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따뜻한 숨결과 지혜'의 보고서
관리자(2005-03-08 17:46:52)
마을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저술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발간된 『조선의 취락』으로 생각된다. 그 후 마을과 관련하여 많은 저술이 이루어졌지만 대부분의 내용들이 마을의 민속이나 공간구조, 행정, 산업경제 등의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이는 행정적 측면이나 도시계획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졌지 마을을 형성한 근원적인 사상이나 정신적인 배경 하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의 전통마을을 해석했다는 점에서 특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건축을 서양의 잣대가 아닌 한국의 잣대로 보아야 한다는 건축계의 숙제에 진일보한 결과물로서의 의미도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했듯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이 ‘진정 사람을 위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첨단으로 무장한 현대의 주거공간은 사람 또는 자연과는 저만치 물러난 숨쉴 수 없는 공간이 되었고, 닭장 같은 아파트 단지는 편의와 부동산 가치의 표본이 되었으며, 일반 주택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주인의 개성이나 정신이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주거공간의 현실을 뒤돌아보고 그토록 바라던 이상적인 주거공간을 20년 동안 발품을 팔아가며 전통마을의 답사를 통하여 찾고자 했다. 듬성듬성 자리한 그래서 무질서하게 보이는 전통마을에는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공동체의 삶터’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환경친화적 삶터’의 모습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또 지금까지 살다간, 여전히 살고 앞으로도 살아갈 이들의 ‘따뜻한 숨결과 놀라운 지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변모하면서도 본래 가지고 있던 질서의 틀을 여전히 명료하게 보여주는 그곳에서 21세기형 주거공간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고자 했다.
이 책은 2권에 걸쳐서 6부로 구성되었다. 『한국의 전통 마을을 가다 1』에서는 “사상과 문화”라는 주제로 여섯 개의 마을을 담았다. ‘제1부 마을에 담긴 정신’은 자연에서 단서를 찾아 마을 공간을 형성한 옻골마을, 성리학적 원칙이 마을 공간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 한개마을,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도시관을 보여주는 낙안읍성으로 이루어진다. 제2부 ‘마을에서 읽는 우리문화’에서는 토속성이 강한 주거공간에 평등한 삶의 조건이 구현된 성읍마을,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하회마을, 그리고 한국마을에서 근대성을 생각하게 하는 강골마을을 소개하였다.
『한국의 전통마을을 가다 2』에는 최근에 많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학과 환경생태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섯 개의 마을을 담았다. ‘제3부 사람들의 관계가 응축된 마을’에서는 씨족마을의 공동성과 대립을 보여주는 양동마을, 사회관계와 자연조건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형성된 도래마을,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조절한 닭실마을을 다루고 있다. ‘제4부 마을에 담긴 환경친화성의 지혜’에서는 환경친화적인 해법들이 내재된 윈터마을, 부족함을 극복하는 지혜를 보여주는 외암마을, 그리고 지속가능한 거주공간의 조건들을 내포한 왕곡마을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우리 전통마을의 답사를 하고 난 후 기록한 대표적인 책이다. 지금까지 마을에 관한 저술은 대부분 전문가의 관점에서 저술되었거나 아니면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 같은 몇 개 마을을 대상으로 그 마을의 역사와 유래, 공간 등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저술되었다. 이런 책들은 전문적인 도서가 되거나 진부한 내용이 되어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전통마을을 보면서 현재 대두되는 주거의 여러 문제점들을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으면서도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저술하고 있다. 이는 전문성을 가진 내용도 서술하기에 따라서는 일반 대중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으로써 우리 생활과 밀접한 건축, 특히 우리의 건축문화에 일반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은 후에 그 지역의 볼거리를 소개하고 있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다. 미학자 하트만(N. Hartmann)이 모든 현상을 전경(Vordergrund)과 후경(Hintergrund)으로 구분하여 해석하였듯이, 저자가 책에서 ‘씨앗이 다르니 마을이라는 꽃나무도 서로 달라진다’라는 말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전문적인 내용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간된 이래 많은 문화유산 답사기가 출판되었고 마을의 답사 길라잡이로 이 책을 보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또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필자의 관점이 저자의 본래 취지에서 어긋날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우리 것 화'하지 않으면 글자만 보는 경우가 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처지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조그만 아쉬움이랄까 아니면 이 책이 우리 지역민에게 시사하는 내용이라고 할까 하는 부분이다. 즉, 이 책에 나오는 정도의 전통마을은 우리 지역 장수, 순창, 김제, 임실 지역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도 말했지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나온 것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도 되지만 ‘보기위해서 안다’라는 논리를 가지고 우리 주변에 있는 이러한 마을을 자꾸 발굴하고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는 문화콘텐츠 산업이 그동안 굴뚝이 지배했던 산업사회를 대체하고도 남는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오고 있는 경제적인 논리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 책이 출판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다고 해 보자. 이 책이 출판되어 독자들이 읽고 난 후 이들이 전문가이든 비전문가이든 책 속에 나오는 마을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생길 것이고 답사하기 위해서 이 마을들을 찾아 갈 것이다.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일 것이다. 결국은 이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기여가 될 것이고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최근에 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의 영향과 똑같은 것이다. 이러한 예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인하여 지방에 있는 군(郡)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뀌고 옛날에 조용했던 사찰이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상을 통해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물론 저자도 지나치게 경제적인 측면의 문화마을 가꾸기 사업은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와 문화가 종합된 전통문화마을은 가꿀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전주 한옥마을의 본래 공간 찾아주기 운동사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본래의 마을 공간 형태를 복원하고 골목길을 찾아주며 한옥의 본래 모습을 찾아주면서 마을의 기능도 본래대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발품을 팔면서 답사한 전통마을에 관하여 글을 쓰면서 저자도 언급하였지만 전에 가 보았던 마을이 전부 개량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책의 내용에 넣지 못한 (전남 영광 효동마을) 경우가 있듯이 우리의 농촌은 이농현상과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사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운데 이들을 지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같이 모색해 보는 계기도 강하게 부각시켜주었으면 하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아울러 대중과 친하게 가려다 보니 전문적인 내용이 균형을 잃은 모습도 조금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적 측면에서 전통마을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차원은 같은 분야를 걷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 남해경 전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