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 |
전북문학지도간행위원, 소설가 김병용씨
관리자(2005-05-13 10:23:05)
전북문학지도간행위원, 소설가 김병용씨
전북문학의'길'을 내다
-김선경 편집위원
정양 시인의 시집 『길을 잃고 싶은 때가 많았다』 출판기념회가 있는 날, 기념식이 열리는 한 음식점을 찾았다. 정양 시인의 시집 옆에 연둣빛 표지의 책이 층층이 쌓여있다. 『땅은 바다를 안고』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전국문학지도1-전북의 서해안 지역」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문학지도’라. 생소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슬쩍 책을 펼쳐본다.
“‘풍요로운 물산이 이 땅의 문학을 낳았다’는 진술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허기에 시달리는 이가 꿈꾼다. 꿈꾸지 않고서는 현실을 견딜 수 없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수행...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던 매창. 자신의 거처를 푸른 언덕, ‘청구원(靑丘園)’이라 스스로 이름한 채 ‘그 먼 나라’를 꿈꿔야 했던 석정. 그들이 남긴 빈집과 무덤은 먼 듯,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한소리’는 그렇듯 생을 다 소진해야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꿈꾸는 자신을 꿈꾸며, 원망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며, 한 생애를 다 했고 ‘한 소식’을 기다렸다.”(‘서문’ 중에서)
군산, 김제, 고창, 부안 일대를 문인과 작품의 향기에 이끌려 한 발 한 발 꼭꼭 찍어내듯 써낸 글들이 책 속에 담겨있다. 탁류, 고은, 선유도, 군산항, 금강, 만경강, 이광웅, 이병훈 의 군산을 지나, 망해사, 귀신사, 아리랑, 금산사의 김제를 지나면, 매창, 박형진, 김구와 반계, 내소사, 신석정이 기다리는 부안으로 간다. 다시 길은 고창으로 흘러 선운사 동백꽃과 도솔암, 암각미륵불의 배꼽을 지나 미당이 머물던 자리에서 질긴 삶의 목청들이 살아 들리는 소리판에서 끝이 난다.
이쯤 되면, 이리 먼 길을 떠난 이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북문학지도간행위원회 쓰고 펴냄’으로 되어있는 지은이의 면면은 정양 시인을 비롯해 임명진, 안도현, 이대규, 김병용, 장창영, 박성우 등 7명이다. 이들 중에서 맨 처음 ‘문학지도’라는 이름을 꺼내고 제안한 이가 바로 소설가 김병용씨. 왜 이런 책을 제안했느냐고 묻자 대뜸 중국 고사성어부터 꺼낸다.
“좌도우사(左圖右史)라는 고사성어가 있어요. 왼쪽에는 지도를 놓고 오른쪽에 역사책을 놓는다는 뜻인데, 선비들이 공부할 때 학문적 균형을 이루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고사성어입니다. 지금까지 전북문학사는 나름대로 많이 씌어졌지만 전북문학의 지형을 상세하게 그려낸 경우는 없었어요. 문학기행을 하더라도 문학을 위주로 마련된 변변한 안내서가 없어서 항상 난감했는데, 이 참에 문학지도를 펴내 보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이죠.”
좌도우사라. 그런 고사성어가 있었나 싶어서 찾아보니, 중국 당서 양관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양관이라는 사람이 공부할 때 왼쪽에는 지도를, 오른쪽엔 역사책을 펼쳐놓고 역사를 시·공간 양면에서 성찰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함께 이해해야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북의 문학지도란, 전북문학의 역사를 전북이라는 지형과 역사적 흐름 속에서 제대로 살펴보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어디 문학의 축적이 그리 만만한 것이던가. 크고 낮은 봉우리들 중에서 무엇을 취하고 버릴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만 해도 몇날 며칠 머리 싸매고 고민하기에 충분한 일. 그 어려운 숙제를 해결해 준 사람은 정양 시인과 임명진 회장이었다.
“정양 선생님과 임명진 회장님이 전체적으로 큰 틀거리를 만들고 취사선택을 해주셨어요. 현장답사와 글은 이대규, 장창영 회원이 고생해줬고 저하고 박상우씨는 주로 후반 편집과 배열에 공을 들였습니다. 아 참, 안도현 선생님이 큰 일을 해주셨죠. 책을 펴낼 수 있게 출판사를 섭외해 주셨거든요.”
그렇게 여러 회원들이 고생해서 만든 책은,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이전의 답사류 책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갖는다. 대개의 문화 답사책이 지형안내와 역사서술에 머무르기 일쑤고, 인물 중심의 문학기행은 문인의 일대기와 작품을 늘어놓기 일쑤인데 반해, 이 책에서는 문화답사인가 하면 자연스럽게 문학인의 삶이 흘러들고, 문학인의 일생인가 하면 어느덧 자연풍경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전북지역에 뿌리박힌 문학의 자취를 더듬어보거나 전북이 낳은 위대한 문인들의 일대기를 추억하는 일은 이 책의 진짜 목적이 아니다. 가령 ‘부안’ 편에서 곰소바다를 얘기할 때,
이 곳에서는 문학도 한 걸음 뒷전에 밀려나 있다. 펄떡펄떡 삶이 살아 숨쉬는 순간 앞에서 문학은 잠시 숨을 멈춘다. 숭고한 삶의 현장. 거기에는 문학보다 아름다운 찬연한 생이 있을 뿐이다. 어느 한 곳, 시선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라도 눈길 두기 두려울 정도로 뜨겁다. 머리로 쓴 문학작품보다 더 뜨겁게 살다간 한 사람의 인생이 훨씬 아름답다. 어쩌면 우리들은 그 흔적의 상흔을 아로새기고 추억하기 위해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닐까. 몸부림쳐도 쉽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대항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226쪽)
라는 구절을 만나면, 문학이나 지역에 대한 얘기보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자기반성의 정신이 느껴진다. ‘문인들이 쓴 문학답사’가 일반인들이 쓴 문학답사와 어떻게 다른지를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개의 문인들이 자신의 작품활동에만 전념하는 것을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이런 ‘허접한’ 수고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북작가회의의 이번 출판작업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간행위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나온 1권에서 부족한 부분을 2권에서는 좀 보강할 생각입니다. 보통의 답사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통정보라든지 여행정보 등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물론 저희도 생각은 했지만 여력이 없어서 못했던 부분인데요. 앞으로 펴낼 책에서는 이 부분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1권이 군산, 김제, 고창, 부안을 아우르는 ‘해안부’라면, 앞으로 펴낼 2권은 무진장, 임순남을 아우르는 ‘산간부’가 될 것이고, 3권은 전주, 완주, 익산 등의 ‘평야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라북도에서 지원하는 6천만 원의 기금으로 진행되는 문학지도 발간사업은 이제 초반 레이스를 마쳤을 뿐이다. 1권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보면서 2,3권은 더욱 내실 있고 세련되게 펴내겠다는 것이 간행위원들의 생각이다.
“전북작가회의 이름으로 간행되는 것인 만큼, 확실한 작가회의의 색깔을 표방하고 싶습니다. 기존의 평가나 기준은 거의 반영하지 않고 오롯이 우리의 시각으로 선택하고 바라보고 적어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섭섭해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고창을 얘기할 때 유하나 은희경을 거론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고창 출신이기는 해도 고창에 관한 문학작품을 많이 써낸 것이 없다는 면에서 제외시켰거든요.”
문학지도 간행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병용씨는 문예진흥원 창작기금을 받고 현재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글이 너무 책 이야기로만 흐른 감이 없지 않아서 어느 후배가 들려준 김병용씨에 대한 ‘재미있는’ 소개를 첨부한다. “전북작가회의와 혼불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 지역문단에서는 ‘최고의 행정가’로 뽑힌다. 언론사에서는 빨리쓰기, 길게쓰기, 재밌게쓰기 등 글쓰기 3대 달인으로 통하며, 섭외 1순위 대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