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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산성]남방방어 진지였던 '고창의 성터'
관리자(2005-05-13 10:08:16)
남방방어 진지였던 '고창의 성터' -고창 문화원 고창지역은 역사적으로 백제에 속한 땅으로서 서해안을 끼고 75㎞의 해안선이 있기 때문에 연안의 방비를 위해 요소에 산성들을 수축하고 있었다. 고창의 성지(城址)는 옛 고을인 고창, 무장, 흥덕의 세 읍성을 제외하고도 6개소가 더 있다. 백제의 고현성인 장사산성은 테뫼형으로 표고 269.6m의 장사산 허리를 감은 옛 장사고을의 석성으로 「고적조사자료」에 보면 상하면 하장리와 공음면 두암리에 걸쳐 있으며 석축의 둘레가 약 4백칸(약 720m)으로 성안에는 현을 다스린 흔적이 있다. 또한 백제 때 송미지현에서 고려 때 무송으로 이어진 무송고현의 토성은「고적조사자료」에 보면 토성산(표고120m)을 에워싸고 있는 약 350칸(약 630m)의 원형으로 되었다. 그 위치는 대산면 성남리와 성동리 그리고 성송면 하고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서산고성은 표고 140m의 성틀봉 북쪽 능선에서 남쪽허리를 휘어감은 삼국시대의 테뫼형 석성지로서「문헌비고」성곽조에 보면 ‘서산고성 재서15리 화시산 주2리 세전 삼한시축’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성봉산성은 삼국시대의 성책지로서 태봉(고수면 예지리~아산면 봉덕리, 표고110m)의 산허리를 사방으로 둘러 휘감고 있는 테뫼형 산성이며 「고적조사자료」에 보면 ‘토축으로서 둘레 약 180칸(약 324m)이며 그 높이는 1칸이다’라고 적고 있다. 조시산산성은 삼국시대 해안 방비성으로 해리면 왕촌리 뒷산인 조시산 허리를 휘어감은 테뫼형 산성이며「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토축으로서 둘레는 약 2백칸(약 360m)으로 계단 모양을 띄고 있으며 고려때까지 수축하여 사용한 흔적이 있다’고 하였다. 고창지역 산성의 대표격인 고산산성의 문헌적인 기록을 보면「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무장조에 ‘고산성은 석축성으로서 그 둘레가 8100척이며 성안에 샘이 세 곳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문헌비고」성곽조의 무장현을 보면 ‘고산성은 현의 남쪽 20리에 있고 돌로 쌓은 성으로서 그 주위가 8100척으로서 지금은 폐성이다. 성안에 샘이 세 곳 있었다. 세전으로는 삼국시대의 성’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지도서」에는 그 위치를 ‘현의 남쪽 30리’로 적고 있어 실측해 보니 위에 적은 기록보다 아래 내용이 정확한 거리 표시인 것 같다. 현 고창군 성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3㎞거리에 있는 노령산맥의 정맥이 서남향으로 줄기차게 뻗어내리다가 우뚝 멈춰선 곳에 독립된 산봉으로서 전라남북도계상의 고산(표고 500m)정상에서 서남향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고산산성은 「고적조사자료」에 보면 ‘고산성지는 자연석으로 쌓은 산성인데 그 둘레가 약 1500칸(2700m)’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성은 ‘갈재’의 연맥에서 따로 비켜선 외따른 산형을 이루면서 3㎞쯤 남쪽의 영광군 대마면의 고성산(古城山·546m)의 성지와 더불어 지정학적으로 천연의 요새가 된 삼국시대의 남방 방어진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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