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 |
밀리언달러 베이비
관리자(2005-04-08 17:06:13)
오인이 잡은 물고기
<황야의 무법자> 출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복싱을 소재로 25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다. K-1이나 프라이드 같은 퓨전 격투기에 열광하는 오늘, 복싱 영화는 이제 군대서 축구한 이야기밖에 안 된다. 노망한 것일까. 아니다.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단순한 복싱 이야기가 아니다.
캔버스를 마주하지 못하고 백묵을 잡는 화가들과 시를 쓰고자 하나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 시인은 학생들 백일장이나 사생 대회 때, 그들끼리 남부시장이나 마이산 막걸리 집에서 회한의 술을 마신다. 그리고 챔피언이 되지 못한 체육인은 변두리에 도장을 연다. 고만고만한 복싱 연수생들을 가르치는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마찬가지다. 예이츠를 좋아하는 아일랜드 출신의 그는 상처 전문가 (그래, 선생은 상처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1센트 짜리 물건에 숨어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게 된, 보물 같은 진귀한 것이라는 뜻)를 볼 줄 아는 눈이 있다. 교리에 대해 의심이 많아 신부에게 앙알거리지만 성실히 기도하는, 배워서 남 주기를 실천하지만 내 새끼는 못 가르치는 영감 프랭키는 다 키워놓은 챔피언 감을 빼앗긴다.
노인 프랭키에게 복서 지망생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좋은 기회를 갖추지 못한 데다 적지 않은 나이, 게다가 여자다. 그는 처음부터 여자는 안 받는단다. 비인부전(非人不傳)을 강조하는 사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만 하는 이 식당 종업원은, “서른 한살이 늦었다면, 나한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며 그의 제자 되기를 간청한다. 결국 노인은 마지막으로 찾아온 희망 메기에게 정석과 절차를 가르친다. 챔피언이 되려면 꼼꼼히 기초를 밟아야 한다는 노인의 지론은 이스트우드 영화 철학을 닮아있다.
그는 메기가 천하영재임을 알고 내공을 전수한다. “복싱에는 존중이란 게 있다. 자기균형을 지키고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복싱이다." "펀치를 날릴 때 유연한 무릎을 가져라.” “너보다 어리고 강하니 때릴 것이 없는 거다.” 고스톱도 고도리 짝이나 쌍피를 먼저 방어해야 하는 것처럼, 늙은 코치는 규칙의 첫째가 자신을 보호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저체중 아이로 태어난 착한 딸 매기는 몸무게만큼 말썽을 일으키는 가족이라는 남루한 외투를 두른 채 애인도 없이 오로지 권투에만 몰두한다. 매맞고 번 돈으로 집을 사준 딸에게, 집이 있으면 약값 보증금이 안나온다며 현찰을 달라는 한심한 누더기는 “남자나 구해, 넌 여자야.”라는 말을 내부친다. 승승장구하는 매기는 "먼저 너 자신을 보호하라"는 코치의 가르침을 피부로 느끼지만 뼛속 깊이 새기지 못했기에 그녀는 챔피언전에서 결국 링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만다. 피가 눈으로 흘러 들어가고 뼈에 너무 가까운 상처는 상처전문가도 누구의 손도 어쩔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축생의 자리로 떨어진다. 비극이다.
전반이 <록키> 여성 버전 같은 링의 서사라면 후반부는 <그녀에게>와 같은 침대의 명상이 갖는 지극함을 보여준다. 사랑이다. 선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노인이 만든 영화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않고 기적을 바라는 관객을 배신한다. 독한 사람. '이 구멍으로 어떻게 얼음을 넣었는지 모르겠다'던 바보가 던진 ‘싸움이란 때론 질 때도 있다’는 잽은 독한 감독의 메시지를 대신하는 것 아닐까.
특별한 카메라 워크도 없이 건조한 화면들로 인물의 내면을 형성해 나가는 이 노감독은 코치역을 맡아 늙은이의 주름이외 어떤 비장한 포즈도 생략한다. 아예 그림자가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LA 바닷가 로드웍 장면조차도 아름답게 잡는 것을 경계하지 않던가. 그 옛날 총잡이의 무심함과 말없음 그대로다. 글쎄, 첫 영화가 미약했는데 나중이 창대할 수 있다니? 장총과 시가는 비단 이스트우드의 무늬였을까. 무법자 시대의 스타일을 지우고 오로지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노인이 잡은 고기는 아름답다. 노년에 잡은 이 물고기는 겉멋의 무늬를 벗고 '늙은 나'에게 스스로 바치는 오마주다. 아이들 백일장 준비하는 훈장인 나는 멀리서 그가 장수하길 빈다.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