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냉정한 평가와 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관리자(2005-03-08 17:44:34)
지난 해 10월 전북도립미술관이 개관했다. 대중성과 전문성을 겸비하여 도민의 생활 속에 폭넓은 미술문화를 제공해야 할 공공미술관으로서 도립미술관에 거는 기대가 적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술계의 흐름 속에서 지역미술의 환경 또한 새로운 역할과 전망을 요구하고 있고, 지역에서의 창작과 비평의 지점 역시 나름의 맥락 속에서 안정된 생산기반의 구축을 필요로 하고 있다. 변화된 미술 환경의 제도적 현안들을 점검하고 공론화하여 지역미술의 전망을 모색해 보아야할 시점인 것이다.
스물여섯 번째 마당 수요포럼은 ‘지역미술의 과제와 지역미술관의 역할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지난 1월 16일 전주정보영상진흥원에서 전북미술포럼과 공동 주최되었다. 포럼에 참가한 이들은 그동안 지역미술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왔던 ‘나눠먹기식’ 문예진흥기금, 비평문화의 부재, 작은 미술 시장의 규모, 제대로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미술 대학의 문제점 등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이날 포럼 1주제에서는 신석호 화가가 “지역미술의 과제”를 발제하고, 김선태 예원대 미대교수와 강용면 조각가가 토론을 펼쳤다. 2주제에서는 최효준 전북도립미술관 관장이 “지역미술관의 역할과 전망”을 주제로 발제하고, 조은영 원광대 미대교수와 채우승 조각가가 토론에 나섰다. 진행은 이종민 전북대 영문과 교수가 맡았다.
‘지역미술의 과제’와 ‘지역미술관의 역할과 전망’ 두 가지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현재 전북미술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공공미술관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먼저 발언을 한 것은 김선태 예원예술대 교수. ‘지역미술의 과제’를 발제한 신석호 작가의 지정 토론자로 참여한 그는 “지역미술이 체질적으로 굉장히 허약하다”며 “지역미술은 중앙미술의 축소판”이라고 규정한 뒤 지역미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진단했다. 그는 “내적으로는 작가 자신이 스스로 정체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개선해나가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이론이라든지 비평이 자극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해마다 엄청난 숫자의 미술가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이런 양적 발전에 비해 질적인 발전이 매우 더디다. 젊은 작가들의 경우 새로운 것에 대한 콤플렉스나 빨리 커야 한다는 조급함 등이 서울 작가들의 흉내내기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전북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함께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 소리문화의전당이나 전북도립미술관 등이 생기면서 외적인 부분들은 호전되고 있지만, 미술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술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젊은 작가들이 꾸준히 작업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적인 환경이 개선되어서 우리가 작가들을 길러내는 토양을 비옥하고 자생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지역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의 원인 중 하나가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이다. 이제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기 때문에 관을 비롯한 미술인들이 이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의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용면 조각가의 진단도 비슷했다. 그는 지역미술의 문제점을 3가지로 나누어 꼬집었다. “내가 이 지역에서 작가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 중에 하나가 비평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 등에 비평가들이 있긴 하지만, 현재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에 있다보니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가서 진정한 비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작가들도 남의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도문예진흥기금을 받는다. 나도 조금씩 받아서 쓰긴 하지만, 왜 이것을 이런 식으로 주는지 궁금하다. 좋은 전시를 위해 작가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거의 ‘나눠 먹기’ 식이기 때문이다. 도문예진흥기금의 배분 방식도 작가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작년도 통계를 보니까 미대 졸업생이 작가의 길로 가는 경우가 서울이 4~5% 정도이고, 지역은 2~3% 정도 밖에 안됐다.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미대 자체이다. 대학에서 다양하고 실질적인 교육을 시켜 졸업을 하고 나서 스스로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는 어떤 특정한 선생에 의해 특정한 것들만 가르치다보니까, 막상 졸업 후에 진로가 막막한 경우가 많다. 졸업 후에 실질적으로 작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학에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진창윤 작가는 “전북지역의 작가가 1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200명 혹은 20명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10명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는 1천명의 작가들을 위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1천명의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20명의 진정한 작가를 발굴해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전북은 서울과 달리 지역이 좁고 학연, 지연 등 인맥이 얽혀 있어 제대로 된 비판이 나오기 힘든 실정이다. 지역 내에서 비평문화가 정착되기 힘들면, 외부에서 비평가를 초빙해 건전한 비평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가 정신을 말하는데, 사막에다 씨를 뿌리는 것과 옥토에다 씨를 뿌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좋은 토양에다가 씨를 뿌리고 물을 줘가면서 작가정신을 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역 미술계 비평문화의 부재에 대한 김선태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사실 비평문화의 부재가 전북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강용면 작가께서 여러 말을 했는데, 서울도 개인 평론에 대해서는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며, “작가도 하나의 사업이다. 어떻게든 작품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지역 미술가들의 경우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를 받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경제적인 사정이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잘 써줄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서울이야 화랑이나 전시관들이 많아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는데, 전북은 그렇지 못하다. 전북의 비평 문화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나 도립미술관 등에서 활발한 기획전을 함으로써 평론가들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며, 지역미술계 비평문화의 부재의 원인이 열악한 미술시장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예진흥기금 심사에 들어가 봤다. 그때 학연 지연이 얽힌 전시 보다는 한 해의 전시 중에서 이슈가 될 수 있는 전시를 전폭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착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심의위원들이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체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선태 교수의 발언에 대해 유대수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시기획팀장은 “전적으로 작가들만의 책임을 아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작가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한 고민은 1차적으로 본인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미술관의 역할과 전망’의 지정토론자로 나선 채우승 조각가는 비평 토대의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최효준 관장의 발제에 대해 “지금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단순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지역미술의 현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 뒤, “지역 내의 문화적인 행태가 결국 어떤 미술관을 갈망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미술관 자체가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술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전북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미술관은 어떻게 미술품을 생산하고 일반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예산확보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고, 많은 도민들이 미술관에 와서 즐기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체적인 비평구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미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토대의 개혁 없이는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한다고 해도 미술관이 제 역할을 해내기는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조은영 원광대학교 미대 교수는 미술관의 역할을 ‘백화점’과 ‘교회’에 비유했다. 미술관의 오락성과 마음의 안식처의 역할을 대조시킨 것이다. 그는 “초기부터 도립미술관 운영에 참여하면서 느낀 바는 일단 대중의 참여는 큰 성공을 이룬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언론에 시끄럽듯, 작가들이 미술관에 바라는 기대와 전망을 어떻게 충족시키고 대화로 이끌어 가느냐는 문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며, “옳고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 한국사회에서 관립미술관에 대해 작가들이 바라는 것은 굉장히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술관의 역할이 정립된 서양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미술관의 역할은 전적으로 미술관에 따른 것이며 작가들이 미술관에 대해 어떤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미술관이 작가들을 지원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공공의 영역이라는 개념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어느 나라보다 인구대비 미술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많은 미술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미술관이 누구 손을 잡아주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중전체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는 미술관과 작가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미술관의 역할 사이에서 적절한 접합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선태 교수는 “미술관의 운영에 대해 미술가들이 참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지만, 전북미술인들의 열망이 있었기에 전북도립미술관이 설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내작가들이 소외됐다는 의식, 이것은 이 지역 작가들에게는 큰 절망이 아닐 수 없었다. 도내 작가들에 대한 좀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했다”며, “미술관 개관이 지역미술인들의 축제의 장이 되는 전시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본다. 작가들의 중앙지향이 팽배한 상황에서 자칫 지역미술이 중앙미술의 아류가 될 위기에 처해있고, 실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이런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역할도 함께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수 팀장은 최효준 관장의 발제에 대해 “일종의 결과값에 대한 얘기만 나왔지,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위한 방법에 대한 얘기들은 부족했던 것 같다. 지역에 그동안 미술관 시스템이 전혀 없었고, 이제 도립미술관이라는 공간적 시스템이 생겼다. 미술관의 정체성이나 전문성 등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표방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최효준 관장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우리 도민들이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골라 즐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전문화나 특화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지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느 하나를 전문화하고 특화한다면 다양한 취향을 가진 도민들에게서 선택의 여지를 뺏는 것이다. 도민의 취향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이에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도내 작가가 소외됐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런 위험을 안고 시작했다. 축제를 시작하는데, 우선 판을 벌여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 후에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미술의 활성화하라는 목표는 우리가 결국 추구해야 할 당연한 목표이지만, 개관특수를 이용해 지역민들의 잔치를 벌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근시안적으로 지역작가들을 위하다가는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장기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지역작가들과 미술시장 활성화라는 과제는 단계적으로 꼭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라고 답했다.
이날 포럼에서 참가자들은 지역미술의 과제와 지역미술관의 역할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벌이면서도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효율적인 문예진흥기금 분배나 미술작품 평가를 위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잣대 등은 앞으로도 꾸준히 논의해 나아가야 할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