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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너만 울며 견디는 것은 아니다
관리자(2005-05-13 10:24:20)
너만 울며 견디는 것은 아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새벽녘 모두들 잠든 고요한 야음을 타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목 놓아 통곡하는 소리는 아니고 벽에 기대고 목이 메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우는 듯한, 혹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애써 삭이지 못한 설움을 토해내는 듯한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타고, 아파트 벽들을 타고, 혹은 얼키고 설킨 건물 배관파이프를 타고 전류처럼 떠도는 것이다. 어디서 들려오는 지 알 수 없다. 바로 위층은 아닌데…… 저 맨 아래층, 아니면 지하에서 울려오는 소리인 것도 같고…… 아닐까, 저 맨 꼭대기층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유난히 지난 겨울은 울음소리가 잦았던 것 같다. 여자의 것만은 아니었다. 저음의 남자 울음소리도 간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곤한 잠을 깨웠다는 짜증도 잠시. 짠한 마음이 가슴을 훑고 가면 새벽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많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라면 으레 있기 마련이고 훈육에 따른 가정의 또 다른 희망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밤중 어른의 울음소리는 귀기마저 서리는 한스러움이 한기를 느끼게 하곤 하는 것이다. 무엇이 저들을 울게 하였을까?   누가 빚보증을 서고 집을 날렸을까? 병든 아내를 두고 남편이 해직 당하였을까? 이마트에 이어 가까이 홈마트가 생긴 뒤 파리 날리고 있는, 아내가 당뇨가 심한 수퍼 아저씨네일까? 몇 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허송하던 저 9층 총각이 실연이라도 당하였을까…… 아이엠에프보다 더 심각한 불경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죽겠다고 난리다. 그 놈의 경제가 뭐길래, 돈이 뭐길래 연일 신문에는 이름도 낯선 ‘생계형 범죄’가 끊이질 않고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 가장들이 가족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식들이 한두 건이 아니다. 나도 울어본 적이 있다. 깜깜한 나락에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 없어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며 엄마를 부르며 가슴을 치던 기억이 있다. 아무도 손을 내밀어 잡아주지 않았으나, 때론 그렇게 우는 것 자체가 견딤이었고 견딤 끝에 새 날이 밝아오기도 하였다.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세상을 끝내기엔 너무 무책임하지 않으냐? 견뎌온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 나만 울며 견디는 것이 아니다. 이 밤도 누군가 땅을 구르며 운다. “아무도 울지 않은 밤은 없”는 것이다.   깜깜한 지층 속에서 광맥을 찾아내듯이, 칠흑의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켜듯이” 울어라. 알프레드 드 뮈세라는 시인은 「비애」라는 시에서, “이제 이 세상에 남은 나의 유일한 재산은/ 때로 눈물을 흘렸다는 일”이라 썼단다. 땅에 머리를 처박고 울었던 자리, 모래 위에 둥글게 나 있는 사내의 머리빡 자국을 시인은 “머리로 땅을 뚫고 나가려던 흔적”으로 읽는다. 그래, 그렇다면 모래에 머리 처박고 울었어도 좋겠구나. 그 둥근 머리자국 모습으로 너와 나의 가슴에 또 해는 떠오를 것이니, 손 내밀어 잡아주진 못하지만 나 또한 소리 없이 누선을 적시며 이 밤 우는 그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싶다.   복효근 | 1991년 『시와 시학』에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때가 강을 건너는 법』이 있다. 현재는 남원 운봉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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