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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문화영토 판의<행복한 가족>
관리자(2005-05-13 10:21:59)
문화영토 판의<행복한 가족> 난장의 제사 희극, 침잠의 서정미학 -김길수 연극평론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엔터테인먼트성 취향과 기호에 맞는 공연 코드는 무얼까.  감동과 오락, 깨달아가기의 연극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문화영토 판의 <행복한 가족>(민복기 작, 정진권 연출, 소극장 판 공연장, 05년 3월 25일-4월 17일)은 가족 제사를 통해 질펀한 희극성과 가족 사랑의 아름다움, 그리고 침잠의 서정미를 드리워내면서 전주 지역 관객들의 호응과 사랑을 얻어내고 있다.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 노인이 무대의 메인 공간을 빙 돌아 들어선다. 아내의 유품으로 간주된 녹음 테입, 이를 대하는 노인의 손놀림과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죽은 아내를 향한 사모의 정, 테입 속의 음악 선율이 울려 퍼지면서 죽은 자와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죽은 아내가 좋아했던 대중가요다.  벽에 걸린 아내의 흑백 초상 이미지, 말없는 자를 향한 고백성 언어, 제사 초입으로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유도된다.   제사상에서 절하는 문제, 자녀들이 오지 않는다 하여 닦달하는 부친, 부친의 성화를 무마하기 위해 벌이는 각종 희극적 해프닝이 장남, 며느리, 딸, 사위의 행동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제사상 혼백 종이를 불태우는 그림은 이 연극의 압권이자 백미다. 죽은 아내를 상징하는 종이 위패, 불타면서 그 재가 하늘로 솟아오른다. 만남과 사라짐의 접점, 부활과 소멸의 교차 극점이 상기된다. 불꽃이 재로 변하는 동적인 과정, 각 오브제와의 만남, 몸체와 얼굴을 15도 비스듬하게 비틀려 설계하는 과정, 따스함이 연출되는 노란 조명빛, 비장미 색조의 선율, 이를 타고 빚어지는 서정성 넘치는 음성 설계, 아버지 역의 안세형은 내면 속에 지워지지 않을 가족 사랑을 우주적 서정 공간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약간은 괴팍하고 성미 급한 노인의 강압적 이미지, 그러면서 제사 지내는 자의 엄격성 이미지가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주도하였다면 종반부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그 누구에게서도 따스한 시선을 받지 않은 채 냉혹한 현실 공간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노인의 그림만이 클로즈업된다. 홀로 힘없이 울먹거리며 걷는 그림, 이를 말없는 절규 이미지로 빚어간 안세형의 육체 언어는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다.   난장극의 활력은 즐거움의 분위기로 마무리될 듯 하지만 막판 뒤집기가 이루어진다. 연희 공간이 제사대여업체의 영업 공간임이 극의 종반부에서야 드러난다. 사무실 영업 직원(주서영 분)의 기계적인 말투, 계산서 부여 행동은 사무적이다 못해 냉정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죽음 대비를 암시하는 영정 사진 촬영, 이런 그림 설정은 극중극 몰입 구도를 깨뜨리면서 가족 해체라는 우리네 비틀린 현실을 냉정하게 성찰케 한다. 환상 깨뜨리기의 전략은 깨닫기 연극 효능의 또 다른 묘미로서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제압 공간과 방어 공간의 경계가 막판 뒤바뀌면서 환상 파괴를 통한 깨닫게 하기 효과는 배가된다. 엄한 부친 앞에서 감추기, 속이기를 향한 난장 흐름이 전반적인 활력 창출에 기여하였다면 막판 후반부에선 막내의 등장, 가슴속에 숨어있는 사랑하는 이와의 별리 장면은 서정적인 침잠 효과를 자아내면서 극의 품격 살리기에 기여하고 있다.   자본주의 영업 현실의 냉혹함, 텅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노인, 어디를 둘러보아도 따스한 반향음을 들을 수 없다. 아내의 영정 사진을 가방에 넣고서 터벅터벅 걸어나가는 이미지, 을씨년스런 현실로 내팽개쳐진 이미지가 정밀하게 무대화되고 있다. 제사대여 용역회사를 통해서 나마 잃어버린 가족들을 만나려는 몸부림, 그게 속절없음에도 이를 통해 위안을 얻으려는 발상은 진한 동정과 연민을 유도한다. 극의 공간 배치, 아버지(안세형 분)가 위치한 강압 공간과 자녀들(고조영, 백민기, 홍지예, 홍자연, 이정호 분)이 위치한 읍소 공간의 만남과 충돌이 탄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한 공간 분할 긋기 작업이 좌우로 설계되면서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의 공격과 방어, 재촉과 무마, 조화와 해체의 길항 작업이 극명하게 이루어진다.   제사 위패에서 절을 올리는 상황, 신앙인 딸(홍자연 분)은 결사 반대다. 부친의 성화는 극에 달한다. 딸은 제사 상 앞에 내동댕이쳐진다. "아버지!", 라는 딸의 기도 음성 언어와 놀람 언어,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부친, 반응코드가 달라 벌이는 희극적 해프닝, 기도하며 울부짖는 자, 황당해 하는 가족들, 그 불일치, 그 뒤틀림으로 인한 희극 전략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희극성 확장을 향한 배우들의 반응 시점, 포인트, 차이, 규모에 대한 탐색 역시 차후 공연 숙제다. 장남과 며느리의 갈등, 두 사람만의 은밀한 부부 싸움, 차후 텍스트 재해석 및 숨은 의미 발견과정에서 동기 부여 보충 및 정밀 비유 이미지가 강구될 필요가 있다.   제사의 경건 분위기, 그런데 사위는 택시 기사 복장이다. 분개한 부친, “옷 벗어”, 노인의 요구가 아버지에게서 장남(이정호 분)으로 심지어 며느리(홍지예 분)에게까지 확장될 때 관객의 폭소는 극대화된다. ‘옷벗어’라는 지시어가 명령어로 전환되는 과정, 특히 명령이 독촉으로 전이, 확장되어갈 때, 각 인물들이 벌이는 발화와 반응의 타이밍이 좀더 치밀하게 계산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연극에선 제사 지내기를 통해 가장 우리다운 가족 소통의 그림과 난장의 멋이 자연스레 우러나오고 있다. 아울러 별리, 그리움, 회한이라는 민족 심상의 정서가 감정이입 작업과 정밀 내면 연기로 승화되면서 진한 서정적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     눈물을 몰랐던 중년 관객으로 하여금 뜨거움을 경험케 하고, 다섯 살 배기 어린이 관객까지도 부모와 더불어 한 시간 반 동안 기분 좋게 관람케 했던 연극, 문화영토 판의 가족극 <행복한 가족>은 대중성과 예술성 성취라는 두 가지 연극 숙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있다.   김길수 |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으면서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순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연극평론집 『우리시대 삶과 연극의 조망-해체극, 상황극, 희비극』, 『남도의 희곡미학』 등으로 제 2회 Performing Art and Film Review(연극부문) 비평상, 제3회 여석기연극평론가상, 예술평론상 등을 수상했다. <동승>, <맥베드>, <땅이여 사랑일레라> 등을 극본, 연출, 예술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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