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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홍랑과 이옥봉은 그후...?
관리자(2005-03-08 17:28:01)
서양음악사가 알함브라 같은 거대한 궁전이라면 그곳은 늘 사랑과 경모(敬慕)의 메아리로 가득 차 있다. 그 경내에 들어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한 방에서는 열댓 살 된 모짤트가 대위법을 마스터하기 위해 미하일 하이든 등 여러 사람이 쓴 미사곡과 모테트를 무려 150장 넘게 베끼고 있고, 옆방에서는 베토벤이 바로 그 모짤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에 들어갈 카덴짜를 완성하느라고 몇 시간째 피아노를 두들기고 있고, 좀 떨어진 탑루(塔樓)에서는 하이페츠가 거쉬인의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노래들을 편집한 뒤 현이 몇 개씩 끊겨 나갈 정도로 연습하고 있고, 마당 건너 또 다른 방에서는 신예 조슈아 벨이 베토벤 협주곡에 들어갈 카덴짜를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리고 다시 모짤트가 있는 방으로 돌아오면 좀더 키가 자란 천재는 이제 화려한 비단옷 차림으로 미하일의 형 요셉 하이든이 작곡한 교향곡 47, 62, 75번의 주제들을 베끼고 있다. 현대 음악에 오면 이 즐거운 상상이 TV 화면을 통해 현실로 구체화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복구비 모금을 위해 열린 존 레논 추모 음악회가 한 예이다.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배우 케빈 스페이시의 사회로 열린 이날 음악회에서 앨라니스 모리셋, 데이브 매    , 나탈리 머천트, 마크 앤써니 등, 그가 죽기 얼마 전에야 태어난 젊은 가수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젖먹이 때부터 그 노래들을 불러온 것처럼 그야말로 절실하고 실감나게 ‘디어 프루던스’니 ‘스트로베리 필스 포에버’니, ‘인 마이 라이프’를 불러 듣는 이를 전율케 했다. 그리고 그 전율의 상당 부분은 물론, 그렇게 오래 전에 죽은 레논의 음악이 아직도 펄펄 살아 있다, 영어권 국가의 젊은 가수들이 그 곡들을 잊거나 무시하기는커녕 마치 제 아버지 노래처럼 아끼고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왔다. 옛 대가들이 서로의 곡을  공부하고, 편곡하고, 응용한 것 못지않게 현대의 작곡가와 가수들 역시 선배들의 작품을 이용, 차용, 애지중지해 이제는 팝 뮤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전통을 형성함으로써 창작의 풍요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문학사 속의 연분들은 그보다도 더 길고, 끈끈하고, 복잡다기하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세기말 영어권에서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이론의 여지없이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선정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그로부터 2,800년 전에 쓰인 호머의 『오디세이』를 틀로 삼고 각 장의 주제와 제목을 그대로 따다 쓰고 있다.  한편 20세기 최고의 시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유명한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는 성서와 『바가바드기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무시로 갖다 쓰고 있다. 엘리엇의 예술성을 이해하고, 당시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이었던 그의 『시집』을 자기 출판사에서 펴내 준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올란도』에서 셰익스피어, 스펜서, 애디슨, 존슨, 디킨스 등 수많은 선배 작가의 문체를 너무도 절묘하게 재현해 감탄을 자아냈다. 그 울프를 숭모하는 젊은 소설가 마이클 커닝햄은 그녀가 선배 작가들을 흉내 냈듯이 그녀의 문체를 그대로 차용해 울프 자신과, 그녀의 『댈러웨이 부인』, 그 책을 탐독하는 로라 브라운이라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여성,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클라리사 본이라는 현대 여성을 병치해 그린 『디 아워스』라는 작품으로 199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독자는 3,000년 전통의 서구문학에 등장하는 온갖 작가와 이미지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명멸하며 서로를 비춰주고, 설명하고, 배태시키는 모습을 행복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랜슬럿과 귀네비어의 사연을 읽다가 그 속의 한 구절 때문에 입을 맞추고, 그 키스를 통해 불멸 속으로 뛰어든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처럼, 많은 작가들은 책을 읽으며 책을 잉태하고, 그 책을 읽은 다른 작가에 의해 더 풍요롭고 위대한 존재로 변용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 예술가들은 너무 외롭고 쓸쓸해 가슴이 미어진다. 선조 때 기생으로 시 한 수가 남아 전하는 홍랑은 연인인 최경창이 앓아눕자 일주일을 밤낮 걸어 그를 만나러 갔고,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얼굴을 자해해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그녀가 연인과 이별하며 건네준 시,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밧긔 심거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소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처절하고 속 깊은 연정이 가슴을 친다. 하지만 그 후 홍랑과 그녀의 시는 어찌 되었는가? 후배도, 사숙하는 이도, 아류도 없이 역사의 가없는 바다를 떠도는 한 조각 파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은 갈매기 꿈을 품어 넓고(江涵鷗夢闊)/ 하늘은 기러기 슬픔에 들어와 멀다(天入雁愁長)’라는 시를 써 ‘천고의 절창’이라는 평을 받은 이옥봉은 또 어떤가? 탁월한 문재와 활달한 기상을 지녔지만 서녀였던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남편으로 당대의 문장인 조원을 점찍어 그의 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종의 필화 사건으로 내쳐진 뒤에는 ‘꿈에 다니는 길도 자취가 난다면 문 앞의 바위 길은 벌써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徑已成沙)’라는 또 다른 절창으로 자신의 애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 뿐, 조원도, 후대의 다른 누구도 그녀의 인품이나 문학적 성취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거나 고찰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도 홍랑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보다 더 유명하고, 교과서를 통해 온 국민이 다 배우는 황진이나 김소월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삶과 문학은 단발성 사건, 그 천재성은 일종의 돌연변이로 치부되어 동시대인이나 후배들의 의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미당이 세상을 떠나고 불과 몇 년 만에 그 집이 완전히 폐가가 된 것도 이런 사고방식의 소산이리라. 이는 꼭 그의 친일 행적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우리 예술가, 우리 문인들의 운명이고 팔자인 것이다. 이제 역사를 길게 보자. 우리 문화를 수천 년에 걸쳐 자라고, 꽃피고, 무르익는 것으로 생각하자. 인재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영재 교육도 좋고 토익 만점도 좋지만, 그렇게 급하게 맘먹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부터 살펴보자. 우리 전통 속에서 귀하고 고운 것을 찾아내 우리 아이들에게 정성껏 가르치자. 그리고 그들이 튼실한 인재로 자라도록 끈기 있게 기다리자. 좋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케 한 뒤, 그들이 우리 전통과 문화에 자부심을 가진, 그러면서도 보편적 가치와 참된 아름다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진정한 세계인으로 자라게 늘 북돋우자. 홍랑의 피맺힌 사연이 그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이고, 이옥봉의 발랄한 시구가 그들의 지성을 자극하여 이 여인들의 이름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새로운 이야기, 더 많은 시들로 피어나는 그 날이 이 땅에도 오게 하자.  | 원광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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