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 |
주먹이 운다
관리자(2005-05-13 10:25:07)
20년 동안 계속되는 도돌이표<주먹이 운다>
“나, 아직 안 죽었다고" 말하는 그는 대개는 바닥에 눕기 직전에 있는 사람. 왕년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태식(최민식)이 그렇다. 40이 되어도 기회비용을 만회하기는커녕 도박과 화재로 그로키를 당한 태식은 세상에 대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을 가진 슬픈 수컷. 그는 거리에 나와 매 맞는 복서를 자처한다. 살아야 하기에. 그리고 스무 살 청년 상환(류승범). 패싸움과 삥뜯기가 주특기인, 인내심이란 전혀 없는 이 양아치가 갈 곳은 큰집. 이 인간말종은 빵에서조차 싸움 끝에 징벌방에 갇힌다. 그래도 그의 주먹과 깡다구를 알아봐 주는 허름한 코치가 있어 수감 중의 고된 훈련 과정을 겪으며 신인왕전을 향한 서사는 진행된다. (미안한 얘기지만, 익숙한 클리세 아니던가.) 믿을 것이라곤 맨 몸뚱이가 전부인 이 두 짐승은 권투로 세상과 싸우는 방법을 택하는데, 감독은 20년 나이 차가 나는 이들의 행로를 병치시키다가 링에서 처음 얼굴을 맞대게 한다.
직립의 인간이 원한 없이도 오로지 두 손만으로 서로를 때리면 돈을 주는 세상. 증오 없이 사냥을 하듯 미움 없이도 상대를 눕혀야 하는 것이 권투 아니던가. 이 두 남자는 3분을 때리고 1분을 손바닥만한 의자에 몸을 걸치고 끝까지 견딘다. 견딤을 웅변하는 긴 화면들. 결승전 6라운드를 통과하고 살아남은 이 두 짐승은 뜨거운 격려를 나눈다. 더 이상 추스를 힘이 없이 ‘엥꼬’된 뒤에 찾아오는 동류의식이요, 죽지 않고 버틴 자의 존경이 실린 악수일 것이다. 좋다. 그러나 정점을 위해 거쳐 온 바탕들은 허접스럽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죽고 할매는 풍 맞은 몸으로 그를 응원한다. 그리고 어린 아들은 결승전 날 새 아빠와 함께 하는 엄마를 떠나 시합장에 찾아오는 것. 게다가 ‘영화’ 같은 오렌지 빛 조명, 장르적 신화성 아니던가.
실패가 내면화로 이어지지 않는 인간들이 휘두르는 주먹은 소리 없는 아우성. 이들이 챔피언도 아닌 신인왕이 된들 그것이 잭팟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는 없다. 하니, 주먹이 울 수밖에. 이십 년 나이 차를 두고 벌어지는 권투 시합은 20년 동안 계속되는 도돌이표인 것이다. 태식에겐 세상이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거고 상환의 미래는 태식인 거라. 아마 스무 살의 상환 역시 20년이 흐른 뒤에도 맨날 신인왕만 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로 말하면 레디고 한 번 못하고 맨날 시나리오 들고 프리프로덕션만 차리다마는 것. 슬픈 인생이다.
두 주인공을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끝까지 교차편집으로만 끌고 간 류승완 감독은 타란티노식 마주침(펄프 픽션의 우연)에 걸렸던 듯하다. 몽타쥬 아닌 원신 원숏으로 가고자 한 긴 화면에는 점수를 주고 싶으나, 무겁다. 음, 뭔가를 알기에 (작가정신에 대한 강박관념?), 펀치 아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 그래도 위안이라면 풍찬노숙하는 그에게 최소한의 비빌 곳을 제공하는 국숫집 남자의 알 듯 말 듯한 미소다. 뭔가 사연을 가졌을 괜찮은 조연 천호진은 끝까지 잘 참는다. 그러나 늙은 코치 변희봉이나 상환의 아버지 역 기주봉은 너무 익숙한 인물들이어서 약발이 덜 먹힌다. 조연은 비밀스러운 조미료를 넣는 맛 아니던가.
마음의 풍경을 일그러진 얼굴과 피칠갑으로 드러낸 감독은 한풀이냐, 참회록이냐, 고 해설자를 시켜 묻는다. 그러나 아니다. 좀 더 위선적이었으면 어땠을까. 착한 아빠, 남편, 친구, 선배 등 대책 없는 주인공과 사악하지 않은 가족들이 보여주는 신파는 가볍다. 지친 수컷 최민식은 <미스틱 리버>의 숀 펜의 풍경을 담고자 한 듯,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하나 더, 살인자 숀 펜의 마누라 같은 가족 하나쯤은 있어도 좋았을 텐데……. 사실, 신중함이란 전혀 없는 중년 남자와 양아치의 참회를 130분 동안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적당히 지겨웠다. 짧게 끊어 치지 못한 감독의 안타까운 클린치일 것이다. 그래도 영화는 ‘뽁싱’과 다른 것이 20년 후에도 다시 신인과 함께 펀치를 나누는 것이 명예롭기에 나는 아직 부지런한 수컷 류승완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는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