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6 | [서평]
은희경의 『마이너리그』
모든 청춘은 다 격동기를 산다
이준호 소설가(2003-04-07 14:27:48)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란 명제를 내세운 사람에게 새삼 존경을 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항상 정치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일찍이 '포레스트 검프'에서 확인한 바가 있지만 '마이너리그'의 경우는 그 배경이 우리가 지나온 7,80
년대이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여기에는 교련복, 긴급조치, 10·26, 광주항쟁 등 시대의 기호가 되었던 사건들이 총망라되어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 4인방은 그 시대에 호흡하고 살면서도 정
치와 사회에는 무관심하다. 주인공들이 집착하는 건 명예도 금전도 아니고 단지 첫사랑 '소희'에
의 기억이다. 모든 이야기가 소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펜팔전시회 전날 소희와 두환이 함께 도망친 사건 이후부터 돌연 남은 주인공들의 삶은 생기를 잃고 재미없어진다. 소희가 사라진 시점은 공교롭게도 주인공들이 덩치만 클 뿐인 사고뭉치 사춘
기 소년에서 어른으로 옮아가는 접점에 있다. 그러니까 소희가 사라진 것은 순수의 시대가 갔음
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고난과 신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의 과정을 한 단계씩 거칠 때마다 우리는 두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104쪽)
1987년 우리 셋은 서른살이 되었다. 두환도 그럴 것이다. 어딘가에 살아있다면.(124쪽)
남은 주인공들은 뇌리에 늘 소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발설하는 것은 피차 금기로 되어있
다. 때문에 두환의 안부를 걱정하는 것으로써 소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추고 달랜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소희는 이제 더 이상 순결하지 않기에 섣불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 같은 심리는 비록 현재 자신들의 모습은 '마이너리그'에 속한 멤버일망정 한때 연모의 대상이었던 여인마저 자신들과 같은 처지이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소희의 전락은 두환과 도망칠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작가는 첫 장
편인 '새의 선물'에서도 종구와 도망친 미스 리를 두고 '누가 인생의 동반자와 더불어 모험을 하
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희는 단 한번 화려하게 개화했다가 그 아름다움 때문에 단번에 꺾여나간 흰 꽃이었다. 우리
는 그 순간의 향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단 하나의 사랑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떠난다던 소희. 그러나 정작 소희 자신은 사랑을 선택한 바로 그날부터 더 이상 사랑 따위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난한 생활에 내몰리듯이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삶의 신산 한가운데에서 죽었다.
(138쪽)
위의 인용은 인생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겠느냐는 작가의 평소 소신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 소희가 주인공들의 가슴속에 향기를 간직한 흰 꽃으로 영원히 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소희가 죽은 후부터 주인공들의 삶은 더욱 꼬여만 간다. 배경 없고 돈 없는 남자들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서러움과 부당한 대우를 고스란히 답습하던 주인공들은 답답한 현실을 돌파해보기 위
해 급기야 '브라질 이벤트'를 계획한다. 그러나 이 해프닝 역시 김수연의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
에서 세계적인 행사로 기획된 <열린 사회 열린 문화 2>에 비하면 '마이너리그'의 주인공들답게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치열한 삶의 변방으로 물러난 4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궁금
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의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7, 80년대에 학창시
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소설 군데군데 부비트랩처럼 설치된 당시의 풍경에 자꾸만 발목이 잡혀 독
서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다. 작가는 암담한 정치적 현실에 대해서도 절대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또 주인공들이 섣불리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법도 없다. 어찌 보면 주
인공들은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인물들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들과 너무나 닮아있어 뒤가 켕기기
까지 한다.
그렇다. 주인공들은 바로 초라하고 남루한 삶을 애면글면 영위하는 우리 자신들의 현주소이면
서 자화상인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는 무기력하기만 한 주인공들을 비난
하기는커녕 소설을 읽어 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시선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많은 깡패영화 중의 하나인 '친구'가 숱한 화제를 뿌리며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고 한
다. 나는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 하지만 '마이
너리그'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아주 이해 못 할 것도 아닌 듯싶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흑백으로 처리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흑백이란
사람의 일방적인 감상에 의해 윤색이나 각색이란 채색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이다. 그
래서 회상에 빠지면 차분해지는 것이리라. '마이너리그'를 읽는 내내 과거의 무수한 장면들이 내 눈앞에서 흑백으로 그려졌다가는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보이는 것마다 온통 천연색뿐인 내 생활
에서 이 경험은 분명 큰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