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마라톤>변화와 다집의 계기
관리자(2005-03-08 17:05:45)
부산출신 친구가 말했다. “야, 광호야, 니 하나만 물어보자.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뛰노. 난 말이야, 혼자 야산엘 오른 적이 있는데, 그기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던데, 마라톤 하는 사람들 도저히 이해를 몬하겠더라.”
오래전 한 때 직속으로 모신 적이 있고, 여러모로 존경해오던 직장 상사를 춘천마라톤에서 만났다. 그 분은 특유의 베이스 톤 목소리로, “난 네가 마라톤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이 말은 42.195km를 달리는 동안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간헐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무슨 의미일까. 그 짧은 말이 마음 속으로 날아와 날카롭게 박힌 이유는 10여 년 전 그 상사를 모실 때 직장에 성실하지 못했던 기간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분이 혹시 그때를 상기하시고, 마라톤처럼 인내와 노력, 정성이 필요한 운동을 당시 불성실했던 내가 좋아하고 또 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씀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면 나는 참 나약했었다.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입으로만 외쳐댔었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으로 옮긴 성취물이 있었던가. 변화와 다짐의 계기가 필요했다. 건강이야 논외로 하더라도 아내와 아이들과 자신에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 이제부터라도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자성으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제 6년째. ‘마음을 닦는 길 1백5리’ 내내 붙잡고 끙끙대는 화두들을 감히 ‘마라톤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여 몇 문장 열거해본다.
대회가 끝난 후 불과 3일 만에 한강변을 달렸고, 일주일이 지난 오늘 또 나는 달린다. 왜 달리는가? 벌써 삼십 후반, 그저 한없이 달리고 싶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점점 힘들어지고 이겨낼 자신이 자꾸 없어지지만, 그래도 나는 달리고, 그리고 완성하고 싶다. 이겨내고 싶고, 이겨내야만 한다. (박병섭 씨, 중앙일보 하프 마라톤을 달리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여의도 결승점에 4시간 8분 만에 도착했다. 결승점을 지나며 조용히 두 팔을 올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배반한 젊은 날의 꿈, 오랜 세월을 두고 나를 괴롭힌 꿈을 생각했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 (박희영 씨, 한강변 마라톤)
달리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내 가정을 위하여’ 라는 명제가 그 중의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멈추어선 안 된다, 쓰러져선 더욱 안 된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게 된다. (SAKA 하프 마라톤)
38km. 한계에 이르렀다. 벌써 4시간 경과. 한없이 밀려드는 걷고 싶은 유혹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극복하려 애썼다. 특히 살아오면서 범한 숱한 잘못들, 사과하고 싶었다. 그 누구에게라도. (조선일보 마라톤)
가로변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과 근육경련으로 쓰러졌지만 끝내 의무차량에의 탑승을 거부하는 런너를 보았을 때, 달리는 내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달리는 동안만큼은 누구나 지순한 상태가 되는가 보다. (동아일보 마라톤)
박병섭 씨는 내 대자이며 박희영 씨는 한강변 주로를 함께 달렸던 도반이다.
| 글. 우광호 한국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 기획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