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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타겼네, 뻬다박었고만, 타겼어"
관리자(2005-03-08 17:36:34)
“어찌믄 그렇게 타겼냐아. 빵틀에다 콕 찍은 것맹이로오……” “아이, 그렁게 허다모뎌 발고락이 닮었다는 소설도 안 있능개비드라고” “우리 아들놈은 필언허고 깽끼 발고락 발톱 짜개진 것까장은 타기드랑게” “천하없는 도독놈도 씨도독질은 못 헌다능거 아닌가, 그렁게.” 두 말 하면 입만 아프고 세 말 하자면 조상 탓할 성싶어 조심스러운 게 ‘타기는 것’이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질구레한 습관까지 ‘타긴 디’가 하나둘 나타날 때마다 피의 속일 수 없는 흐름에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엄정한 피의 흐름을 표현하는 전라도 어휘는 바로 ‘타겼다’이다. 오늘은 ‘타겼다’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우선 ‘타겼다’의 기본형이 무엇인가. 쉽게 생각하면 ‘타겼다’는 ‘타기-+-었-+-다’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므로 기본형을 ‘타기다’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형용사 어간 ‘타기-’는 다양한 어미들과 결합하여 ‘타긴게, 타겨서, 타겼고’ 등의 활용형을 만들 수 있다. “너는 느 외할아버지를 타기갖고 그렇게 성품이 좋니라.” “그게 먼 소리여. 야는 즈 하나부지를 타겨서 그렇지.” “조심허쇼잉. 잘못허먼 저 잘난 아들 당신 타길 수도 있응게잉.” 혹간, 떠넘기기로 ‘당신 타겨서’라는 말 나오면 속 시끄러울 일 생기기 십상이니 웬만하면 칭찬할 만한 일로 ‘당신 타겨서’를 사용하는 편이 현명한데, 여기서 부모 가운데 어느 쪽을 닮았는가에 따라서 ‘타기는’ 것도 사실 둘로 나뉘게 된다. 부계(父系)를 닮은 것은 ‘친탁(親託)’, 모계(母系)를 닮은 것은 ‘외탁(外託)’이다. 한자어 ‘친탁’이나 ‘외탁’에 전라도 방언형 ‘허다’가 붙어 만들어진 형용사가 ‘친탁허다, 외탁허다’이다. 우리는 보통, ‘친탁’과 ‘외탁’ 모두를 합해서 그냥 ‘타겼다’를 쓰고 있지만 말인즉 그러하다. 그러니까 ‘타기다’는 본래 ‘친탁, 외탁’의 ‘탁(託)’에 ‘허다’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로 단어 형성 당시의 원형은 ‘탁허다’이다. 이것이 지금의 ‘타기다’로 변화해 오기까지는 전라도 식의 음운현상이 일정한 작용을 해 왔다. 우선 표준어에서는 받침소리 ‘ㄱ, ㅂ, ㄷ’과 다음 음절의 첫소리 ‘ㅎ’이 만나면 ‘ㅋ, ㅍ, ㅌ’로 발음되는 게 보통이지만 전라도에서는 다음 음절의 첫소리 ‘ㅎ’이 제 소리를 잃고 그냥 ‘ㄱ, ㅂ, ㄷ’ 소리만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전라도에서 ‘탁혔다’를 ‘타켰다’로 발음하면 알아들을 수 없게 되며 반드시 ‘타겼다, 타겠다, 타?  다?등으로 발음해야만 한다. 여기에 ‘허-’의 전라도식 활용형 ‘혀, 헤’와 ‘히 봐,   어’ 등으로 나타나면서 ‘탁허다’는 전라도 안에서도 ‘타겨, 타겼지, 타게, 타겠당게, 타?  어 등의 다양한 활용형들을 갖게 된다. 공부는 이 정도로 마치기로 하고, 이번에는 이 ‘타기다’ 속에 담긴 지역 사회의 암묵적인 규약과 그 강력한 통제력에 대해 살펴보자. ‘타기다’의 암묵적 규약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시점은 역시 사람 새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우리가, 가부장적 혈통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며느리 얻을 때는 매우 신중했던 게 보통이고 그 때 바로 그 어미의 됨됨이를 보는 게 한국적 상식인 것도 바로 ‘타기다’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우리의 통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게놈 프로젝트이다. 즉 게놈 속에는 유전자의 정보가 들어있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는 부모의 유전적 정보가 적절하게 섞여 자식에게 전해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니 이제 새로 맞을 사람을 가능한 한 좋은 혈통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강하면 강했지 약해지지는 않을 테고, 그로 말미암아 ‘타기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은 그만큼 강력해지게 되는 셈이다. 필자가 정읍 입암산 주변에서 학위논문을 쓰던 당시 몇 개월간 하숙생활을 했던 집의 할아버지가 수십 년 동안 도를 닦은 분이셨다. 그 분 말씀을 빌자면, 부모는 자식의 뿌리이기 때문에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한 법이라고 한다. ‘타기는 것’은 피로 받은 것뿐만 아니라 생활을 하는 동안 그저 보고 듣는 데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니 그 말씀은 이치에 닿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은 자신이 가지라고 해도 어느 순간에 자신은 다시 누군가의 뿌리가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새로운 가지의 튼튼함과 부실함은 나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칫 혈통주의 시각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그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지레 결정지을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편협해진다는 점에서 사람 관계를 몹시 답답하게 하지만, 한 다리 건너면 집안 내력을 속속들이 알 만큼 좁은 지역 사회 안에서 ‘타기다’가 갖는 사회적 제약의 강력한 통제력은 지역 문화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 언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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