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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 | [서평]
나무가 일깨우는 자연의 이치
이창순 동화 읽은 어른모임 회원(2005-02-15 14:31:37)
천년의 시간을 나이테에 고스란히 저장해온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굴곡 된 역사. 나라를 지탱해온 백성들의 알콩달콩한 삶, 겨레의 찬란한 문화. 우리는 어떤 이야길 듣고 싶은가. 은행나무의 나이테에 어떤 기록이 남길 원하는가. 인간은 자연을 대할 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로움이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이로운지를 비롯해 항상 인간 중심으로 생각한다. 나무와 동등하다거나 나무가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인간을 위해 모든 자연이 평가되고 존재의 여부가 결정된다. 이렇듯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무가 세상을 바라보고 들려주는 이야기는 색다른 경험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부엽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대자연의 은혜로 세상에 태어난다. 숲 속의 여왕이 될 주목(朱木)이다. 주목은 이천년 이상의 수령을 누리면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슴 두근거리며 세상에 태어난 주목.‘단단한 바위가 뿌리가 내릴 곳을 막고 있으니(12쪽)’ 하늘거리는 줄기에 잎사귀 몇 장 달았는데 암벽이다.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휜다. 성급하게 가지를 뻗지도 않는다. 거친 비바람에 몸을 낮추고 조금씩 자라나 풍성한 잎으로 모성을 자랑하는 거목이 된다. 저자는 주목을 여성으로 보았는데, 나무는 철저한 모계중심 사회(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차윤정)라고 한다. 뀌도 미나 디 쏘르피로는 숲으로 이뤄진 섬 전체에서 엄청난 나무들이 쓰러지고 껍질이 벗겨져 죽어가고, 혹은 불타 없어지면서 목초지로 변해버린 아일랜드를 보고서 『나무의 회상록』을 썼다고 한다. 주목은 숲을 찾는 벌레, 숲에 의지해 살아가는 동물과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나무로부터 숲의 서열에 대해 배우며 자란다. 엄마나무가 생을 마쳤을 때는 30년 동안 애도에 잠겨 의도적인 혼수상태에 들어간다. 나무도 사람처럼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성장을 멈추고 자살충동까지 느낀다고 한다. 일종의 자기 방어인 셈이다. 또한 자신들의 영역에 약탈자들이 생겼을 땐 전투부대를 보내 자기 영역을 수호한다고 한다. ‘숲에 사는 다른 종의 나무들을 차츰 제거해 나가 결국 숲 전체를 장악해서 완전한 떡갈나무 숲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이었다.(111쪽)’ 주목의 긴 혼수상태 기간에 떡갈나무의 왕성한 번식으로 주목은 자신의 왕국에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전투부대를 만들고 스스로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내보낸다. 12년간 나무를 관찰하고 연구해서 글을 쓴 작가의 노력이 엿보인다. 『나무의 회상록』에는 아일랜드의 역사가 담겨있고, 신화를 찾을 수 있으며,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로빈 후드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무자비함도 꾸짖는다. 식물세계의 우화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했다. 숲에 가도 나무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학습의 장으로 이용했고, 그냥 숲에 가서 기분이 상쾌했다. 거기 휘어진 고목에 이야기가 담겨있고, 곧게 뻗은 나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더구나 나무가 우리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은 발칙하다. 뀌도 미나 디 쏘스피로는 세 아이와 함께 플로리다의 남부지방 파인트레스크에 살고 있다. 그 곳은 떡갈나무로 뒤덮여 있는데, 저자는 숲에서 나무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한다.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나무를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저자 덕분에 우린 식물학의 문학을 대하게 되었다.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연을 이용한다. 인류 역사는 강건한 국가를 위해서 숲을 파괴했고, 오늘날은 개인의 부를 위해서 숲을 해친다. 아무런 의식 없이. 어리고 작은 나무 하나도 살아가기 위한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다. 한 줌의 햇볕과 영양분을 더 받기위해 자신의 몸이 뒤틀리는 고통도 감수한다. 주목은 우수한 자손을 많이 번식하기 위해,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나무의 꼭대기에 암꽃을 피워내고, 영양분도 꼭대기부터 나른다. 건강하고 밝은 어린이가 우리의 미래이듯이 나무도 우수한 품종이 미래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주목에게 인간의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사랑하세요.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것도 모두 사랑하세요.(143쪽)’ 신은 인간에게 자연을 파괴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상생의 협력관계를 가지고 자연을 보호하라고 우리에게 재능을 부여한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통해 배운다. 숲을 파헤침으로서 어떤 재앙이 따르는지를. 자연과 공존하는 것이 왜 아름답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수도원을 짓기 위해 가차 없이 베어진 주목은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 그러면서 인간, 인류에게 증오심을 품는다. 서서히 죽어가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밑 둥 한쪽에 여린 가지 12개를 내민다. ‘부활이다. 부활!(199쪽).’ 주목을 새롭게 인식한 수도사들은 나무를 잘 보살핀다. 주목은 수도원의 중심이 된다. 또한 오랜 시간이 더 지나 잔인했던 인간을 용서하고, 자신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버지와 함께 왔던 어린소녀가 나무의 말을 듣는 것을 보고 식물과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 희망을 걸고 있다. 나무는 생을 통해 경이로움과 환희를 맛본다. 주목은 나무로 만들어진 책에 자신이 보고 겪은 이야기를 담는다. 인간으로 하여금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이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섯 잎사귀를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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