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마라톤>그 감격, 그환희..
관리자(2005-03-08 17:10:05)
사람은 누구나 취미란걸 두고 즐기는 게 하나의 본능인가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마라톤 열풍이 서서히 불기 시작할 무렵 나 역시 거기에 편승해서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쟝르의 취미 생활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경주벚꽃마라톤대회, 첫 풀코스의 딱지를 떼던 날....
거리엔 벚꽃이 분분히 날리고,나는 하얗게 백설깔린 거리를한 마리 야생마처럼 표표히 질주를 한다.
어느덧 많은 시간과 고통끝에 다다른 피니쉬라인엔 많은 지인들의 함성과 성원이 벚꽃처럼 날리운다.
인생 40에 난 뜨거운 감정에 복받쳐 엉엉 울어버렸다.
그 감격, 그 환희....
돌이켜 보면, 나의 삶 곳곳에 마라톤과 인연이 아니 닿은 게 없다.
만추가 절정에 닿을 무렵 춘천호반엔 3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해서 만산홍엽의 절경을 함성으로 아우르고 달리는 그 장관은…
3월의 꽃샘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세종대왕의 늠늠한 동상앞을 내달리며, 나중엔 비까지 흠뻑 맞으며 모두 함빡 웃음을 머금은 채 달리는 마라토너들… 동아국제마라톤의 또 다른 매력,
과천 공원을 8월 복더위에 천여 명의 매니아들이 모여 수박과 화채를 먹어가며, 동물원 주위를 질주하는 광란의 한 낮,
포항 호미곶 울트라 100km 대회던가.
저녁에 출발하니 서산낙조에 버금가는 일몰의 장관,
포항제철 위로 붉게 물드는 저녁 놀의 장엄함,
진전호수 위로 떨어지는 만월의 아름다움,
그래서 이 대회를 월광소나타 대회라고 했지,
신고의 고통으로 밤을 지새우고 달려온 80km의 보상은 또 무엇인가? 구룡포 백사장 위로 붉게 올라오는 일출이여,
삶의 의미는 결국 낙조의 꿈을 안고,
월광의 행복, 일출의 환희던가…
그걸 단 이틀동안 달리며, 경험한 나는 정말 축복 받은 인간이 아니련가.
남은 인생 이십여년,
시와 마라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보내리라.
무슨 이유에선지 바닥에 등만 닿으면 울어대던 까탈스러운 첫 아이, 새내기 직장인으로 여유가 없었던 남편의 소원함, 20개월 차이로 태어난 둘째 아이. 늦은 시간 두 아이를 겨우 재워놓고 베란다에 나가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면서 라이트 불빛만으로 우리차를 구별할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의 스르륵 문 열리는 소리로도 몇 층인지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만큼 나의 모든 신경은 예민하게 곤두서서 괴롭히며 15층에서 몸을 날리면 이 세상 모든 집착에서 자유로워져서 끈 풀린 애드벌룬처럼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꽤 심한 우울증 이었다.
원래 살도 찌지 않았고 동적인 걸 싫어했지만, 우울증에 변비에 소화불량에 뭔가 계기가 필요했다.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러닝머신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20여분 달리는데도 도를 닦는 일처럼 힘들고 팍팍했고, 창을 통해 비치는 앞 건물도 싫었다. 마치 내가 갇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운동장으로 나가 달렸지만 처음엔 운동장 역시 200m트랙 열 바퀴 돌기도 힘들었는데 무슨 조화속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초연해지며 하루하루 보람 있는(?) 일이 되었다. 같이 달리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운동장으로 향하면서 우린 어김없이 매번 이런 대화를 한다. ‘정말 나오길 잘했어 왜 이 좋은 달리기를 사람들은 하지 않을까.’ 달리기에 익숙해질 즈음 나도 모르는 사이 만성지병처럼 내게 머물던 변비와 소화불량이 없어지고, 남편이나 주변사람에게서 활기차 보인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운동장 트랙을 벗어나 집 주변 코스를 달리고 마라톤대회를 몇 번 나가면서부터 나의 조깅은 마라톤으로 바뀌며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풀코스 대회를 신청해 놓고 몇 달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거리를 늘려가는 일. 뭐든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즐겁고 아름답다고 했던가. 달리고 난후의 밀려오는 노곤함과 뿌듯함이 주는 며칠의 행복. 나의 머릿속은 열애에 빠진 사람처럼 언제 시간을 내어 한번 달려볼까, 오늘은 어느 코스를 달릴까 동호인들과 긴 거리를 달리는 주말이 기다려지고 나의 모든 인맥은 마라토너이고 대화의 모든 중심은 달리기가 되었다. 누구든 ‘마’자만 꺼내기만 하면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도처럼, 달리기를 하니 이렇게 행복한데 당신은 왜 달리기를 하지 않느냐며 같이 달리기를 강권하니 이것 역시 병이 아닌가 싶지만, 운동을 하면서 즐거움은 없고 힘들기만 하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할 것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중독성이 제일 강하다는 이 달리기에 빠져, 당신이 이해를 못한다 해도 하는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자다가도 일어나 나가서 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때나, 뭔가의 꺼림칙함이 자리 할 때, 풍경 좋은 주로에 나서서 아주 천천히 달리다보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며 이 대자연에 깃들여 사는 게 축복처럼 느껴진다. 달리기를 하면서부터 온통 회색빛이었던 하늘이 투명한 소리를 내고 15층 우리 집에서 탁 트인 저수지와 먼 산의 능선이 보이고, 따스한 햇살은 우리 집에 왜 더 오래 머무는지….
겨울철이면 헬스클럽으로 향하다가 작년부터는 주로를 달리는데 40여 년 동안 보지 못했던 겨울철 진풍경을 이제야 만나볼 수 있었다. 동상저수지 이어지는 능선이 수묵화처럼 어찌나 아름답던지, 때 맞춰 내리던 함박눈을 맞으면서도 달리고, 맞바람 치는 칼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는데, 그새 나뭇가지는 상처의 새살처럼 빨갛게 차오르는 봄이다. 이것들은 금방 내 눈길,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싹을 틔우겠지.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 보낸다는데, 나는 이 봄 그을릴 채비를 갖추고 이 따사로운 봄볕 속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당신도 나와 함께 42.195km의 여행을 찾아 떠나보지 않으실래요. 그 처음 시작은 운동장 몇 바퀴부터입니다.
| 글. 황재만 KM레미콘 현장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