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 |
3월에 생각하는 달리기와 베끼기
관리자(2005-03-08 16:47:23)
한 해의 시작을, 심정적으로,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양력 1월 1일은 공공의 사업을 위하여 기념하고, 음력 설날은 정겨운 관계를 위하여 아껴두십니까?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날까지 세배를 다녔지요. 음식만 울타리를 넘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동질성을 그런 장치들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아마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는 기쁨 또는 안도의 첫 경험이 새해를 기념하는 의식의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태양의 성쇠를 기준으로 봄의 시작을 찾다보면 동지와 춘분 가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동지에는 짧아졌던 낮의 길이가 비로소 길어지기 시작하고, 춘분에는 밤낮의 균형을 깨며 낮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꽃을 기다려 봄이라 부르기도 마찬가지로 어렵습니다. 부지런한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려면 아직 멀었는데 복수초는 벌써 한철이 지났습니다. 여하간, 한국의 학교는 3월에 새로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꽃처럼, 해처럼, 아이들이 환하게 빛을 뿜고 있습니다.
자, 묵은 옷을 털고 기지개를 켜 보십시오. 몇 년 사이에 달리는 어른들이 갑자기 늘었습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마라톤의 건각들이 방방곡곡을 두드립니다. 달리기를 제외하고 아저씨, 아주머니가 주도세력으로 등장한 종목이 또 있습니까? 달리는 분들을 몇 분 만나보았더니 운동과 종교를 혼동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탐닉, 중독, 맹신에 이르는 과정도 상당히 비슷합니다. 왜 뛰느냐는 무식하고 솔직한 질문을 드렸더니 그 분들이 땀과 신음으로 터득한 달리기의 지혜를 들려주셨습니다. 좌절 보다 더 무서운 지옥이 어디 있으며, 극복 보다 더 소중한 기쁨이 어디 있으리오. 달리는 분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저는 마라손, 마라톤, 말아톤 이렇게 불러보았습니다.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김원탁, 황영조, 이봉주 이런 이름들이 떠오릅니다. 초원이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이번에 저는 달리기가 처음부터 육체를 뽐내는 운동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몸과 마음의 관계가 이렇게 분명한 운동이 바로 마라톤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요즘 ‘달림이’들의 달리기에서 저는 탈정치의 기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살풀이를 보았습니다.
다음은 베끼기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베끼기는 물론 인간의 특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베끼는 절차에 대하여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두었습니다. 이를 테면 달리기는 (좀 더 구체적으로 주법에 대하여는) 따라 하기를 권장하기도 하면서, 노래를 흉내 내어 부르면 모창이라고 얕잡아 부릅니다.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예술 또는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저작권이라는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합니다. 저작권의 범위와 유효 기간을 두고 시비가 일면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기 위해 이해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청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라북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의 평가를 위해 용역을 맡은 어떤 단체가 평가위원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가져다 쓰고 그것도 모자라 보고서의 내용을 온통 표절로 도배질했다는 소식을 아십니까? 문화예술에 대한 평가가 이런 식으로 내려진다는 것에 놀랐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재발방지에 나서지도 않는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그러려거든 차라리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그만 두십시오. 남이 하던 대로 따라하면 시체가 일어나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가입니다. 제가 배운 표절의 기준은 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다섯 단어의 연속이 동일하면 표절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 단어로 강화되기도 합니다.
| 정철성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