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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 |
[산성]자연지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
관리자(2005-05-13 10:05:04)
자연지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 - 강원종 전북문화재 연구원 산성은 산악지형에 돌과 흙 또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뜻하는데, 성곽을 용도에 따라 구분하는 한 종류이다. 산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성곽(城廓 또는 城郭)을 먼저 살펴보면, 성곽은 내성과 외성을 합한 것으로써 내성은 성을 말하는 것이고 외성은 곽을 뜻한다. 그러나 성곽과 성은 의미상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성곽의 기원과 발달, 성곽의 분류와 종류, 그리고 성곽의 구성요소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전북지역 내의 발굴조사 된 산성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성곽의 최초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조선전(朝鮮傳) 기사 중 한 무제가 위만조선 침공할 당시 왕검성(평양성)으로, 그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이다. 우리나라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서 나타나며, 신라는 기원전 37년에 금성을, 백제는 기원전 11년에 마수성·병산책을, 고구려는 기원전 33년에 성곽을 쌓고 궁성을 지었다 한다. 현재까지 고고학적 자료로는 원삼국시대의 김해 회현리 패총의 성책이 1세기경 축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책 또는 책은 기원전 1-2세기경 고지성 집락에 설치한 환호시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외부의 짐승과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주지 둘레에 판 도랑형태이다. 고고학적인 성과로 보면 우리나라 남한 지역에서는 적어도 1세기 무렵에 성곽과 비슷한 방어시설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삼국시대에 들어서면 영역확장이 본격화되면서 본거지(수도)와 그 주변, 교통의 요충지, 그리고 국경지역에 많은 산성이 축조된다. 성곽의 발달은 기원에서도 말했지만 원삼국시대나 삼국시대 초기에는 성책·책과 같이 나무 등을 이용하여 만든 목책으로 추측된다. 본격적인 석축의 성곽은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3세기 이후이다. 즉 성곽의 발달 순서는 목책→토성→석성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조선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에서도 목책성이 활용되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혼재 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의 성곽은 산성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지세가 산악으로 중첩되어 있어 자연지세의 험고를 이용하려 했기 때문이며, 산악지대가 주로 접경지대를 이루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성곽의 종류는 거주주체, 목적, 지형, 지리적인 위치, 축성재료 등으로 구분된다. 거주주체에 따라 도성, 왕성, 읍성 등이 있다. 이 중 전북지역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읍성이다. 읍성은 거주하는 사람들이 군, 현주민으로서 이들의 보호와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한 성으로 도성과의 차이는 종묘와 사직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읍성은 조선시대에 전란을 대비하여 활발하게 축조되었다.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과 평지성, 평산성 등으로 구분된다. 이글의 주제인 산성은 바로 성곽을 지형에 따라 구분한 한 분류이다. 먼저 산성의 형태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테뫼식(산정식·시루성) 산성은 성벽이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따라 둘린 형태를 하고 있다. 대부분 소규모로 원형이나 타원형의 평면을 하고 있다. 테뫼식 산성의 가장 큰 제약은 수원(물) 확보이다. 포곡식산성은 성 내에 계곡을 끼고 있는 산성으로 테뫼식보다 크며, 내부공간도 넓다. 평면형태는 자연곡선형이 많다. 복합식산성은 성내에 산정상과 계곡을 공유하고 있는 복합형식으로, 대규모의 산성이나 도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자면 평양의 대성산성, 공주 공산성, 부여 부소산성 등이 있다. 다음으로는 성곽을 구성하는 요소를 살펴보자. 성문은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사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전세가 유리할 때에는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기도 하는 통로로 출입이 편리한 곳에 둔다. 그러나 적의 주공격 목표가 되기 쉽기 때문에 성문지역에는 옹성, 적대 등 보호시설을 하고 육축과 문루를 축조하는데, 전주읍성의 풍남문도 이와 같이 보호시설을 하였다. 성문은 초기에는 토루의 일부를 절단하거나 일부를 축정하지 않고 개구부를 만들었다. 성문은 축성목적에 따라 정문, 간문, 암문 등이 있다. 암문은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밀한 곳에 작게 만든 문으로 성곽의 규모가 큰 경우 많으며, 산성의 경우 적합하다. 수문은 배수를 위한 시설로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이다. 옹성은 성문을 밖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외부에 설치한 이중성벽으로 이러한 옹성은 고창 읍성인 모양성 성문에 잘 남아 있다.   성벽에서 근본을 이루는 것이 체성인데 성곽의 몸통부분에 해당된다.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체성 위와 주변에 각종 부대시설을 설치하여 성벽의 방어력을 높인다. 그 시설들에는 여장, 총안, 치, 각루, 적대, 해자 등이 있다. 여장은 체성 위에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이며, 총안은 여장에서 총이나 활을 쏘기 위한 구멍을 말한다. 치는 성곽의 요소에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방향에서 접근하는 적과 성벽에 붙은 적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서 ‘凸’ 모양으로 만들었다. 치성 위의 누각은 포루, 모퉁이부분은 각루, 성문 좌우 것은 적대라 한다. 해자는 성벽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자연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성곽시설의 하나이다. 다음으로 전북지역 내 성곽에 대해 살펴보자. 전북지역 내 성곽은 165개소에 이르는데, 이들 모두가 백제의 고지인 백제 영역에 있다하여 백제가 쌓았다고 볼 수는 없다. 백제의 영역화 이전에 마한세력이 쌓았을 가능성도 있고, 전북 동부산악지대는 가야와 신라와 접하고 있어 가야 및 신라세력이 산성을 쌓았을 수도 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산성은 개괄조사 즉, 지표조사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지표 채집된 유물 등으로 산성의 축조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유물은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있는데 백제시대의 유물이 확인되는 백제계 산성은 대략 80여 개소에 이른다. 전북지역 내 산성 중 발굴조사된 유적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삼국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산성 중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산성으로는 진안 와정토성, 완주 봉동 배매산성, 익산 오금산성, 순창 대모산성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산성으로는 전주 동고산성이 있고, 조선시대에 축조한 산성으로는 완주 위봉산성, 전주 남고산성, 고창읍성 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익산 오금산성은 익산토성이라고 불리는데 성의 둘레는 690m인 포곡식으로 백제말기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성은 내외에 호석열(기단)을 돌리고 그 안에 토루를 쌓은 것으로 부여의 부소산성의 성벽과 비슷한 축성법을 하고 있다. 진안 와정토성은 용담면 월계리에 속하며 지금은 용담호에 갇혀 있다. 야산 정상부 주위에 목책을 한 토성으로 대가야계 유물이 일부 보이지만 삼족토기 등 백제토기가 출토되는 백제성이다. 축조시기는 4세기 말 또는 5세기 중엽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완주 배매산성은 봉동읍 구만리 ‘야산’이라고 불리는 산에 자리한다. 산 8부 능선에 토루가 둘러져 있는 토성으로 성 내부 중앙부에는 목책이 둘러져 있고, 목책 안쪽에는 건물지와 담수지가 확인되었다. 담수지 안에서는 삼족토기, 기대 등 의례용 토기가 다량 출토되었으며, 경사면에는 막사와 같은 건물지들이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배매산성은 방어시설이기도 하겠지만 ‘배매’가 ‘배(拜)’하는 산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어 백제시대 제사유적으로 알려진 공주 정지산유적과 유사한 점이 많다. 출토유물로 보아 배매산성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된다. 순창 대모산성은 포곡식의 석성으로 낮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 둘레는 875m 정도이다. 발굴조사로 북문지가 조사되었는데 체성이 서로 엇갈려 개구부를 만든 문이 확인되었고, 문지 하층 퇴적층에서 백제시대의 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이 기와는 백제지역에서만 보이는 특색있는 기와로 외면에는 선문이, 내면에는 포목흔과 승석흔이 남아 있고, 기와의 분할면이 와도로 깨끗하게 처리된 점이 특징이다. 이런 기와는 대전·충청지역의 백제산성에서부터 전북 동부지역의 산성, 그리고 전남 섬진강 서안의 백제시대 산성에서 두루 확인된다. 통일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되는 동고산성은 포곡식의 석성으로 성벽 일부와 내부 건물지가 일부 조사되었다. 건물지는 생활거주용이 아닌 누각형의 대형건물들이다. 주건물지에서는 전주성명(‘全州城’銘)의 와당이 출토되었고, 기타 건물지에서는 선문+관(‘官’)명의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전북지역의 성곽은 읍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산성이며, 대부분의 산성은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제가 5방제를 실시했던 당시의 방성으로 추정되는 고부지역(중방), 남원지역(남방)에 산성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산성의 축조 재료면에서 토축과 석축이 있는데, 후기로 갈수록 석축이 많아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산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미비하여 전북지역 내 산성이 지니는 특징에 대해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앞으로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가 많이 이루어진다면 백제의 진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원종 | 전북대 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전북대 고고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전북문화재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전북동북지역 산성의 연구」, 「전북지역의 관방유적 연구현황」, 「전북 동북지역의 산성과 교통로」, 「남원지역의 산성소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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