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총성 없는 전쟁
관리자(2005-03-08 17:38:41)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퇴역 군인 역의 알 파치노가 예민한 후각으로 여인들이 쓰는 향수를 기가 막히게 맞추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향수의 향기는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독자들은 혹 필자가 글감이 떨어졌는지 별 걸 다 쓰나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향수의 저작물성이 프랑스의 한 법원에서 다투어진 적이 있다. 여성용 향수 엔젤을 제조 판매하는 띠에리 뮤글러라는 회사는 자사 향수의 향기를 모방한 GLB 모리나사를 상대로 저작권침해금지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향수의 소재가 되는 향료가 3500여종에 이르고, 1개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중 약 250개 정도를 조합하여야 하는 공정을 미적 탐구의 성과라고 보았다. 문자, 그림, 소리 등을 이용하여 인간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저작물이라고 할 때, 후각을 통해 표현되는 것을 시각, 청각을 통해 감지되는 표현물과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저작물성을 인정하였다. 3차원을 3D라고 한다면, 여기에 후각개념을 포함시킨 4D 제품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후각성 상품에 대해서도 지적재산권이 보호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로 치면 원내대표 쯤 되는 미국 공화당 원내총무인 오린 해치라는 상원의원이 하버드대학 로리뷰에 미국의 저작권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하는 법률이 위헌이 아니라는 논문을 기고한 적이 있다. 디즈니 만화 캐릭터, 곰돌이 푸우는 1931년에 만들어졌으니, 원래대로라면 75년이 되는 2006년도, 즉 내년이면 저작권보호기간이 만료되어 남대문이든 이태원이든 어디서도 눈치 보지 않고 곰돌이 인형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1998년에 저작권보호기간을 20년 연장함으로써 곰돌이 푸우는 2026년까지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최초 미국 저작권법(1790년)에는 그 보호기간이 14년이었는데, 특히 지난 40년 동안 무려 11번에 걸쳐 그 기간이 연장되었다고 하니, 푸우가 백수를 눈앞에 둘 2026년에 가서 또다시 연장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임종을 앞둔 곰돌이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은 다름 아닌 월트 디즈니사의 로비 덕이었고, 그것이 미국경제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디즈니사는 곰과 호랑이, 생쥐와 고양이, 그리고 오리를 가지고 오늘도 전 세계에서 석유 한 방울 쓰지 않고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법정에서는 장미전쟁이 있기도 하였다. 네덜란드의 어떤 화훼기업이 우리나라 종묘사를 상대로 자사의 특허 받은 장미품종에 대한 침해금지와 함께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어온 것이다.
이처럼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지적재산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얼마 전 문화관광부로터 용역을 받아 판소리대본을 영역한 한 외국인이 그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 공무원들이 번역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챙기지 않은 틈을 타서 유럽지역에 판소리 다섯마당의 영어본에 대한 저작권등록을 해 놓은 모양이다. 이를 모르고, 유럽에 판소리공연을 하러간 우리 소리꾼들은 그 외국인에게 영어자막사용료를 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챙기지 않고 빼앗기다 보면, 인디언을 소재로 하는 포카혼타스를 제작한 디즈니사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라이언킹을 뮤지컬화한 브로드웨이가, 우리의 별주부전이나 콩쥐팥쥐를 우리보다 앞서 무대에 올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