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고창>수익 창출보다는 가꾸고 지켜나가야
관리자(2005-03-08 17:23:04)
전봉준의 혁명의 외침을 들은 하늘과 가장 우리다운 소리, 판소리를 싹 티 울 만큼의 땅과 시성(時聖)을 키울 만큼의 바람과 겨울을 인내한 보리알을 여물게 하는 햇살이 있는 곳. 붉은 노을을 삼키고도 아무렇지 않은 동호리 바닷가와 뻘밭, 천년을 하루처럼 서있는 모양성, 동백 숲과 딱 맞게 어우러져 눈 시리게 피어나는 꽃 무릇(상사화)을 품에 안은 선운산. 하늘과 영혼을 담아놓은 고인돌, 효감천 풍천장어에 복분자, 황토에서 자라서 더 특별한 고창수박.
열 손가락이 모자라 다 말하기도 힘든 이 지역은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를 키우고 내 자식이 살아가는 곳. 큰 탈 없이 남겨진 유산에 만족하며 사는 우리의 땅 고창은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이야기 거리가 넘쳐난다. 한번 보고 스쳐 지나서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곳이며 여기에 사는 우리조차도 모르는 게 더 많은 곳.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유, 무형의 자산으로 부족함이 없던 우리는 지금 새로운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다.
문화란 오로지 인간만이 창조해내며 남겨 놓은 흔적으로 자칫 사라져 버리기 전에 지키고 우리 스스로 후손에 물려줄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허나 작금에 문화의 흐름은 관광과 맞물려져 지키고 가꾸기 보다는 수익 창출에 더 큰 비중을 둠으로서 파괴되고 소멸되며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우리의 몫을 다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즈음에 그리 많지 않은 세월이지만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면서 보아온 몇 가지를 경쟁이나 투쟁의 의미가 아니고 지역에 살면서 느끼고 접한 그대로 내 바람을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문화와 근간을 이루는 예술분야를 생각해 보면 90년에 한국예총 고창 지부가 결성 되면서 유명한 작가들은 도시로 떠나 살고 추수하고 난 가을, 황량한 들녘에 남겨진 이시락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지역 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문화 창출에 힘쓸 즈음이었다. 비단 우리 지역만 이러는지 아니면 모든 지역이 다 그렇게 모든 문화 예술 단체들이 다 그렇게 해야 만이 문화가 지탱되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할 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던 그들은, 할 일을 마치고 가는 자리처럼 명예를 탐하는 그들은, 어느 때 어디에 가더라도 나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일신의 삶을 위하여 국가의 녹을 먹고 퇴직한 이후 ‘문화는 교육과 가장 가깝다’는 등 이 세상에는 없는 말도 안돼는 소리로 자리에 연연 하면서 지역 예술 문화를 잠재우고 있으며, 오늘도 후배들에게 남겨주는 것이라고는 자리를 지켜서 일신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느끼게 한다.
20대에서 시작한 일을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버티며 계속하는 그들에게 한편으로 박수를 보내지만, 행여 그들이 작고한 후에 오는 혼란스러움은 그들의 몫은 아니겠지만 정말 걱정이 크다. 면면히 내려오는 문화유산을 자기네 소유인양 이 조각 저 조각 맞추어서 말하면서도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며 예술 문화를 앞세워 놓고 갉아 먹는 그들이 공인인가?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간혹 지역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로 ‘어려운 우리 지역에 어른은 누구일까’를 묻는다.
문화는 우리의 정서이고 정서는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진데 우리 지역 문화 흐름에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 든든한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정치, 경제, 한때 우리 지역에도 어른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허나 지금에 와서 죽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려 하는 이들은 많지만 일신보다는 지역을 걱정하고 후진을 위해서 기꺼이 가르쳐 주고 흐름을 여는 강 같은 그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또한 자연은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문화는 자연으로부터 비롯되며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시멘트 속에 사라져간다. 우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상자(box) 비판을 해야 할 즈음에 와있는 것 같다. 처음에 문화의 표상인양, 문화를 다 만들어 내는 곳인양 만들어진 공간들이 재정과 여타의 이유로 개업 휴업 했거나 버려지고 용도 변경으로 인하여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왜 운영되지 못하는지 물으면 가장 먼저 재정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대부분 용도 변경되었거나, 비워있는 공간들, 만들기만 하지 운영 계획은 없이 방치 되는 것 같다. 지금도 동리 국악당 변소 가는 길에 전시해놓은 작품에 담배꽁초나 휴지 조각을 넣어놓는 수모를 당하는 미술전시장, 보편타당의 상식으로 납득이 안 되는 대학졸업자와 여타의 조건을 내세워 작품을 걸 수 있게 함으로 미술인들의 위화감은 물론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도 ‘민원인과 지역 미술인들을 위하여’ 라는 민원실 전시, 한번쯤 돌아봐야 할 우리 지역의 현실이다.
그동안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10년이 넘게 전시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많은 돈을 들여 지어지는 문예회관이 자칫 아직도 자리를 움켜쥐고 있는 이들의 사무실이나 휴식 공간 정도로 변색 되지나 않을지 또 걱정이다.
그냥 그렇게 좋은 길. 구비 구비 돌아서 가다가 만나는 우리 좋은 땅. 거금을 들여 뚫고 발라지는 시멘트 속에 묻어버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인천강 하구에 갈대숲과 초목들이 기억 속에만 살아있다. 빨리 와서 좋은 길에 더불어 구불거리고 천천히 가는 여유로 우리 지역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시간 가면 먹고 잠자고 지역 경제를 도울 수 있는 그런 길에 투자하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문화의 길이 총알처럼 왔다가 총알처럼 갈 수 있는 길, 머무르지 않아도 될 길, 두 번은 오지 않아도 될 길이 되어 가는 건 아닌지. 어디에서나 이야기 솟아나고 곳곳이 아름다운 땅 지금도 충분한 내 고장의 모습에 흠집을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사는 고창은 오늘도 모양성 푸른 솔 아래로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다.
이현곤 |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한국미술협회 고창지부장을 지냈고, 1996년 문화체육부 장관상과 2001년 전북 예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선운산 유스호스텔 청소년 지도사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