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 |
탈춤 근원적 비애와 애상적 어조에 젖다
관리자(2005-04-08 17:05:37)
이 시는 조선시대에 뿌리 뽑힌 삶을 살아 온 남사당 연희패의 애환을 노래한 300여 행, 13장으로 이루어진 장시의 앞부분이다.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간다. 그때 나는 오랫동안 아팠다. 병원 치료를 위해 다달이 두어 번은 서울을 오가야만 했다.
초저녁 전주에서 기차를 타면 새벽에야 겨우 서울에 도착하던 때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시내버스도 뜸해서 한 시간 남짓한 병원 옆 사촌형님 댁까지 걸어가곤 했다. (독문학을 전공한 형님은 갓 교편을 잡고 있었다.) 병원 문 여는 시간을 기다려 종일 치료를 받고 다시 밤 기차로 내려오는 일이 매달 반복됐다. 잦은 결석은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게 만들었고 가까운 친구도 별반 없는 가운데 이것저것 읽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2학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기차 시간에 여유가 생겨 형님 방에서 혼자 뒹굴다가 눈에 띈 게 『현대문학』이었다. 당시 나는 소설에 흥미를 붙여 학생 잡지에 단편소설이 몇 차례 실리기도 했지만, 시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건조하고 도식적인 시를 제외하곤 접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이 시를 더욱 낯설게 한지도 모른다. 『현대문학』에 실린 소설을 읽어가다 그 틈새에서 우연히 읽게 된 것이 「탈춤考」였다.
무심코 읽어가는 동안 탈춤이 갖는 근원적 비애와 애상적 정조에 나도 모르게 젖어 들었다. 잡지를 가져갈 수 없는 처지여서 대학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후로 모든 것이 막막하고 쓸쓸할 때면 가끔씩 묵은 노트를 뒤적여 이 시를 읽곤 했다. 우리말의 정취를 한껏 살린 민요조의 리듬과 유장한 흐름은 읽을수록 감칠맛이 났다. 자주 음미하다 보니 300여 행의 시 전부를 제법 구성지게 낭송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무력감에 빠져 있던 70년대의 대학시절, 「탈춤考」 속에 등장하는 취발이며 왜장녀, 먹중이, 눈꿈적이들은 때론 시 밖으로 걸어 나와 나를 위로해 주곤 했다. 또한 시공을 넘어 이 시대 상처 받고 억눌린 자들의 가슴을 질박한 토속어와 해학으로 녹여주고 있었다.
「탈춤考」는 나를 시에 눈뜨게 하고, 뒤늦게 시의 마을로 이끌어 준 지팡이였다.
오늘도 서재 벽에 걸린 취발이 탈이 부릅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탈춤考」는 뒤에 창비시선 『高麗의 눈보라』에 일부가 수정되어 나왔다.)
권오표 | 199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여수일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