘 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토로한 뒤, “지금까지는 전주문화원의 역할이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분명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선 각 분야에서 일정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분들로 구성된 운영위를 구성하고, 여기서 사업 안건을 제시하고 검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 뒤에 좀더 근본적인 조직개편을 하면 될 것이다”며 운영위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어 문윤걸 편집위원은 “현재 전주문화원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노령』발간을 빼놓고는 대부분 문화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단체들이 할 수 있거나 현재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사업들이다. 굳이 전주문화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역량있는 다른 문화단체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으므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전주문화원이 나선다는 것은 전주문화원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전주문화원의 역할이 흐지부지해진 것이 그동안 다른 단체들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역 내의 여러 문화단체들의 사업과 겹치지 않으면서도 전주문화원이 잘할 수 있는 사업이 분명히 있다. 그런 사업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전주문화원의 존립이유를 정당화해 줄 것이다”며 그런 틈새 영역으로 “전주문화원은 지금까지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전주 문화의 원형찾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향토사와 지역사, 그리고 민속과 풍속에 대한 발굴, 연구, 보존이 중심내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종민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비록 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겹치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전주문화원이 하면 쉽게 할 수 있지만 다른 단체들이 하면 쉽게 할 수 없는 사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전주문화원이 계획하고 있는 ‘시티투어’ 사업 같은 경우, 전주문화원이 아니라면 누가 이천만 원이라는 큰 돈을 그렇게 쉽게 지원해 주겠는가. 전주문화원이 가진 법적 지위나 기득권을 이용하면, 더 많은 일들을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다”며 전략적으로 전주문화원이 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겹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전북일보 문화부장도 “문화의 집 같은 경우도, 현재 과도기적 상태에서 여러 단체나 문화시설들과 중복되는 사업들을 하는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그들만의 특화된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문제는 중복된 사업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차별화해서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전주문화원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모두 주사업은 아닐 것이다. 중요사업도 있고, 부가사업도 있을 것이다.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지, 이것을 통제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체제로 놔두고, 이 과정에서 여러 단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성엽 전통문화사랑모임 사무처장은 “문화원이 현장에서 직접 문화사업까지를 담당하기 보다는 문화를 연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문화원은 다른 단체에 비해 우월한 법적 지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 예산까지 지원받고 있는데, 이런 문화원이 다른 단체들과 자유롭게 경쟁하겠다고 하면 지금까지 어렵게 커온 민간단체들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매우 불공정하다. 문화원의 위상으로 보아 지역의 민간단체가 하기 어려운 향토와 민속 부분을 전담해 준다면 그 역할은 매우 클 것이다”며 다른 단체와 중복되는 사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현재 전주문화원은 내부적 한계 때문에 외부적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고민들을 내부적으로 하다보니까 나온 것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안인데 문제해결을 위한 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문화원의 문제만을 놓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라는 큰 틀에서 문화원의 역할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부문제를 외부사업의 확장으로 해결하려 하면 우선 하기 쉬운 사업부터 찾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리 같은 민간단체들과 같은 사업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원 정도면 아주 기초적인 사업들을 다른 단체나 시설들과 중복해서 할 필요가 없으며 일종의 ‘태스크 포스 팀’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주장이었다.
김영배 천년전주사랑모임 운영상임이사는 “전주문화원의 역할을 보면, 퇴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국가의 지원이 부족할 때, 문화원에 일하는 분들이 자비를 털어서 문화의 씨앗을 뿌렸고 이것이 지역문화에 도움이 됐다면, 이것만으로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다”며 “어떤 부분은 다른 문화단체나 시설들이 아주 잘 하는 부분도 있고, 또 어떤 부분은 문화원이 잘 하는 부분이 있다. 단체의 설립목적에 맞게 문화원이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 지, 그중 무엇을 문화원이 잘 할 수 있는지 이런 부분들을 잘 골라내서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고 말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이종진 사무국장은 “새롭게 추진되는 사업들 중에서 이것이 과연 문화원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사업인가라는 질문에는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이 전주문화원의 유일한 돌파구들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단체들과 중복되는 사업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들은 문화원의 존재를 좀 더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착수한 것이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지역문화단체들과 상충되는 사업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올해 전주문화원이 펼칠 구체적인 사업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종민 단장은 “문광부에서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해서 굉장히 많은 공모사업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전주문화원이 아니면 다른 문화단체가 이런 것들을 받아올 수 있는가? 사실 지역의 많은 단체들이 정부 문화정책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전주문화원이 이런 일들을 해나감으로써 지역내 문화단체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만 나중에 지역의 문화단체들이 이런 것에 눈을 떠서 지역 내 단체들끼리 경쟁을 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문화원이 한발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전주문화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전주문화원에 새로운 문화적 활로를 여는 ‘선구자’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김영배 이사도 “전주문화원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공모사업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좋다”며 “정부의 사업들을 따와 본보기도 보여주고, 또 이런 사업들을 토대로 지역 내 문화단체들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문윤걸 편집위원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단체의 중심사업은 분명해야 한다. 전주문화원이 중앙정부의 공모사업 수주 중심의 역할을 하다는 건 옳지 않다. 전주문화원의 중심사업은 지역문화 원형 발굴과 보존, 컨텐츠화에 두어야 하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에도 조직의 역량이 충분치 않은 마당에 다른 사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공모사업에의 참여는 지역 내 다른 단체의 참여를 도와주거나 권유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공모사업의 수주보다는 문화원이 자기 역할을 분명히 찾고 이에 대한 지원을 민간이 함께 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고 말했다
이 날 쉽게 합의될 것 같았던 사안에서 첨예하게 논쟁이 붙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뜨거운 토론이 계속되었다. 가장 큰 논점은 문화원이 지역 내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게 지역문화진흥에 도움이 되겠는가에 대한 논의였다. 당장 문화원이 부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단체의 사업과 중복이 된다 하더라도 문화원이 무슨 일인가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문화원의 법적 지위나 기득권을 활용하여 중앙정부의 공모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하여 그 사업을 다른 단체들과 연합하여 추진하는 역할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특화된 사업, 지역문화 원형발굴 및 보존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쉽게 의견의 일치를 이룬 것은 확실히 과거에 비해서 지역의 문화적 환경이 크게 변하였으므로 문화원의 시대적 역할도 그만큼 변화하고 있으나 전주문화원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지나치게 무관심하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또 전주문화원이 근 20년 이상 같은 조직으로 운영되어 온 점, 그리고 이사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한 점 등 문화원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못해 열린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시급히 개선될 사항이라는 것에도 참석자들은 쉽게 공감하였다.
이를 볼 때 전주문화원의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은 조직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으로 개편되어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다양한 논의를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전주문화원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명확한 자기 신념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