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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마라톤>달리는 이 순간을 즐기며
관리자(2005-03-08 17:04:38)
며칠째 잠을 못 잤다. 소화도 되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바르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식구들은 새벽단잠에 빠져 있건만 나만 혼자서 거실을 서성인다. 그러다 옷을 갈아입고 호수공원으로 길을 나섰다. 내 나이 이제 만으로 45세. 소위 말하는 사오정이다. 한창 일해야 할 중년의 나이건만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며칠 전 나는 희망퇴직을 하고 말았다. 나는 희망하지 않건만 회사가 희망하는 그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였을 때의 좌절감과 불안감,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 등이 교차하며 요 며칠 나를 힘들게 했다. 호수 역시 밤새 내린 하얀 서리를 머리에 이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일렁이며 일어나기 싫은 듯 뒤척인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2 킬로미터, 3 킬로미터… 서서히 몸이 풀리기 시작한다. 새벽 찬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가더니 답답하게 막혀 있던 속을 확 풀어 버린다. 무슨 일이든 누구에게나 목적이 있고 동기가 있고 목표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마라톤에 입문하였지만 사실 마라톤만큼 매력 없는 운동은 없을 것이다. 어금니 물고 뛴다고 해서 완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옆에서 대신 할 수도 없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고 냉혹한 운동이 마라톤이다. 2000년 9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충주마라톤 첫 풀코스 도전. 40키로 마지막 급수대에서 나는 “두 번 다시 마라톤하면 내가 개새끼다”라면서 얼마나 나 자신을 욕했는지 모른다. 왜 이처럼 힘들게 나 자신을 학대하는가, 몇 번이고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결승점을 통과한 후 잔디밭에 엎드려 엉엉 울었던 그때, 어렴풋 마라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마라톤 매니아가 되었다.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달리는 그 고통조차도 나중엔 기쁨과 희열로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인생을 마라톤과 같다고 한다. 마라톤의 진정한 목표는 완주에 있다. 달리는 도중에 몇 번이고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네 인생과 같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힘듦을 이겨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마라톤은 그 어떤 운동보다도 매력이 있다. 5 킬로 지점을 통과하자 아파트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민다. 얼었던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른다. 무겁던 다리도 한결 가벼워지고 머릿속도 맑아진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달리는 이 순간만을 즐기자.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며 늘 그래 왔듯이 새롭게 시작하자. 내 남은 인생의 마지막 구간을 위해 다시 운동화끈을 매자. 무엇이 두려운가, 바위덩어리든 모래알이든 물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 내가 바위였다고 자만하거나 과거에 젖어 있지 말자. 구력이 아무리 많아도 연습 안하면 완주는 불가능 한 것. 자, 서정삼 - 또 다른 완주를 위해 파이팅!” 난, 그래서 오늘도 마라톤을 한다. | 글. 서정삼 일산호수마라톤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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