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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하따,오래간만이네요잉","잉 빼고 얘기혀잉."
관리자(2005-05-13 10:29:01)
'하따,오래간만이네요잉","잉 빼고 얘기혀잉." “하아따, 성님! 차암, 오래간만이요잉.” “얼라, 야아, 이 사람. 잘 있었는가. 얼씬네 잘 계시고?” “살다봉게 이렇게도 만나내요잉.” “그릉게 말여, 참 반갑내잉.” ‘배깥이서’ ‘먼’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고 내다‘봉게’, 세월이 얼굴에 묻어 있는 아저씨 둘이서 손을 마주 잡고 ‘엔간히’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한 일이지만, 아마, 대포나 한 잔 하시겠지. 이자정회 회자정리(離者定會 會者定離)라, 살다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게고, 차마 헤어지기 싫어도 또 언젠가는 그래야만 하는 게 삶의 이치라. 떠난 사람 너무 아쉬워 ‘허들’ 말고, 아무리 헤어질 사람이라도 다시 안 볼 요량으로 포악떨지 말자는 게 옛날 어르신네들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리라.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 동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끝마다 너나없이 ‘-잉’을 찾아 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건만, 다들 말끝에 ‘-잉’을 달고 산다. 게다가 다른 동네로 나가 보면 그 놈의 ‘-잉’ 때문에 전라도 사람임을 금방 들키고 만다. 오늘 나는 만사 제쳐놓고 ‘-잉’의 실체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까막새’ 아니 ‘아까치매’, 아저씨들이 나누던 인사에서 ‘-잉’을 다 빼고 말을 한다고 생각해 보면, 어쩐지 살가운 느낌이 사라져 버린다. 그것을 문장으로 써 놓고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 느낌이 분명하다. “하아따, 성님! 차암, 오래간만이네요.” “얼라, 야아, 이 사람. 잘 있었는가. 얼씬네 잘 계시고?” “살다봉게 이렇게도 만나내요.” “그릉게 말여, 참 반갑내.” 이렇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이 대포집에 함께 갔을까? 아마도 ‘시간관계로다가’ 각자의 삶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 또한 어렵지 않게 예상된다. 이것을 보면, 요 ‘-잉’이 전라도 사람들한테는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공감을 해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장치라고 할 만하다. 말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듣는 사람이 공감하리라고 예상될 때 그 ‘-잉’을 사용한다. 말을 듣는 사람 또한 상대방이 ‘-잉’으로 말을 끝내면 쉽게 ‘그려잉’ 아니면 ‘그래요잉’으로 대답하게 된다. 즉, 자기와 같은 생각이거나 적어도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태도를 나타낼 때 ‘잉’을 쓴다. 그렇게 보면 ‘잉’의 사용 빈도가 많은 사람은 상대와 공감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그 만큼 많이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 놈의 ‘-잉’이 제법 쓸 만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잉’은 대체로 호흡의 단위에서 혹은 문장 끝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잉, 굶기를 밥 먹듯 허든 시상이라. 율곡 선생님이 걷다 정자를 하나 지었어잉. 들지름을 짜 가지고 걷다 발러요잉.’ 등이 그 예이다. 이때 ‘잉’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잉’이 쓰이는 자리에 ‘알겠지?’를 바꿔 써도 된다. 그런가하면 “차조심 히라잉, 점심 굶지 말고잉, 일찍 들어오니라잉”하시는 어머니의 당부 말씀 속의 ‘잉’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담고 있다. 반면 ‘너 까불먼 재미없어, 조심히라잉, 존말로 헐 때 잘혀잉’은 무시무시한 자기 존재를 드러내며 협박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당부든 협박이든 자신의 말을 확인하게 만드는 기능이 ‘잉’ 속에 담겨있는 셈이다. 한편, 앞서 언급한 두 사내의 대화에서 ‘잉’은 ‘알겠지?’의 의미가 아니다. 이때 ‘잉’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어울리게 화답해 주는 기능을 한다. 즉, 상대가 내 말에 공감해 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기왕에 형성된 사회적 친밀감을 지속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잉’은 확인의 기능에서 출발하여 공감을 형성하는 기능까지로 발전한 셈이다. 이 상황에서 상대가 내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잉’이 사용되어야 하며 이 규칙이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잉’은 사용되지 못한다. 전라도 사람들에게 ‘잉’은 특유의 말투이다. 타관 사람들에게 이것은 가끔 ‘거시기’와 같다. 타 지역 출신 사업가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는 ‘그래요잉’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가 이 지역 공무원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래요잉’을 들었을 때 ‘일이 잘 풀리나보다’ 싶었는데 며칠 후에 다시 만나도 ‘그래요잉’ 하더라는 것이다. 즉, 면전에서 이해한 것처럼 하고 정작 결정은 다른 방식으로 하거나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낭패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법하다. 가부간의 결정을 내 달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요잉’으로 하는 대답은 정말 ‘거시기허다’. ‘그래요잉’은 대체로 심정적 공감을 담아낼 뿐이다.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자리에서 이런 미온적 태도는 어울리지 않으며, 또한 말 같지 않은 말을 하면서 ‘잉’으로 상대의 공감을 강요하는 것 역시 ‘쌩다리 걸기’다. 아무리 정다운 말투라 하더라도 쓸 자리 봐 가며 써야 말 다워진다. 말하자면 격식을 갖추어야 할 때나 분명한 태도가 필요할 때 이 말투를 남발하는 것은 자칫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사람 사이의 정을 소중하게 여겨온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잉’은 그 정을 살갑게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임에 틀림없다. 남원골서 자란 이 도령이 ‘잉’을 써가며 수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숙 안고 ‘나상(羅裳)을 벗어라잉’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만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제 얼씨구 잘 헌다. 잘 허기는 에린 것들이 못 허는 짓이 없고만.     | 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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