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 |
마음이 만드는 병
관리자(2005-04-08 17:11:23)
우리 한의원에는 유난히 화병환자들이 많다. 대개는 단순한 견비통, 소화불량, 두통 등을 호소하지만, 진맥하고 보면 화병이 끼어있거나 원인인 경우가 꽤 있다. 환자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것이 상대적으로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남편의 바람기나 가정폭력 등등 고된 시집살이가 주 원인이었다면 요즘에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늘고 있다. 따라서 환자들의 연령이 상대적으로 젊어졌고, 남자환자들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 자녀양육 문제, 자기계발 등 모든 것들이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라서 그러기도 하지만, 불경기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줄면 부자가 아닌 이상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남편은 자존심이 상하고, 아내는 그만큼 힘들어진다. 더구나 맞벌이 가정에서도 집안일은 아내 몫으로 여기는 풍토가 많이 남아 있어서, 아내는 육체적으로 더 힘들고 정신적으로 더 여유가 없게 된다. 서로 여유가 없어지면 사소한 일에도 울컥하게 되고 싸우게 된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역시 쌓이는 것이 늘어간다. 이러한 억울, 짜증, 분노가 쌓여서 기운을 뭉치게 만들고 뭉친 기운은 점점 불(화, 火)로 변해간다. 사회가 병을 만들고 또한 마음이 화병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화병이 오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등짝이 항상 뻐근하다. 소화는 잘 안되고 속이 답답하다. 여기저기 특별한 이유 없이 아프기도 하고, 속에서 열이 올라와 밤에 잠을 깊이 못자기도 한다. 우울하고 의욕이 없으며 살기도 싫어지고 때로는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모두 기운이 뭉친 증상이고 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증상들이다. 이 경우 화병치료를 먼저 하지 않으면 다른 증상들이 잘 호전되지 않거나 호전되더라도 금방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원에 오면 침, 뜸, 지압, 탕약을 쓰지만, 본인의 마음자세와 생활이 변해야 치료효과가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발산’시키는 것이다. 화병은 마음속의 분노와 억울과 짜증과 답답함 등을 속으로 눌러 삭힐수록 심하게 되기 때문에, 반대로 운동을 통해서 땀도 발산하고 사지를 움직여 막힌 기운을 통하게 해주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야외에서의 산책, 빨리 걷기, 등산, 여행 등이 훨씬 효과적이다.) 또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야외로 나가 탁 트인 경관을 자주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힘든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상황이 모두에게 화병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고 다스리느냐에 따라 다르다. 속으로 눌러 삭히기만 하면 화병이 되기 쉽고, 그렇다고 무조건 화를 내고 싸우는 쪽으로 가면 자기나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가정이 파탄 나거나 더 큰 화병으로 발전하기 쉽다. 적당히 발산하고 토해내며 화를 낼 때는 화내고, 또한 적당한 수준에서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참을성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노력한다. 부정적인 마음은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고, 기운을 뭉치게 만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한다. 긍적적인 마음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며, 부드럽고 환하게 하며,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내며, 스스로의 삶을 훨씬 더 자신 있게 만든다.
| 이용철 서울 동화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