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 |
중국미술의 오늘전
관리자(2005-04-08 17:00:46)
'중국미술의오늘'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중국현대미술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동북아를 통과하여 세계 미술계로 매섭게 질주하고 있다. 이 속도면 10년, 20년 안에 전 세계에 ‘중국열풍’이 몰아치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 정도로 급속한 진전이다. 이런 시점에서 전북도립미술관의 ‘중국미술의 오늘’전은 “아, 중국미술이 이렇구나”하는 감상 이상의 중요한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유럽과 미국, 일본 미술계가 중국현대미술을 주목하고 그 작품가격이 거의 수직선으로 상승하는 기세를 보이는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게도, 국내에서 이만한 규모로 중국현대미술이 소개되기는 드문 일이다. 우리처럼 매년이 아니라 5년 만에 한번씩 개최되는 국전, ‘중국미술전람회’의 제 9회 입상작들을 선별하여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중국현대미술’전이 첫 번째였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이번 전시는 2004년에 열린 10회 국전 수상작, 곧 전국에서 3차례 이상에 걸친 단계별 지역예선을 통과한 3500여점의 출품작 중에서도 베이징의 중국미술관에 최종 전시된 600여점의 수상작품 가운데서 골라온 것이다. 지난 연말 도립미술관의 최효준 관장이 중국 최대의 미술잡지 <아트>의 한국특파원 이광군 선생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하여 직접 선정한 140여점의 중국화, 유화, 수채화, 판화, 삽화 등이 포함되었다. 원래 전북도립미술관이 국내에서의 첫 전시로 기획한 것을 예정에 없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를 가져가는 바람에 두 번째로 전북에 오게 되었으며 (2월 25~4월 17일) 4월에 경남도립미술관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이번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수가 “어쩜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렸는지!” “꼭 진짜같다” “중국적이다” “독특하다” 등이다. 전통적인 중국사실주의인 공필화 기법에 대한 찬탄을 포함, 중국미술의 독창적인 지역색에 대한 언급이 일반적이다. 대부분 작품의 ‘질적 우수성’에 동의한다. 이 단어의 상대성을 고려하더라도, ‘중국미술전람회’는 수상작 선정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공정하기로 정평이 나있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계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중국문화부와 더불어서 전시를 공동주최하는 중국미협의 회원이 되려면 통상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이 전람회에 3번 이상 입상해야 하므로 15년씩 걸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고 미술대 교수들과 중견 및 원로 작가들까지 응모에 참여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작품의 뛰어난 테크닉에 수긍이 간다.
사실 전시 타이틀인 ‘중국미술의 오늘’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번 전시는 중국현대미술의 전체 경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중국미술의 오늘의 일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정부체제가 승인하는 오늘의 미술’이다. 오늘날의 중국미술은 실제로는 훨씬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만 해도, 2001년도의 전시보다 스타일과 테크닉, 소재 등에 있어서 매우 풍요해졌다. 수 년 만에 이 정도의 변모라면, 중국미술의 엄청난 잠재력과 미래가 자못 기대된다. 이차대전 후 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통로를 닫고 서구와 접촉을 끊었던 중국미술계였다. 오랫동안 닫힌 문 뒤의 작가들과 작업에 대해 세계는 별반 관심도 갖지 않았다. 이 시기 중국미술은 러시아 미술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프로파겐다의 성격을 띠거나, 아카데미 전통양식 내지 사회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표현된 한족과 소수민족들의 전통적·민속적·민족적 주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어제의 스타일이 하룻밤 지나면 역사가 되고 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당연히 중국미술은 외부세계에 ‘퇴보’ 내지 ‘답보’로 비추어졌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일설에 의하면 미국 CIA의 후원을 힘입어, 중국 반체제 작가들이 해외에 소개, 각광받게 된 것을 기화로 세계미술계는 중국을 주목하게 되었다. 폐쇄사회에서, 지낸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서구의 온갖 스타일과 테크닉을 전개과정에 개의치 않고 개방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흡수하여, 몸에 깊이 배인 독특한 중국색과 융합시킨 ‘무서운’ 중국신진 작가들이 한꺼번에 대거 등장한 것이다.
내가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경까지 미국에서 체류하며 접했던, 뉴욕을 중심으로 소개된 중국 전시들은 거의가 반체제 작가들의 실험정신이 가득한 것이었다. 중국 공산체제와 현실을 비판한 정치적 소재가 많았고, 테크닉이나 스타일에 있어서도 극에서 극에 이르는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택을 보여주었다. 그 무렵 해외에 소개된 뛰어난 영상미와 의식있는 주제의 우수한 중국영화들과 더불어 반체제 미술작품들은 ‘중국의 무서운 젊은 세대’를 대변하였다. 이같은 ‘위대한’ 중국예술의 배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벌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유분방한 이러한 경향은 중국 내에도 확산되어 베이징의 원명원과 따산즈(大山子) 예술가촌 등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중국미술의 오늘’전에 포함된 작품들은 더 한층 개방된 중국 내 경향을 반영한다. 첫째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서 현대서구미술의 제 경향을 차용, 융합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조형미 및 예술성을 구현한 작품들이 많아졌으며,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미술의 독창성과 전통성, 지역성을 담고 있다. 금상을 수상한 리나이웨이의 공필 채색화 작품 <청음>, 중국화의 대가로 알려진 류타웨이의 <설선>, 사스 환자들을 진료하고 피로에 지친 간호사의 모습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한 량펑의 <비오는 밤>, 중국사회의 전체주의 체제를 뛰어난 예술감각과 테크닉으로 풍자한 장민지에의 판화 <교향악단과 공중 그네곡예>(이 놀라운 재능을 지닌 판화가의 다른 작품들은 동아일보사 일민미술관의 (한·중·일) 판화전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브뤼겔에서 듀안 헨슨에 이르기까지 서구미술의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중국적 소재로 재미있게 패러디한 그림들 등 전시작품이 다양성과 아울러서 중국만의 독창적 지역성을 표현하고 있는 점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곧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괴테의 말을 상기시킨다.
전시 개막식날 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윤수 관장, 중국미술지 <아트>의 편집장 왕쭝, 그리고 도립미술관의 최효준 관장이 논의했듯이 21세기에 우리 미술계는 그동안 동아시아에 불어온 서화(西化), 서풍(西風) 현상 대신에 서구미술계에 동화(東化), 동풍(東風)을 몰고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각국이 독창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재발견하여,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이미 그 기반을 잡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 한국 미술계는 과연 어디에 서있는가.
조은영 | 전북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에서 미술사 석사, 미국 델라웨어대학에서 미술사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워싱턴 D.C.에 소재한 스미소니언 국립미국미술관과 국립동양박물관에서 재직했고, 미국미술사학자협회(AHAA)의 부편집장 및 미국정부의 NEH Fellow를 역임했다. 현재 국내외 여러 학회 임원 및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