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 |
애국가와 저작권
관리자(2005-04-08 17:10:45)
몇 해 전부터 논란거리가 되어 온 애국가의 저작권 시비는 고 안익태 선생의 유족이 저작권을 국가에 헌납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발단은 프로축구 케이(K) 리그 경기 시작 전 축구장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대하여 음악저작권협회가 해당 구단에 저작권료를 요구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애국가가 저작권료 징수대상이 되어 왔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 네티즌들의 성난 목소리가 인터넷을 통하여 전파되었고, 그 와중에 선생의 유족들에 대한 다소의 반감이 섞이기까지 하였다.
애국가가 안익태 선생의 교향곡 한국 환상곡(Korean Fantasy) 중 일부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선생이 3·1 운동 때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가사를 붙여 만든 당시의 애국가를 듣고, 이 가삿말을 외국곡이 아닌 우리의 곡에 담기 위해서 애국가를 작곡하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정이지만, 만약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2002년 월드컵 4강전에서 우리는 하이든의 악4중주 “황제”에서 따온 독일의 아름다운 국가에 이어 엉뚱하게도 스코틀랜드 민요를 들을 뻔 하였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은 평양의 숭실중학 시절 3·1 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한 후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당대 제일가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유명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던 선생은 스페인 여자와 결혼하고 본토에서 떨어진 마요르카 섬에 정착하게 된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지중해의 따스한 햇볕도 식민조국과 빈곤에 허덕이는 헤어진 가족을 두고는 기쁨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작곡 당시인 1935년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점임에도 애국가의 선율이 나오는 3악장에서 선생은 광복의 기쁨을 맞는 합창을 노래하였으니, 참으로 어떤 독립운동가 못지않은 선각자라 할 것이다.
정부가 애국가의 저작권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네티즌들 중 일부는 어떻게 애국가를 돈 주고 사야하는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돈 주고 살 바에야 애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우리 모두가 즐겨 쓰고 있으니
네가 좀 양보해라, 또는 국가로 불려지니 얼마나 영광스럽겠냐 하는 주장은 선생의 부인 롤리타 여사가 생활고로 인하여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다시 스페인국적을 회복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나마 음악저작권협회에서 선생의 유족에게 지급해온 저작권료는 관리를 시작한 1992년 이래 한해 평균 약 7백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하니, 애국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저 입이 다물어질 수밖에 없다.
애국가를 개인이 부르거나, 공식적인 의전행사에서 사용하는 것은 영리목적이 아니므로 저작권료 징수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앞서 말한 축구경기처럼 입장료 수입이 생기는 영리목적 사업에서 대중 앞에 애국가를 사용할 때 비로소 저작권료를 내는 것임에도, 일부 네티즌들은 마치 어떤 경우라도 저작권 때문에 마음 놓고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것인 양 사실을 왜곡하여 왔다. 창작자를 귀하게 여기는 자세와 사회분위기가 문화예술 발전의 기본임에도, 지적창작물에 대하여 공짜정신이 길들여져 있는 저들은 유족을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매도함으로써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준 것이다.
롤리타 여사가 친히 작성하였다는 기증서의 “애국가가 한국 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불려지기를 소망하며 고인이 사랑했던 조국에 이 곡을 기증합니다”라는 문구는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