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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고창>자긍심 일깨우는 거대 문화의 고장
관리자(2005-03-08 17:17:22)
고창은 자연, 인문환경의 천혜조건이 좋아 청동기 시대부터 문화를 꽃피웠으며, 문화유적들이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이 전해오고 있어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거대한 박물관으로 유무형의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고장이다. 역사적 발자취를 개관해 보면, 전라북도 서남단에 위치한 고창군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모로비리국의 모이부곡현,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속현으로 모양부리현으로 불리웠다.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부터 고창, 흥덕, 무장을 통합하여 고창군이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면적은 606.822㎢, 인구는 65,203명, 행정구역은 1읍 13면 189리 557분리로 되어있다. 고창의 문화적 자산을 열거해보면, 태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73.7km의 긴 해안선,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중심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창고인돌 유적지,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천년고찰 선운사,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축성한 고창읍성 등의 유형 문화자산이 있고, 무형의 문화자산으로는 고창읍성에서 오랫동안 행해져온 민속인 답성놀이, 고창의 중심가에서 행해지는 오거리당산제, 고창농악전수관을 중심으로 한 고창 농악, 판소리 여섯 마당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의 고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판소리타운 (동리국악당, 판소리박물관, 판소리전수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선사시대의 거석문화의 중심에 있는 고창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 전체를 위하여 보호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2002년 12월  2일 등록된 유적이다. 고창군에는2,0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창읍 죽림리, 아산면 상갑리 지역에 447기가 밀집하여 있다. 이러한 밀집 분포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청동기 시대의 묘제를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되어 있어 고인돌의 기원 및 성격뿐만 아니라 고인돌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죽림리, 상갑리 일대 고인돌 유적은 동양 거석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속놀이로는 읍성에서 행하여지는 국내유일의 민속놀이로 성밟기(답성놀이)가 전승 되고 있다. 성밟기는 윤달에 하면 좋고 윤달 중에서도 윤삼월이 특히 효험이 높다고 한다. 성을 한바퀴 돌면 다리병이 낳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전해온다. 성밟기를 할 때에는 목침덩어리 크기의 돌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성의 왼쪽부터 3개의 옹성과 6개의 치성을 돈다. 여기서 겨우내 얼부푼 성곽을 보호하던 조상들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 이면 모양성제 기간 중 답성놀이를 하기위하여 전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여 든다. 고창읍성은 조선 초기에 축조된 성으로, 둘레 1,684m, 면적 18만 9764㎡의 위용을 자랑하며, 1965년 4월 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단종 원년(1453) 계유년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며,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도움으로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어 확실하지 않다.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3문과 치(雉) 6곳, 수구문(水口門) 2곳, 옹성(甕城) 등이 있다. 고창읍성은 판소리를 익히고 되돌아보는 체험학습장으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특히 고창읍성의 6개의 옹성을 판소리 6섯 바탕과 연계하여 코스 별로 테마를 부여하여 학습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며, 읍성 노천광장을 비롯하여 풍화루·공북루·등양루·진서루에서 정례적으로 테마가 있는 판소리 또는 국악 카페를 운영하여  관광객이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고창은 소리의 고장이다. 전통문화 예술의 꽃인 판소리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되어 2003년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됨에  따라 판소리에 대한 관심과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고창은 우리 민중의 숨결과 애환을 해학적인 사설과 신명나는 가락으로 엮어 놓은 민중의 판소리 여섯 바탕을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 (1812-1884) 선생이 출생한 지역으로, 선생은 천재적인 문필력과 뛰어난 음감으로 판소리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셨다. 고창이 판소리 중심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구전으로 전해오던 판소리가사를 정리한 동리 선생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리 선생은 현재 복원되어 있는 고택(중요 민속자료 제39호)에서 남창, 여창, 동창의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박타령), 수궁가(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가로지기 타령)등 여섯 바탕의 사설을 비롯하여, 단잡가로서 도리화가, 오섬가, 성조가, 방아타령, 고사 등을 개작 정리하였다. 그 문하에 박만순, 김세종 등 기라성 같은 국창을 두고 후진을 양성하는 등 판소리사에 큰 획을 그었다. 고창의 판소리 10대 명창을 보면 흥덕의 김수영 (1800년대), 김찬업 (1800년대), 조선후기 8대 명창 김창록 (1842-1921), 김토산 (1871-1950년 중반), 김이수 (1930-1993), 만정 김소희를 비롯하여 김경희 등과 최초의 여류명창 심원의 진채선(1847-?), 고종 때 진채선의 뒤를 이은 허금파 (?-1949), 1933년 춘향가로 중요문화재 제5호로 지정받은 성내의 김여란(1907-1983)이 있다. 현재 동리 신재효 선생의 문화적 업적에 힘입은 고창의 판소리문화는 판소리박물관, 동리국악당, 판소리관 전수관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은 대외적으로 고창의 소리를 한국의 소리, 세계의 소리로 알려 나가기 위한 문화적 거점으로서 판소리의 우수성을 부각하기 위한 특별기획전, 판소리체험학습마당 운영, 판소리학회를 유치하고 있다. 판소리 전수관은 동리국악교실을 운영함으로서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유명강사를 초빙하여 운영에 내실을 기하고 있으며, 상설 판소리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국악교실발표회를 통하여 후진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 외에도, 심원의 진채선 생가터를 선운산도립공원, 검당 염전지 및 심원면 갯벌체험과 연계시키고, 김소희 고택, 묘소, 득음한 두암초당 암벽의 절경 등을 한데 묶어 판소리와 국악인을 위한 득음코스 및 산 공부코스로 개발하고 있다.  아산 대기마을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기능보유자 조소녀 명창의  판소리수련원도 소리꾼을 양성하는 요람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송의 고창농악 전수관은 고창우도 농악의 전통을 보존하고 그 맥을 이어 나가기 위하여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국악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고창농악은 호남 우도농악인 영무장 농악의 전통적 계보를 잘 이어 오고 있는데, 풍장굿·매굿·당산굿·문굿·판굿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징은 쇠가락과 장구가락, 고깔소고춤 그리고 잡색놀이다. 풍성하면서도 음악적 색깔이 짙은 삼채가락, 질굿 가락만 들어봐도 고창농악의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상쇠의 지휘에 따라 전 배치가 자유롭게 가락에 맞추어 노는, 여유가 있어 보이면서도 일사분란하게 호흡을 같이하는, 참 맛이 살아 있는 농악이다. 정월 대보름이 오면 문화원 주관으로 고창읍 오거리당산제가 시작된다. 이것은 고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전통수호와 주민화합을 위한 민속놀이다. 당산굿을 시작으로 줄 예맞이, 줄 다리기, 줄 시위굿, 당산 옷 입히기, 사물놀이 등으로 이어진다. 오거리 당산은 재앙을 막고 풍년이 들게 한다는 수호신이다. 이상 고창의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대략적으로 개관하여 보았다. 고창의 문화자산의 특징은, 선사시대의 거석문화의 꽃을 피운 세계문화유산 고창 고인돌 유적,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축성한 호남의 내륙방어의 전초기지인 고창읍성의 민속 답성놀이, 그리고 판소리 집대성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광할하고 비옥한 대단위 황토를 배경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거대문화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화적 자원과 특징을 계승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조용호 | 1956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75년 임용되어 농어촌개발계장과 문화담당계장을 거쳐, 현재는 동리 국악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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