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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 |
남원추어탕의 맛
관리자(2005-03-08 16:47:54)
어린시절엔 추어(鰍魚)라는 말을 몰랐으면서도 미꾸라짓국을 즐겨 먹었다. 즐겨 먹었다 해도, 그것은 가을 한 철을 두고 몇 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미꾸라짓국은 가을의 시절음식이었던 것이다. 뒷날 한자에서 미꾸라지 추(鰍)자를 처음 보고도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미꾸라지는 가을 먹거리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를 나의 어린시절엔 미꾸리로 일컫기도 하였다. 따라서 미꾸라짓국도 미꾸릿국이라 불렀다. 미꾸리는 저때 남원지방의 사투리였던가. 지방에 따라서는 미꾸락지·미꾸람지·미꾸래미·미꾸랭이의 말도 있어 왔다. 한자어로는 추어 뿐 아니라, 습어(    魚)·이추(泥鰍)·위이(委    )라 쓰기도 하였다. 이젠 나의 고향 남원에서도 미꾸릿국·미꾸라짓국이란 말은 노인들이 아니면 얻어 들을 수가 없다. 거의 추어탕이란 말 일색이다. 미꾸라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음식점에서도 추어를 내세우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래에 와서는 ‘남원 추어탕’이 전국의 곳곳에서 하나의 상표처럼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고장사람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향의 맛인가 싶어 들렸다가 ‘그게 아닌데’ 싶으면 뒷맛이 개운하질 않다. 지난 가을의 일이다. 남원의 산내면 와운(臥雲)마을의 천년송[천연기념물424호]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아침 일찍 전주를 출발한 일행은 오승우·박남재·김춘식화백과 나의 문우 김영식군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것은 ‘천년송’과의 시간을 좀더 갖자는 것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아침해장을 남원의 「부산집」(천거동 160-163, 전화 632-7823)에서 하자는 박화백의 제의를 따른 것이다. 박화백은 차를 몰면서도 「부산집」의 추어탕 자랑이다. ‘내가 먹어본 추어탕으로서는 부산집의 것이 제일이야.’ ‘남원 추어탕에 부산집이라니’ ‘여주인은 남원분인데 바깥주인이 부산 출신이지. 전주 금암2동에 있는 「정영숙추어탕」집은 그 따님이 낸 부산집의 분점이야.’ ‘그 맛이 얼마나 좋은데’ ‘이제 가서 먹어 보라구’ 박화백은 「부산집」의 안주인 백정순여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며 덧붙인다. ①미꾸라지는 시골에 특별 부탁하여 자연산을 쓴다. ②시래기는 상강(霜降)후의 것으로 요량한다. ③국물은 새벽 3시에 쇠뼈를 고아서 그날 사용할 분량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자연산 미꾸라지가 어디 그리 많을까 의문이 일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 미꾸라지 양식가에게 특별 계약하여 잇대어 쓴다면 자연산에 다름없는 찰찰한 것들을 못 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광한루원(廣寒樓苑) 옆의 「부산집」에 이르러 상차림을 대한 것은 여덟시를 좀 지나서였다. 정갈한 상차림이었다. 국물 맛을 보니 어린시절 고향에서 먹었던 미꾸라짓국의 맛이 어려든다. 입안도 산뜻하다. 시래기의 맛도 보드랍고 연하다. 잘 삶겨진 토란대가 씹히는 포근포근한 맛이다. 상위에 따라나온 반찬에서도 고추장 볶기 멸치조림과 얄팍얄팍 썰어낸 무장아찌의 맛이 일품이었다. 무장아찌는 된장에 박아낸 것이었으나, 그 빛깔이 거무튀튀하지 않고 고았다. 여러 곳에서 먹어본 ‘남원 추어탕’에서 흔하게 맛볼 수 없었던 맛이었다. 일행도 박화백의 「부산집」자랑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였고, 서울의 오화백은 ‘단연 단연’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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